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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 Jul 07. 2020

고단한 지성에게 보내는 경의

-폴 세잔; 이해받지 못한 은둔형 천재화가가 이룬 예술 성취-

사과 하나로 시작된 현대 미술*

사과로 파리를 정복하겠다(세잔).
폴 세잔, <주전자와 과일>, 1888-90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과를 고르라면 어떤 게 있을까? 얼른 구약성경의 선악과와 뉴턴의 사과가 떠오른다. 가장 가깝게는 매킨토시의 애플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중요한 사과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폴 세잔의 사과이다.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는 호칭과 더불어 피카소가 스승으로 여긴 화가로도 잘 알려진 세잔은, 그동안 회화사에서 인물화나 풍경화에 비해 무시받아 오던 정물화를 자신의 회화의 기틀로 삼아 현대미술의 포문을 열었다.

폴 세잔, <사과 바구니>, 1893

 사과는 형태와 빛깔, 중량감, 그리고 비교적 썩지 않고 오래가는 특성 때문에 세잔이 가장 선호한 소재로 그만의 독창적 양식을 실험하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세잔은 사각 테이블 위에 사과 몇 알과 물병, 바구니, 접시 등을 배치하여 즐겨 그렸는 데, 사과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채 덩어리 째 그려 그것의 질량과 물성을 강조했다. 가장 유연한 정물인 식탁보마저도 마치 석고 주물을 뜬 것처럼 주름을 단단하게 표현했다(세잔은 그림이 끝날 때까지 식탁보의 빳빳함이 유지되도록 미리 물이나 횟물에 식탁보를 담가 놓았다고 한다).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1907

 윤곽선을 두른 형태에 부동성이 강조된 세잔의 정물화는 매우 견고하고 질서정연해 보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인다. 가만히 보니 탁자의 수평선이 평행하지 않고 크게 어긋나 있다. 그 위에 올려진 물병, 접시들은 앞으로 기울어진 것 같다. 그림에는 하나의 고정된 시점으로 공간의 깊이감을 자아내는 원근법도 제거되었다. 사물을 관찰하면 할수록 사물마다 각기 다른 시점에서 그려졌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물병은 전면에서 바라본 모습이데 사과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모습이다. 화가가 개개의 사물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시점을 취해 한 공간에 조합한 것이다. 이 독특한 화법은 우리가 피카소와 브라크의 작품에서 익히 봐 온 것이다. 20세기 입체주의 회화론의 뿌리가 바로 세잔에 기인한 것이다.  



사랑받지 못한 외톨이 화가

나는 매일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점이지. (...) 이제부터는 동료 화가들과 달리 생각하려 합니다(세잔).


 하나의 정물화를 완성하기 위해 세잔은 100회를 작업했고, 초상화를 그릴 때는 모델을 150번이나 자리에 앉혔다고 한다. 세잔의 생전에 그가 작업하는 것을 옆에서 목도한 화가 에밀 베르나르가 말하길 "세잔은 사전에 깊이 생각하지 않은 붓질을 단 한 획도 한 적이 없다"라고 한다. 세잔이 얼마나 뜨거운 탐구열과 집요함으로 작업에 임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비평가들은 그가 상상력이 모자라 대상을 보고 그리지 않으면 안 될 뿐이고 미숙한 형태력과 촌스러운 갈색조의 색감이 형편없다며  혹평했다. 세잔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실패한 화가라며 동정과 조롱을 동시에 받았다. 하물며 그는 아들로서도 곤란한 인물이었다.

폴 세잔, <화가의 아버지>, 1866

 은행을 설립해서 큰 재물을 모은 세잔의 아버지는 세잔이 법대를 가서 법조인이 되길 원했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버지는 예술가가 되고자 한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내 아들은 보엠므이니까 가난하게 살겠지', 라며 낙담하였으나 이왕 예술가가 되기로 한거 내심 출세하길 바라며 자신의 뜻을 거역한 아들의 생활비를 대주었다.

 그러나 세잔은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번번이 미술대학시험에 낙방하여(그는 파리 에콜 데 보자르 대학에 세 차례 떨어졌다)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다. 작가 데뷔의 등용문인 살롱전(미술전)에서도 여러번 미끄러졌다.  

 그림 <화가의 아버지>는 세잔이 그린 아버지의 초상이다. 그림 속 아버지는 살롱전에 등단하지 못하고 낙선한 화가들이 낙선전을 펼치게 해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의 신문 기사를 읽고 있다. 벽에는 정물화 한 점이 걸려있는데 바로 세잔의 그림이다. 아들의 그림을 등지고 앉아 인상을 찌푸리며 신문을 읽고 있는 아버지, 세잔과 아버지 사이의 감정의 골을 대변하듯 화면의 구도가 묘하다.

