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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hyun Hwang May 17. 2018

출근길 아침

다이닝 룸 붙박이 창에 고색도 창연하게 박혀있던 에어컨을 제거해 버렸다. 외양은 그럴 듯 해서 온 집안을 시원하게 해 줄 것 같았던 이 괴물은 우선 냉각기 돌아가는 소리부터 사람을 질리게 했다. 매사 밝은 쪽만 바라보려는 습성탓에 아 저렇게 소리를 질러대니 얼마나 시원할까 하는 기대는 잠시, 온도를 조절하는 로타리 버튼이 손으로 아무리 힘을 줘도 움직이지를 않는다. 덮개를 빼고 뻰치로 돌려야 겨우 돌아간다.


빈 수레만 요란한 것이 아니다. 시원은 커녕 바람이 나오는지 안나오는지. 저리 시끄러운 걸 보면 저는 또 얼마나 애를 씀인가 말이다. 애꿎은 전기료만 올라가게 생겼다. 아 공짜가 다 그렇지... 이전 집 주인의 너스레에 쓰레기만 치우게 된 것이다. 피땀흘려 번 돈을 쓰레기 처리에 쓰려니 속은 아프지만 애물단지가 보이지 않아 기분은 개운하다.


오늘 아침, 이틀째 비가 내린 덕분에 알러지 기운은 좀 덜하다. 꽃가루 알러지는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사람의 혼을 빼 놓는다. 코가 맹하다가 재채기가 나오고 맑은 콧물이 나도몰래 흘러 내린다. 연신 손수건으로 코를 풀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솟아난다. 콧물과 눈물샘은 이어져 있는 것인지 콧물이 흐르기 시작하면 눈이 벌겋게 충혈되면서 눈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얼굴은 따끔거리고 가슴도 저릿해지는 것 같다. 대책이 무대책이다.  


미국생활에 꽤 익숙해진 요즘은 클라리틴을 아예 매일 아침 하나씩 복용한다. 하루의 안전을 지켜주는 상비약이다. 몸도 움직일 겸 약을 먹기 위해 거실로 나오는데 에어컨 사라진 곳에 푸르고 싱싱한 나무잎들이 그림처럼 메달려 있다. 에어컨을 버린 것이 아니라 나뭇잎을 사온 것이구나. 출근길에 비에 젖은 철쭉이 잠시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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