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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 Mar 20. 2020

영혼의 밤, 당신에겐 사막이 필요하다

-조지아 오키프; 뉴멕시코 풍경화, 사막이 들려준 지혜-

영혼의 밤

 지구 곳곳에는 여러 사막이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사막이자 우리에게는 황사바람의 진원지로 알려진 중국의 고비사막, 지구 상에서 남극 다음으로 가장 넓은 사막이자 식생이 없는 적색 평원의 사하라 사막, 성경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곳으로 알려진 이집트의 시나이 사막,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알래스카의 코벅 사막, 지구 최대의 용암 사막인 아이슬란드의 오다다흐라운 사막.......  아득히 넓고 텅 빈 광야는 부처와 신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종교의 근원지요 모험가들에겐 생명이 태동한 곳이자 상처 받은 영혼들에겐 영혼의 안식처이다. 이 위대하고 잔혹한 땅은 가장 순수한 행복감과 가장 최악의 절망감이란 비밀을 간직한 채 인생의 의미와 희망에 목마른 이들을 초대한다. 이 순례자의 길에 조지아 오키프도 올랐다.

조지아 오키프, <페튜니아>, 1924

 미국의 모더니즘이 태동하던 시기인 1910년대 화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조지아 오키프는 가장 성공한 여성화가이자 대표적인 미국의 화가로서 크게 주목받았다. 1916년 5월 뉴욕에서 개최한 전시를 시작으로 수많은 개인전과 단체전을 거듭하며 사실주의와 추상주의 양식이 결합된 소묘, 수채화, 유화를 선보였다. 주로 뉴욕 시가지 풍경과 꽃그림으로, 예술의 정신성을 모색한 화가 칸딘스키와 유럽의 추상미술에 영감을 받았다.

조지아 오키프, <파도, 밤>, 1928

 그러나 1920년데 중엽부터 1930년대 초까지 그녀는 정서적으로 심하게 흔들렸다. 새로운 자극을 찾아 캐나다와 위스콘신 같은 곳으로 짧은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요크비치로 휴양을 떠나기도 했으나 전시에 대한 스트레스는 날로 심해졌고 건강도 나빠졌다. 설상가상으로 인터미트 화랑에서 개최되었던 오키프의 연례 전시회(1929년 2~3월)가 혹평을 받아 작품도 거의 팔리지 않았다(리사 민츠 메싱어). 몇 해 뒤, 오키프는 뉴욕 라디오 시티 뮤직 홀 여성 화장실에 벽화를 그리는 일을 의뢰받았다. 성적 부진으로 조바심을 느낀 그녀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승낙했다. 그러나 성공에 대한 압박감과 강박증 때문에 도리어 반년 동안이나 붓을 들지 못하고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가는 깊은 영혼의 밤을 맞닥뜨리고 있었다.


 지난해에 내 전시회를 보면서 내 방식으로 돌아가거나 그만두어야 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건 내게 모두 죽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답니다(조지아 오키프).


조지아 오키프, <검은 붓꽃>, 1926

 미국의 화단은 여전히 오키프를 찬미하였으나 그녀의 작품에서 전통적인 여성의 스테레오 타입을 확인하는 데 그칠 뿐이었다. 화가 오키프를 '발견한' 명망 있는 사진작가이자 미술평론가이며 뉴욕의 화상인 스티글리츠(오키프의 남편이기도 하다)가 프로이트의 심리학과 여성의 섹슈얼리티로 오키프의 작품 비평의 향방을 정한 이래로, 오키프는 한 화가로서가 아니라 미술의 남성적 가치, 나아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불안해지는 남성성을 수호하기 위한 '영원한 여성성'의 표상으로 조명되었다.1

 오키프는 자신에 대한 이러한 기존 평가를 전복하기 위해선 새로운 연구성과가 필요함을 절감했다. '최고의 여성 화가'가 아닌 '최고의 화가'가 되기 위해 그녀는 문 바깥 세계로 나가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화가는 용기를 내었다. 미술계와 사교계의 중심인 뉴욕을 떠나 더욱이 든든한 스폰서인 남편의 곁을 떠나 가장 성스러우며 가장 잔혹한 아름다움이 깃든 곳으로 향했다. 그녀의 나이 41세에 사막 여정이 시작됐다.



밖으로의 여행

조지아 오키프, <랜초스 교회, 타오스>, 1929

 짧게는 석달 길게는 반년을 오키프는 뉴욕과 미국 남서부에 위치한 뉴멕시코를 왔다 갔다 하며 새로운 회화 양식을 모색했다. 

 광활한 대지와 붉은 언덕, 푸른 하늘과 건조하고 강렬한 햇빛, 검은 협곡과 구릉, 스페인 시대의 잔재들....... 작은 대상을 크게 확대하는 그림을 줄곧  그려오던 오키프에게 광대한 뉴멕시코 풍경은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무한한 공간의 도전에 압도당한 화가는 처음엔 확신이 없는 것처럼 비틀거렸다.