 기대했던 아들에 대한 실망이 큰 탓일까, 세잔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건네는 돈을 끊었다. 세잔은 돈이 궁할 때마다 세잔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부쳤고 그때마다 아들을 가엽게 여긴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돈을 부쳐 주며 화가의 길을 걷는 아들을 지원했다(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유산을 물려받아 생활비 걱정 없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화단의 인정도 못 받고 생활도 궁핍해 진 무렵 설상가상으로 30년 지기 에밀 졸라와의 우정도 끝이 났다. 미술평론가이자 작가인 졸라는 오랫동안 세잔의 그림에 호의적인 평을 써주고 예술가들과 문인들의 친목모임에 세잔을 소개해 주며 세잔이 부탁할 때마다 군소리 없이 돈도 꿔줬다. 그러나 졸라의 소설 『작품』이 출간되자 이들의 오랜 우정은 막을 내리게 됐다. 소설의 주인공 클로드 랑티에라는 인물이 은둔형 괴짜에 실패한 화가로 묘사되는 데, 세잔은 그 모델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졸라의 지지자들은 졸라가 절대로 세잔을 모델로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으나 상처 받은 세잔은 그 이후로 졸라와 다시는 교류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졸라가 마네와 세잔을 결합하여 클로드 랑티에의 캐릭터를 만든 것 같으나 주인공의 성격이나 생김새가 세잔과 비슷한 것은 사실이다.



지성의 눈 그리고 마음의 눈으로


"세잔은 사물이 자기의 개념 속으로 들어오는 대로 다시 사물이 되기를 마냥 기다릴 줄 알았다. 이것이 자연 앞에 가장 단단하게 무장한 화가요 가장 순수하고 가장 진지한 화가인 것이다"(피에르 보나르)

 

 아버지에게 못난 아들로 내쳐지고 변치 않을 것 같았던 평생의 지기와도 사이가 틀어지자 세잔은 파리를 떠나 자신의 고향인 프랑스 남부지방인 엑상프로방스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1000미터가 넘는 생트 빅투아르산이 있고 산 주변에는 아름다운 아르크 강이 흘렀다. 이곳에서 시작된 세잔의 은둔 생활은 1882년부터 1906년 10월 15일, 그가 사망하기까지 계속되었다.

 생트 빅투아르 산은 세잔의 후기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로, 알려진 그림만 무려 30점 이상이나 된다. 그는 아주 천천히 그림을 완성해 나갔는데 당대 유행한 인상파 화법과는 전연 다른 것이었다.

니콜라스 푸생, <폴리페무스가 있는 풍경>, 1648

 세잔은 인상파 화가들이 구사하는 즉각적인 인상과 빛의 효과, 윤곽선이 없는 불명확한 형태, 밝고 부드러운 색채, 자유롭고 즉흥적이며 모자이크처럼 잘게 부서진 붓터치를 따르지 않았다. 그의 그림에는 햇빛에 의한 진동과 떨림이 없고 견고함과 균질성이 강조되어 있다. 사물은 윤곽이 강조된 형태에 원근법을 대신하여 체계적인 색채의 사용이 이루어졌다(차가운 색은 멀리 따뜻한 색은 가깝게 보이는 특성을 이용). 

 세잔에 의하면, 그는 "푸생을 자연 위에서 생생하게 만들고 싶"어했다.1  자연의 일시적인 외양이 아닌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어떠한 영속적이고 본질적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즉 "푸생의 그림에서 본 놀라운 균형과 완벽함"2  그리고 장엄한 질서를 화폭에 부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체의 눈에만 의지해서는 안 되었다. 세잔의 말대로 "자연을 재생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었다. 세잔은 신체의 눈으로 사물을 면밀히 관찰하고 지성의 눈으로 사물을 이해한 다음 마음의 눈으로 자연과 교섭하고자 했다.   

폴 세잔, <생트빅투아르 산>, 1882–85

 다시 말해 신체의 눈 속에 사물을 가두지 않고 지성과 마음으로 사물의 본질을 꿰뚫고자 하는 것. 그럼으로써 사물과 내가 관계를 맺고 진실을 교감하는 것. 이것이 세잔이 추구한 예술성이다.

 이로써 세잔은 "자연 속의 모든 사물은 구, 원통, 원뿔의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 말은 오늘날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언변으로 손꼽힌다.

 

 나는 이러한 세잔의 예술성을 시인 릴케 시 『전환』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을 확인한다.

"왜냐면, 보라, 보는 것의 한계를, 그리고, 보다 크게 본 세계는 사랑 속에 꽃필 것이니. 얼굴의 작업을 끝냈으니, 이제 네 속의 형상들, 저 사로잡힌 형상들에 마음의 작업을 다 해라. 왜냐면 네가 그 형상들을 사로잡았으나 넌 아직 그들을 모르기 때문. 보라, 내면의 남자, 네 내면의 소녀를, 수천의 자연에서 얻어낸 것, 비로소 쟁취해낸 것, 아직 사랑받지 못한 형상을."



