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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 Feb 04. 2020

황혼의 셰익스피어

-해 질 녘 도시와 고독한 발걸음-

사천교를 따라 쭉 걷다 보니 마포 한강공원에까지 이르렀다. 어물쩡 어물쩡 공원 한 바퀴를 돌다가 이제 집에 가야지 하던 참, 어째 바로 돌아가긴 서운해서 벤치에 앉아서 좀 쉬었다 간다는 게 좀 길었나 보다. 어느새 저녁 어스름이 사방에 깔리었다.

붉은 태양을 꽁지에 매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새 지저귀는 소리가 멎고 고가 위를 달리는 아찔한 바퀴소리가 멀어졌다. 황혼의 붉은빛은 도시의 곧은 직선을 더욱 뚜렷하게 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황혼의 셰익스피어>처럼 일몰의 잔상을 입은 도시는 셔터를 내리고 마음 열 준비를 시작했다. 

차츰차츰 고요함을 입기 시작한 도시는 "세상 가운데 있을 때는 그 시대와 대화하지만 고독할 때에는 모든 시대와 대화할 수 있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모든 시대의 도시인들의 외로움을 차근차근 위로하고자 했다.

스스로 잘라낸 귀를 들고 붉은 피를 흘리며 로케트 사창가의 어떤 창녀에게 걸어간 반 고흐의 발걸음을.

끝끝내 배역을 못 받은 무명배우처럼 풀이 죽은 채 터벅터벅 땅을 차며 걷는 나의 발걸음을.





그림: EDWARD HOPPER, SHAKESPEARE AT DUSK,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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