 그러나 뉴욕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이 낯선 경험은 이내 대자연과 창조주에 대한 벅찬 경외감으로 바뀌어 화가의 눈을 밝히고 이윽고 붓을 쥐게 했다. 밝은 햇살에 투명하게 빛나는 모래언덕과 산세 그리고 이 지방의 고유한 건축 형식인 파티오(Patio)와 역사적 기념물인 랜초스 교회....... 오키프는 이 지형의 독특한 생김새를 화폭에 담기 시작하며 자신의 새로운 예술 세계를 열었다.

조지아 오키프, <검은 십자가, 뉴멕시코>, 1929

 뉴멕시코에서 새로운 예술 여정을 시작하며 오키프가 처음으로 눈여겨본 모티프는 랜초스 교회였다. 이 지방의 지형적 조각적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독특한 건축물로 육중한 양감이 강조되었는데 주변 산세와 조화를 이루어 흡사 자연의 일부처럼 보였다. 그림 <랜초스 교회, 타오스>를 보면 건물과 땅이 한 가지 형체로 녹아들면서 건축물이라기보다는 마치 지질시대의 유적처럼 보인다.

 랜초스 교회 그림과 관련하여 십자가 또한 오키프가 뉴멕시코에서 얻은 모티프이다. 작품 <검은 십자가, 뉴멕시코>는 오키프의 십자가 주제 그림 중에서도 가장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거대한 검은 십자가가 전면에 크게 등장하고 그 너머로 무덤 같은 구릉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수평선의 노란빛은 검은 십자가를 역광으로 비추고 있다. "십자가는 뉴멕시코를 그리는 한 가지 방식"이라는 그녀의 말마따나 화면 안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검은 십자가는 미국 남부에서 가톨릭 교회가 지닌 막강한 지배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리사 민츠 메싱어).  

  


 형태는 삭막하고 색깔은 심미적이며, 군더더기가 없어 아주 입체적으로 명료하고, 스페인식 특징과 참회적인(Penitent) 특징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뉴멕시코 풍경은 그녀의 마음에서 떠난 적이 없다(1943년, 시카고 미술학교에서 열린 오키프의 회고전의 카탈로그 글).

 

조지아 오키프, 붉은 언덕, 1930

 이 광활한 사막에서 화가에게 새로운 회화양식을 구축하기 위한 영감을 주는 대상은 많았지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대상은 뉴멕시코의 산이었다. 세잔이 평생에 걸쳐 생트 빅투아르 산을 고집스럽게 그렸듯이 오키프는 뉴멕시코의 산을 많이 그렸다. 그림에 담아낼수록 뉴멕시코의 산은 오키프에게 더욱 각별해졌다. 광활한 하늘 아래 우뚝 솟아있는 산에는 이 땅의 태곳적 에너지와 숨결이 깃들여 있었다.

조지아 오키프, <검은 매사 지대 풍경, 뉴멕시코>, 1930

오키프는 이를 재현과 추상을 결합한 자기만의 회화 양식으로 표현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구도로 그리기도 하고 원근법을 따르지 않고 대상을 평면화 시키고 압축하여 그리기도 했다. 그림을 보면 구릉지의 입체감이 주름지듯 겹쳐있고 색과 검붉은 색이 절제된 무늬를 이루며 시간의 층처럼 차곡차곡 쌓여있다. 

 화가는 봄에서 여름, 길게는 가을까지 수개월을 홀로 고독하게 작업에 매진했다. 그러다가 겨울이 되면 뉴욕으로 돌아와 스티글리츠의 화랑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남편 스티글리츠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뉴멕시코에 아주 눌러앉았다. 그녀가 99세 일기로 죽기까지 무려 50년을 이 곳에서 보내며 그림을 그렸다.

 


안으로의 여행

 한편 오키프가 뉴멕시코를 생활의 터전으로 택한 것은 미국의 미술가라는 정체성의 선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미국이 유럽의 주변부로서 문화적 타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선 유럽 모더니즘 미술과 구별되는 '미국만의 미술'을 창출해야 했다. 1930년대 이후, 그림의 소재를 통해 '자신들의 뿌리'를 표현해야 한다는 각성이 일면서 당대 많은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진정한' 미국의 미술을 위해 정렬을 바쳤다. 그러나 여전히 파리에 대한 상사병을 앓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러한 기류가 채 형성되기도 전에 오키프는 자신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찾고 독창적인 화풍을 구축하기 위해 미국적인 땅을 찾아 나섰다는 점이다. 그녀에게 가장 미국적인 땅은 광활한 자연 풍경이 매혹적인 뉴멕시코였고 오키프는 이 땅의 자연을 ‘자신의 것’으로 여겼으며 특별히 즐겨 그린 대상에는 이름을 지어주기까지 했다. "이 산은 나만의 것이에요. 신이 내게 말했어요. 만약 내가 이 산을 충분히 많이 그린다면 내 것이 될 거라고요"(조지아 오키프).


