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알리스; 예술과 정치의 경계선-
예술은 생성과 소멸과 변화로 혼란한 사회의 지평위에서 날카로운 관찰자로 존재한다.
물론 20세기 중반, 예술이 그 무엇의 수단이 되기를 거부한 순수예술지상주의(art for art sake)가 부상하긴 했으나 오랜 예술의 화두는 역사적 정치적 사안과 흐름을 같이 하였다. 특히 오늘날의 예술활동은 사회 정치의 핵심 활동으로서 변화의 정황, 사회적 모순, 위기의 증상들을 예술의 질료로 쓰고 이를 이미지로 기록한다.
여기 첨예한 사회적 문제를 예술의 화두로 끌어들인 이가 있다. 벨기에 출신의 현대 행위예술가 프란시스 알리스 (Francis Alys, Belgian)이다. 그는 <TOP 100 Artist Ranking>*에서 꾸준히 10위권 안에 들정도로 현대미술계에서 상당한 영향력과 대중성을 갖춘 화가로 꼽힌다. 벨기에와 멕시코를 중심으로 세계 곳곳을 누비며 예술 작업을 하는 그를 두고 '노마딕아티스트(nomadic-artist)' 우리말로 ‘여행하는 예술가’ 라고 부르며 지역적 특징을 예술의 모티프와 재료로 삼기에 그를 '장소 특정적 미술가'(site-specific artist)라고도 부른다. 프란시스는 원래 벨기에 서부 투르네(Tournai) 와 베니스에서 건축을 공부했는데, 1986년 프랑스 아트 프로그램에 참여자로 멕시코에 왔다가 이 낯선 땅에 매료되어 거처를 아예 멕시코시티로 옮겼다. 멕시코에서 주둔하며 풀어낸 그의 주 작업은 어지러운 멕시코의 사회-정치적 문제를 유머와 풍자로 가미한 퍼포먼스다.
퍼포먼스 <Sometimes Doing Something Leads to Nothing>(1997) 는 노동이란 게 때때로 들인 노력과는 별개로 아무런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풍자한다. 태양이 작열하는 오후 한 낮, 프란시스는 꽁꽁 얼린 얼음을 질질 끌면서 멕시코시티를 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단단했던 얼음은 뜨거운 태양아래 다 녹아 온데 간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힘겨운 노동이 그 어떤 생산적인 결과물도 남기지 않고 허무하게 소비되었다. 이 퍼포먼스는 멕시코 시티 근로자들의 고된 노동과 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임금을 고발한다. 퍼포먼스는 15분짜리 영상물로 제작되었고, YouTube에서 5분짜리로 편집된 영상으로 볼 수 있다.
<Rehearsal 1>(1999-2004)은 프란시스가 빨간색 VW 비틀즈를 타고 Tijuana라는 언덕을 오르는 퍼포먼스이다. 차에는 멕시코 포크밴드 음악이 울려 퍼진다. 이 음악은 ‘이어지다 끊기다’를 반복한다. 음악에 맞춰 자동차도 ‘가다 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이를 지켜보는 관람객은 대체 어느 세월에 언덕을 오를까나, 싶어 답답해진다. 바로 여기에 프란시스의 의도가 있다. Tijuana는 멕시코의 우범지역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아주 골치 아픈 지역이라고 한다. 해마다 이 지역은 어두운 이미지를 벗고 보다 살기 좋은 곳이 되겠노라 야무진 공약을 펼친다고 한다. 그러나 늘 말만 무성할 뿐이다. 프란시스는 이것을 꼬집어 예술로 풍자한 것이다. 대체 어느 세월에 바뀌는데? 라고 말이다.