고단한 지성에게 보내는 경의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입증할 것입니다(...) 이제 약속의 땅이 보입니다(세잔).
폴 세잔, <생트빅투아르 산>, 1886


 릴케의 시가 묘사하듯 세잔의 작업방식은 "겸손한 객관성과 믿음을 지니고, 익명의 작업을 하는 가운데 사랑을 모조리 소진시키는"3  일이었다. 웅크리고 앉아 간절한 눈길과 애타는 마음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한 마리의 개처럼. 홀로 고독한 싸움을 벌이는 성자처럼.

 그래서일까 세잔의 그림에는 꾸밈이나 수다스러운 해설이 없다. 그의 풍경화에는 인물도 없고 아름다운 선율도 없다.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변치 않는 실체, 확고부동한 진실만을 붙잡으려는 화가의 집요함이 저 생트빅투아르처럼 고집스럽게 있을 뿐이다.  


폴 세잔, <생트빅투아르 산>, 1904

 못난 자식, 무능력한 남편, 깨진 우정, 무던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며 재능 없이 시간만 허비하며 사는 화가라는 악평을 한 평생 듣고 산 세잔이 도대체 어떻게 자신의 예술 의지를 끝까지 관철시킬 수 있었을까?

 다음은 릴케의 시 『사물마다 서로 교섭의 눈길을 보낸다』의 구절이다. "내가 보살피니 내 속에 집이 있다. 내가 보호하니, 내 속에 쉼터가 있다. 내가 연인이 되니, 아름다운 창조물이 내 곁에서 쉰 뒤 실컷 운다."

 '내'가 '너'를 인식하자 '너'가 '나'를 인식하고, 그리하여 마침내 서로의 곁에서 얼굴을 마주하며 하나가 되는 놀라운 경이. '나'의 존재를 알아봐 주는 '너'가 있어 '나'는 안식할 수 있고 기쁨의 복받친 울음을 터뜨리게 된다는 시의 내용은 외롭고 고단한 세잔의 심경을 대변하는 것 같다.

조르주 브라크, <바이올린과 투수>, 1910

 세간의 인정을 받지 못한 불운한 존재가 자연으로부터 얻은 용기로 날마다 붓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은 나의 마음을 숙연케 한다.

 세잔이 세상을 뜨기 3년 전, 그는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저는 약간의 진경을 개척했습니다. 그렇지만 왜 이렇게 많은 시간과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것입니까? 예술은 순수한 마음을 완전히 바쳐야만 그 결실을 볼 수 있는 사제직 같은 것입니까?"4

 그러나 낙심을 딛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입증할 것입니다. 이제 약속의 땅이 보입니다."5




*미셀 오, 이종인 옮김, 『세잔』, 시공사, 2006.

1)E.H. 곰브리치,『서양미술사(하)』, 열화당미술선서, 1996, 520쪽.

2)위의 글, 520쪽.

3) 릴케는 세잔의 처지가 '비극적'이라고 말한다. 릴케는 세잔이 누구도 완성할 수 없는 '거대한 세계', '본질적 세계'에 묶여 있다고 보았고 그의 작업방식이 마치 ‘개의 바라보기’와 같다고 여겼다. 다음은 릴케의 시 <개>이다.

저 위에서 어느 세계의 형상이

눈길에서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인정받는다.

때로, 비밀스레, 사물 하나 다가와,

그가 그 형상을 통해 밀치고 들어오면

그의 곁에 놓인다.

맨 아래쪽에, 개처럼 아주 다르게,

쫓겨나지도 받아들여지지도 않은 채,

그리고 의심하듯이 자신의 실재를

그 형상에 주어버리고, 그것을 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얼굴을 계속

들이민다. 거의 애원하다시피,

거의 아는 듯, 동의하는 듯,

하지만 포기하면서: 그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에.

최연숙,릴케와 세잔」,독일어문학 제43집』, 영남대학교, 2007, 204쪽.

4)미셀 오, 이종인 옮김, 『세잔』, 시공사, 2006, 95쪽.

5)위의 글, 95쪽.



[참고문헌]

미셀 오, 이종인 옮김, 『세잔』, 시공사, 2006.

에밀 베르나르, 박종탁 옮김, 『세잔느의 회상: 고난의 지성에게 바치는 찬미가』, 열화당 미술문고205, 열화당, 1995.

E.H. 곰브리치,『서양미술사(하)』, 열화당미술선서, 1996. 

최연숙,릴케와 세잔」,독일어문학 제43집』, 영남대학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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