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짓기 힘든 욕망과 해갈되지 않는 의구심과 근사하다는 말로는 턱없이 모자란 매혹 속에서 나는
기억하는 모든 것을 낱낱이 묘사하리라, 타인을 무참히 파해쳐 보리라, 나의 비밀을 깡끄리 폭로하고 말리라, 하는 결기를 다진다.
물론 잘 알고 있다. 내가 그렇게 곧이곧대로 씀으로써 나의 글은 그 누구에게도 헌사될 수 없으리란 것을.
되도록 덜 아프게 남을 헐뜯기 위해선 단어를 바꿀 필요가 있고, 눈곱만큼이라도 남아있을 내 체면을 차리기 위해선 걸러야 할 이야기가 있는데, 모처럼 잘 빠진 문장이라 버리기가 아깝다.
그러니 "글을 쓸 줄 알고 할 말이 있는 사람들의 소명은 사회 구원적인 데 있다"라는 토머스 머튼의 말은 내게 글 쓸 그 어떠한 정당성도 내주지 않는다. 우선 나는 나부터 구원을 해야겠으니.
그럼에도 내게 글 쓸 자격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나는 아주 간단히 대답할 수 있다.
'쓴다. 내가 그것을 바람으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