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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Jan 05. 2017

어디에나 있는 링컨

링컨은 어디에나 있다.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다른 이름은 링컨 센터이다.미 의사당의 정면 대리석 건물은 링컨 기념관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미국인들의 주머니에는 거의 예외없이 링컨이 있을 것이다.

맨하탄 한복판에 사무실이 있는 나는 매일 버스로 출근하고 버스로 퇴근한다.  하루평균 1,700대의 버스가 뉴저지에서 맨하탄으로 실어나르는6만 2천여명 중의 한사람인 셈이다.  이 1,700대의 버스를 포함해 매일 108,000여대의 차량이 다니는 길이 허드슨 강 아래 있는 링컨 터널이다. 이 터널의 원래 이름은  ‘MidtownVehicular Tunnel’이었다. 그런데 터널을 만들 사람들 사이에서 이 어정쩡한 이름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왔다.터널의 중요도를 감안해 적어도 뉴욕과 뉴저지를 연결하는 George Washington Bridge에 버금가는 이름을 지어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미국에서 George Washington에 버금가는 사람이 누구란 말인가. 


미국인들 스스로도 대통령 평가를 매우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1946년과 1962년 하버드 대학교 슐레진저 박사의(Arthur M. Schlesinger, Sr.)의 설문 조사와1996년 그의 아들 슐레진저 쥬니어(ArthurM. Schlesinger, Jr.)가 실시한  조사결과, 그리고 시에나 대학교 부설 시에나 연구소(SienaResearch Institute of Siena College)가 1982, 1990, 1994, 2002, 2010년 실시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링컨, 워싱턴,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가장 뛰어난 업적을 남긴 대통령으로 선정되었다.  2000년 월스트리트저널은 좀 색다른 방법으로 조사를 실시했다.진보, 보수, 남녀, 인종 등을 골고루 섞어 조사 대상자들의 편향성을 최대한 배제하기로 한 것이다. 이 조사의 결과도 이전 다른 조사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재 미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동전과 지폐는 모두 14종류이다.  1센트, 5센트, 10센트, 25센트, 50센트, 실버달러, 골든 달러 등 동전 7종류, 1달러, 2달러, 5달러, 10달러, 20달러, 50달러, 100달러 등 지폐 7종류가 그것이다.이 중 동전과 지폐에 공동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3명 뿐이다.  미국 초대 대통령 죠지 워싱턴(25센트 동전과1달러 지폐),독립선언서를 기초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5센트 동전과 2달러 지폐), 그리고 16대 대통령 링컨(1센트 동전과5달러 지폐)이 그 주인공이다. 미 재무부에서는 어느 화폐에 누가 들어가 있는가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공식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화폐에아무 의미없는 인물을 넣었을 리 만무하다.  거의 유통이 되지 않는 2불짜리 지폐를 제외하면 결국 미국인들은 죠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함 링컨을 가장 기억해야 할 인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1860년, 건국 100년도 되지 않은 신생국 미국은 노예제도를 둘러싼 갈등으로 남과 북이 선명하게 갈라지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열린 제16대 대통령 선거는 거의 모든 유권자들이 참여하는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치뤄졌다. 당시까지 열린 대통령 선거중 가장 높은81.2%의 투표율이 그것을 증명한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경이적인 투표율이다. 지금까지 이것보다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대통령 선거 는1876년 제19대 대통령 선거(81.8%)가 유일하하며20세기 이후 이보다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것은 한번도 없다.


그러나 이 선거를 통해 남과 북은 더욱 멀어지게 된다.비록 링컨이 안정 과반수의 선거인단을 확보함으로써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했지만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남부 15개주에서는 전혀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선거인단에서는 과반을 차지했지만 일반유권자에 대한 득표율은 39.8%에 불과하였다. 남부의 정서를 반영하는 민주당은 남부와 북부로 분열되어 각각 브레킨리지,더글라스 등 2명이 표를 나눠가졌고,엎친데 덥친 격으로 휘그당의 죤 벨이 남부 표의 일부를 또 가져간 것이다. 남부는 후보가 난립하여 패배를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만약 이3명이 후보단일화를 했더라고 북부의 몰표로 전체 선거인단에서는 링컨을 이길 수 없는 구도였다.


대화와 타협이 배제되면 남는 것은 폭력뿐이다.비록 선거라는 합법적인 결과라 할지라도 남부 사람들에게 링컨의 대통령 당선은 최후의 선언적 메시지였다. 왜냐하면 이미 링컨은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정치인으로 이름이 높았고, 새로 미 연방에 편입될 개척지들에서 노예제도가 시행되는 것을 반대한다고 선거과정에서 공공연히 주장했기 때문이다. 남부인들은 연방정부가 자신들의 생활방식에 간섭할 권리가 없으며, 이는 헌법에 위배된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링컨은 주 정부가 연방으로부터 독립하려는 것은 헌법위반으로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믿고 있었다.이제 남부에게는 연방에 잔류하여 점진적으로 소수파로 전락하느냐, 아니면 연방에서 탈퇴하여 자신들만의 길을 가느냐 하는 선택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행동에 나선다.


1860년 12월 20일, 링턴이 대통령에 선출된 지 약1개월이 경과할 쯤, 사우스캐롤라이주 는 연방 탈퇴를 공식 선언한다.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미시시피, 플로리다, 알라바마, 죠지아, 루이지애나,텍사스, 버지니아, 아칸소, 노스캐롤라이나가 뒤를 이었고,남북전쟁이 터진 후 테네시도 합류하였다.미주리와 캔터키의 지지자들도 연방 탈퇴를 주장했으나 친연방 정부에 의해 저지되었다. 이들 11개주는 링턴이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전인1861년 2월 4일 미합중국과는 별개로 Confederate States ofAmerica(CSA, 남부 연방)이라는 별도의 연방국가를 만든다. 이렇게 하여 결국 미국은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남부연방은 자기들이 주장하는 영토내에서 미합중국의 군대를 철수하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 링컨에 의해 받아들여질 리가 없었다.  1861년 4월 12일 사우스캐롤라이나는 항구도시 촬스톤의 입구의 포트 섬터를 공격하여 연방군을 강제로 몰아내고 점령해 버린다.  결국 남과 북은 무력에 의해 자기들의 주장을 관철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하여4년간의 내전이 시작된다. 이 전쟁은1865년 4월 9일 남부의 사령관 리 장군이 버지니아 애포매톡스에서 북부 사령관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할 때까지 무려 4년여동안 지속되었다. 


통계의 나라 미국도 이 전쟁에서 정확히 몇명이 사망하였는지 모른다.남부 연방에서 대략 260,000여명, 북부에서 365,000여명, 총 625,000여명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링턴 대통령 자신도1865년 4월 14일 워싱턴의 포드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던중 죤 W. 부스(John W. Booth)라는 배우가 쏜 총에 맞아 다음날 사망하고 말았다.부스는 12일 후인 4월 26일 추격군에 의해 사살되었다. 그의 암살 동기는 어이없게도 남북전쟁에서 패한 남부에 대한 동정심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은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분열의 아픔을 딛고 비로소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서부 개척민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변호사가 된 후 마침내 미국의 대통령이 된 인물, 나라가 분열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통합의 리더로 미국을 지켜낸 대통령,  링컨이 어디에나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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