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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 Jan 15. 2020

곁눈질

-외면 일기-

 오후 5시가 다 되어 간다.

 두통때문에 이래저래 참고할 자료가 필요한 글쓰기는 성가시다. 그래서 미술사 관련 글은 좀 끄적거리다 내일로 넘긴다.

 나는 안 맞는 라디오 주파수처럼 내내 지지직 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거실 창가에 붙여놓은 책상 앞에 앉아 가만히 창밖을 내다본다.

 빌딩 숲 사이로 조각 하늘이 보이고 가로등처럼 듬성듬성 뻘쭘히 있는 침엽수 몇 그루가 보인다. 그리고 내 자리에선 보이지 않지만 지금쯤이면 빨간 홍시 같은 태양이 어느 집 처마 끝에 애처롭게 걸려있겠거니.......하는 상상을 한다.

장욱진, 거목, 1954

 우리 집만큼이나 멋없고 낡고 차가운 빌라 건물들로 즐비한 좁은 골목에, 빨간 벽돌로 지은 얌전한 양옥집 한 채가 보인다. 사람들이 먹다 버린 쓰레기나 토사물을 먹고 볼썽사납게 몸집만 불린 회색 비둘기 같은 건물들 사이에 작고 앙증맞은 참새 한 마리가 붉은 머리를 치켜들고 새초롬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다.

 파란 대문을 단 이 양옥집에는 자그마한 앞마당이 나 있다. 아이들을 위한 나무 그네와 키 작은 석등이 하나 보이고 가지치기가 잘 된 소나무와 전나무가 담장을 따라 쭉 심긴 모습이 정갈하다. 마당 귀퉁이에는 저 혼자 삐죽이 키가 큰 나무가 당당한 풍체를 자랑한다. 잎사귀는 하나도 남지 않은 벌거숭이인데 가지 끝에 제법 알이 굵은 노란 열매가 달렸다. 그 모습이 꼭 이쑤시개로 꽂아놓은 꿀떡 같기도 하고 한 다발의 막대사탕 같기도 하다. 

장욱진, 가족, 1973

 나는 이웃집의 배나무인지 모과나무인지를 곁눈질하며 어슴프레 떠오르는 아득한 풍경을 더듬거린다. 황토색 흙담으로 세운 집, 까치가 둥지를 튼 나무, 누런 똥개와 붉은 소가 낮잠을 자는 들판, 공을 차거나 땅따먹기를 하며 노는 아이들로 웅성거리는 마을 골목.......

 그러나 암만 생각해도 우끼는 일이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향수할 고향도 없는 내가, 고작 베란다 창문 너머로 남의 집 마당의 나무 열매나 세고 있는 주제에 시골정취를 운운하는 게 헷소리가 따로 없다. 

 그럼에도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향토성, 그러니까 장욱진 화백의 <나무와 새>, <풍경>, <집과 아이>에서 본 소박하고 천진하며 해학미 넘치는 시절을 향수한다. 

 나는 왜 남의 고향을 곁눈질 하며 이토록 아련한 몽상에 젖어 드는가?

 마음이 가난할 때마다 구원처럼 떠올려 볼 본향이란 게 나에게도 있으면.......싶은 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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