동부의 집에서는 여의치 않았습니다. 마침내 적합한 곳을 다시 찾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온전히 나 자신이 된 이 느낌이 좋습니다(조지아 오키프).

 

뉴멕시코에서의 조지아 오키프

 이와 같은 이유로 오키프의 후기 회화는 미국의 자연 풍경에 기초한 미국의 정신성의 도입이란 측면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오키프는 개인주의, 고독한 자유, 역경을 딛는 강인한 개척정신이라는 미국적 이상의 상징이자 전설과 신비를 사고파는 미국적 현상을 첨예하게 반영하는 하나의 이미지로서 읽혔다.2

 또한 화가가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바탕으로 자연에서 발견한 에너지와 생명력을 특유의 감수성으로 표현했다는 점을 주목하며 이를 자연에는 신성이 깃들여 있다는 믿음을 받아들인 신지학의 이론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조지아 오키프, <암소의 두개골, 적, 백, 청>, 1931

 특히 오키프가 사막에서 주워온 동물의 뼈를 소재로 그린 그림들은 하나의 작은 숭고한 자연으로 서 화가가 대자연의 영성을 몸으로 느끼고 체현함을 상징한다.

 더불어 미국의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키프는 뉴멕시코 사막과 사막의 유해가 미국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그녀는 뼈를 그리는 것이 "이 나라를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정의하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비록 지역주의자들처럼 아프리카 원주민 문화의 붕괴를 훈계하고 거친 서부의 삶을 감상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틀림없이 미국의 풍경을 숭배한 주제이다. 작품 <암소 머리뼈: 빨강, 하양, 파랑>은 이미 제목 자체가 지시하듯이 미국의 성조기를 떠올린다. 매우 강렬하고 기념비 적이다.3



오랜 시간을 견뎌내어 보니

 오키프는 뉴멕시코 사막에서도 줄기차게 꽃그림을 그렸다.

 그동안 원시적인 섹슈얼리티로 해석되어오던 그녀의 꽃 그림은 1970년 초에 일어난 미국의 페미니즘의 물결이 일면서 재평가받기 시작했다. 화가 오키프의 대한 평가도 달라졌다. 주류 미술계를 주름잡던 남성 비평가에게 발견된 '위대한 여성화가' 오키프가 미술계에서 배척되어 왔던 여성들에게 '위대한 화가'로서 '재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페미니즘 미술 운동의 주요 쟁점은 그동안 여성들에게 배타적이기만 했던 주류 미술계에 여성을 주체적으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페미니스트들이 취한 전략은 남성들이 가지지 못하는 여성만의 특성이 미술에 확실히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그러한 여성성을 적극적으로 고양시킴으로써 가치를 획득하는 것이었다.4

 '남성의 창조력을 되살리는 뮤즈'에서 별안간 '페미니즘 미술의 아이콘'이 된 조지아 오키프. 그녀의 작품을 논할 때마다 여성성의 담론은 늘 주요 쟁점이 되어왔다. 그러나 정작 오키프는 이에 대해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작품을 둘러싼 온갖 비평 언어와 담론의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방편은 묵묵히 작업에 열중하며 그녀가 의지하는 자연과 대화하는 일 뿐이었다.


 나는 한 가지 착상에 매달려 오랫동안 공을 들입니다. 어떤 사람과 친해지는 과정과 비슷합니다(조지아 오키프).

 

조지아 오키프, <독말풀>, 1932

 그녀의 꽃 연작 중에서도 가장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이 <독말풀>이다. 독말풀은 뉴멕시코 자생식물로 흰색의 나팔 모양이며 미묘한 향취를 품고 있고 밤에만 꽃을 피운다. 오키프는 독말풀의 낯설고 이국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그녀는 밤을 지새워가며 꽃이 하얗게 피어나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기어이 보았다. 독말풀이 피워낸 꽃을.

긴 시간 영혼의 밤을 맞던 오키프는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서 고집스럽게 인내하고 오랜 시간을 견뎌낸 끝에 결국 해답을 찾고 자유함을 얻었다. 대자연은 그녀로 하여금 모래 바다를 헤엄치게 하고 검붉은 산맥을 오르게 하고 햇살에 표백된 백골을 보여주며 삶과 죽음을 묵상하게 한 다음 그녀 자신에게로 돌아가게 했다. 가장 온전한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나는 이러한 오키프의 삶과 예술 세계를 보노라면 다음의 글귀가 떠오른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기 23:10)






1)우정아, 「조지아 오키프 비평에 나타난 '여성성'의 담론」,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석사학위 청구 논문, 1998.

2)우정아, 위의 글.

3)리사 민츠 메싱어, 엄미정 옮김, <미국 현대미술을 뒤흔든 화가: 조지아 오키프>, 시공아트, 2017.

4)우정아, 위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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