<When faith moves mountains>(2002)는 프란시스의 가장 대표작이라 말 할 수 있다. 성경에 겨자씨 만한 믿음이 산을 옮긴다는 구절이 있다. 확고한 믿음이 기적을 불러온다는 의미이다. 2002년 프란시스는 페루와 리마의 경계 지역인 Ventanilla 의 거대 모래 언덕을 옮기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그는 500명의 자원봉사자들을 대동하여 이들에게 삽을 쥐어주고 줄을 맞춰 세워 구호에 따라 삽질을 시킨다. 이 프로젝트는 15분가량의 비디오로 제작되었는데 앞부분에는 여기에 동원된 자원봉사자들의 작업 전 인터뷰를 담았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사람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바보 같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업을 마치고 난 후 다시 소감을 묻자 '할 수 있다! 우리가 해냈다'라는 성취감으로 들떴다. 정확히 프란시스가 기대한 바 였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때로는 아주 우스꽝스러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신념을 가지고 서로 힘을 합친다면 기여히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 메시지는 퍼포먼스 <Video Still Francis Alys Tornado>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멕시코에는 1년에 한 번꼴로 모래 언덕에서 토네이도가 발생한다고 한다. 프란시스는 2000년도부터 매년 이 토네이도 발생지에 가서 어깨위에 카메라를 얹고 토네이도를 향해 돌진하는 퍼포먼스를 해왔다. 그는 왜 이 위험천만한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일까? 바로 이 물음이 그가 던지는 화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따금씩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심지어 성공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을 한다. 그는 이 무모한 도전을 응원하고 싶은 것이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부딪혀 보자는 것이다. 그것도 적당히가 아니라 온몸으로 달려들어 정면 돌파 하라고. 또한 멕시코가 안고 있는 사회, 정치, 경제적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온몸 부서 저라 노력해보자는 정치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프란시스의 예술활동은 비단 멕시코에만 머물지 않고 국경을 넘나든다. 2004년 그는 예루살렘으로 건너갔다. 아마도 오늘날 가장 논란이 뜨거운 국경지역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맞대고 있는 국경지대일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국경지대는 팔레스타인들이 한 때 거주했으나 지금은 갈라지고 사라진 영토이다.(1947년, 이스라엘과 요르단을 가른 이 휴전국경은 ‘The Green Line' 이라 불린다.1967년 6일간의 전쟁 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동쪽 영토를 점령한다) 플란시스는 이 휴전국경지대를 따라 걸으며 녹색물감을 흘리는 작업을 행했다. 작품명 <The Green Line> 이다. 그의 작업 여정은 비디오로 촬영되었다. 24km을 걸으면서 58리터의 녹색물감을 사용했다. 그는 길을 따라 걸으며 이스라엘인, 팔레스타인, 그리고 이방인들을 만났고 이들이 보인 제각기 다른 반응들, 한편으로는 회의적이고 또 한편으로는 호의적인 그들의 목소리를 영상으로 담았다. 그는 직접적인 정치적 언술은 피하는 대신에 예술가로서 그리고 이방인으로서 이슬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바라보는 시각을 이 예술로 풀어내고자 했다. 그의 말대로 "요즘의 세대들에게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 그로 인한 휴전국경지대 the green line은 생소하다. 사실 이들은 관심이 없다.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의 일 인데도 말이다." 따라서 프란시스는 자신의 인식(프로젝트)을 통하여 우리로(관람자) 하여금 이스라엘과 요르단을 가른 국경지대의 현 상황을, 그리고 지금처럼 분할되기 이 전의 모습을 잊지말고 기억해야 할 것을 촉구한다.
어느 아트 매거진의 기자가 프란시스에게 “당신은 정치적인 예술가입니까?” 라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정치적 언어라는 게 수백만 가지 있을 테죠. 매우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저는 제 작업을 시적인 언어로 풀어요. 그래서 관람객으로 하여금 이야기를 듣게 하죠. 이야기에 빠진 관람객은 차츰차츰 이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정치적 문제, 우스꽝스러운 사건들, 사회 제도 문제를 인식할 수 있게 되요. 무엇이든 상관없어요. 영상물이던 그 어떤 작업방식이던. 단 한 번이라도 관람객을 내 작업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난 내 예술세계 있어 두 번째 층인 정치적 담론의 장으로 이끌겠어요.”
그의 말대로 "때로는 시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 되고, 때로는 정치적인 것이 시적인 것이 된다Sometimes doing something poetic can become political and sometimes doing something political can become poetic. "**
사회와 정치가 개혁하고 탈주하고 혁명을 거듭할 때 시 음악 문학 미술도 함께 변주하고 진화하며 혁신의 운동이 된다. 이는 예술의 개념을 정치적 목적을 위한 도구 혹은 사회운동 실천으로 간주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다. 다만 무수히 많은 예술도식 중 분명 사회와 정치를 위한 어떤 미적 능력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이다. 재현과 감각의 매체로서만이 아닌 생명을 품은 리얼리티로서, 공동체를 위한 구원와 소통의 메시지로서의 능력말이다.
정치를 시도하는 예술, 예술을 시도하는 정치. 두 지평의 새로운 문이 열린게 아닐까.
[참고문헌]
* http://www.artfacts.net/index.php/pageType/ranking/paragraph/4/lang/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