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ohyun Hwang Jun 27. 2018

새우젓의 추억

해주는 밥을 먹던 사람이 어느날 스스로 차려 먹으려면 이게 약간 고역이다. 냉장고 문을 열고 덮개가 덮여 있는 반찬 몇가지를 꺼내 밥과 함께 먹으면 되는 간단한 일인데도 좀 고민스럽다. 고민이라기보다 귀찮음이리라. 계란 후라이라도 해본 이력이 있으면 다행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냥 한끼 사먹고 만다. 하지만 입이 한개가 아니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 집은 북경 시내 중심가에서 만리장성 방향으로 40여분 가야하는 창평에 있었다. 여기서 차로 한시간여만 더 가면 만리장성이다. 5환과 6환사이였을 것이다. 먼지가 풀풀 나는 시골길과 야채가 자라는 농토를 지나야 했다. 한국 식당은 고사하고 중국 식당조차 찾기 어려운 곳이었다. 이렇게 개발된 주택지는 또 마치 성곽을 두른 것처럼 담장이 단지 전체를 둘러싸고 있고, 정문과 후문 등 출입구는 보안이 경비를 서는 그야말로 일종의 외딴 섬과 같았다.  


아마도 늦봄쯤이었을 것이다. 집사람이 갑자기 한국을 방문해야할 일이 생겼다. 북경에서 서울이야 비행기로 두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라 왠만한 일은 하루만에 다 볼 수도 있는데 그때 무슨일인지 3일가량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말하자면 내가 아직도 초등생인 세 아이의 입을 책임지게 된 것이다. 한국을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시기라 애들도 한국 이야기만 하면 귀가 쫑긋 하던 시절이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의 한국 방문을 청도 출장으로 둔갑시켰다.


한끼 정도야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있겠는데 3일을 벼텨야 한다. 우선 밥솥 크기만큼 있는대로 밥을 했다. 안주인이 집을 비우느라 냉장고는 온갖 반찬들로 가득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그 많던 반찬들도 몇끼 먹고 났더니 동이나기 시작했다. 이거 뭘 먹나 하는 나의 반찬 고민은 새우젓을 보는 순간 햇살먹은 이슬처럼 사라졌다.


애들아 더울 때는 새우젓과 같이 짭짜리한 것을 먹어야 돼.
밥을 물에 말아서 숟가락 위에 탁 한마리 얹어 먹으면 별미야.
한마리를 통채로 먹어야 되는거야.
먹어봐
맛있지


애들은 킬킬거리고.


몇일전 애들 엄마가 자리를 비워 우리끼리 저녁을 먹게 되었다. 이제는 성인이 다된 애들과 넷이서 먹는 저녁이다. 냉장고에서 이런 저런 것을 꺼내 다들 알아서 자기것을 챙겨 먹는다. 불쑥 큰애가 하는 말,


엄마가 또 청도 갔나, 반찬에 한가지가 빠졌네.

작가의 이전글 종부세 헤드라인 감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