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미술 칼럼

레스토랑 가는 날

-뷔야르와 르누아르; 레스토랑-

by 양양

레스토랑

어느 휴일 오후, 한 가족이 오랜만에 외식을 나왔다.

식당의 인테리어를 보니 커다란 샹들리에나 화려한 빅토리아풍의 가구는 보이지 않는다. 테이블에도 하얀 테이블보가 씌워져 있지 않다. 강아지마저 출입허가된 걸 보니 동네 어디 조촐한 식당을 찾은 모양이다. 그래도 실내 한 벽면을 꽉 채우는 주황색과 큰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 때문에 실내 분위기는 밝고 아늑하다.

에두아르 뷔야르, <레스토랑>, 1894

엄마는 아낀다고 평소엔 잘 입지 않는 드레스를 꺼내 입고 화장도 곱게 했다. 두 아이들에게도 깨끗한 옷을 골라 입히고 남편의 타이도 신경 써서 골랐다. 큰 아이는 아빠 옆에 앉히고 작은 아이는 엄마 무릎에 앉혔다. 엄마가 작은 아이에게 포크를 쥐어주며 손수 음식을 집어 먹는 걸 가르친다. 이 모습을 큰 딸이 테이블에 한쪽 팔을 기대고서 호기심 있게 쳐다본다. 에두아르 뷔야르의 그림 <작은 레스토랑>이다.

이 그림은 나비파의 핵심 멤버인 뷔야르의 작품으로 보는 이들에게 유쾌하고 따듯한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장식미술의 대가답게 그의 그림은 보통 채도가 높은 경쾌한 색감과 패턴 양식이 돋보인다.


뷔야르는 파리의 쁘띠-부르주아의 삶을 주제로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1890년대에 들어서는 집안 정경보다 이처럼 공공장소에서의 생활상을 즐겨 그렸다.

사실 그림의 배경이야 에드가 드가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뷔야르의 그림은 사뭇 다르다. 드가와 로트레크의 그림 속 공간은 -그림 속 화려한 인물들의 모습과 경쾌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근대 파리인들의 노동과 피로 그리고 향락이 끓는 곳이다. 그러나 뷔야르는 우리에게 한 가족을 보여준다. 젊고 건강한 파리 시민이 어떻게 일상을 보내고 여가를 즐기는지 말이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기쁨도 채우는 장소, 레스토랑에서.



역사와 문학 속 레스토랑

레스토랑. 본래 프랑스어로 레스토랑은 식사를 할 수 있는 장소를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 와인 한 잔, 코디얼(Cordial. 과일을 주스 형태로 만들어서 물에 조금씩 희석시켜 마시는 음료) 한 잔 혹은 고기 육수처럼 원기를 북돋우는 음식이나 음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1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선상 위에서의 점심식사>, 1880–1881

손님이 각자 테이블에 앉아서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고 돈을 지불하는 형태의 오늘날의 레스토랑은 18세기 말에 등장했다. 1780년경, 무엇이라 분류하기 어려운 시설이 파리에 들어섰다. 식료품 가게도 아니고 여관도 아니고 트레퇴르(Traiteur. 주문을 받아 요리를 만들어 배달하는 사람 혹은 음식점 주인)도 아니고 타블 도트(Table d'hote. 하숙집과 비슷한 형태로 정해진 시간에 주인이 주는 대로 식사를 하는 곳)도 아닌 곳, 숙녀 혼자 식탁에 앉아서 샐러드 한 접시와 육수 한 그릇을 주문할 수 있는 청결하고도 사려 깊은 곳이었다. 바로 레스토랑의 등장이다.

레스토랑의 등장은 흥미롭게도 파리의 대혁명(1789년 5월 5일-1799년 11월 9일)과 관련이 깊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프랑스인들은 집에서 식사를 하고 손님도 집에서 맞았다. 식사는 아주 사적인 일이었고 보통의 가정에선 매일 비슷한 음식을 먹었다. 여행가나 방문객들은 여관에서 투숙하면서 여관 주인이 내오는 형편없는 음식을 먹어야만 했다.2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으로 파리의 식문화와 그와 관련된 산업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과 혁명의 발발로 위협을 느낀 콩데 왕자가 피신하자 졸지에 직업을 잃게 된 요리사들이 파리의 거리에서 자신들의 식당을 열었다.

이곳은 손님들에게 다양하고 맛있는 메뉴를 제공하여 인기가 높았고, 자연히 파리의 많은 미식가들이 찾아들었다.

노동자들을 위한 허름한 식당도 파리 거리에 점차 들어서기 시작했다. 혁명에 가담하느라 이른 새벽부터 거리로 뛰어나와 토론과 논쟁으로 시달린 사람들은 아무리 든든히 아침밥을 먹고 나왔어도 이른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허기가 져서 뭘 먹어야만 했다. 이들을 상대로 처음엔 긴 앞치마를 두른 여성들이 끊임없이 거리를 오가며 감자튀김과 홍합을 팔았다. 과일가게에서도 파슬리를 곁들인 감자튀김을 팔았고 푸줏간에서는 즉석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할 수 있게 기름종이에 싼 소시지와 순대를 팔았다. 그러다 서서히 노동자들을 상대로 빵과 고기 수프와 싸구려 포도주를 팔려는 식당이 늘어났다.


"일에 매달려 있던 탓에 식사가 늦어진 노동자들이 배가 고파 침울해진 얼굴로, 성큼성큼 차도를 가로질러 (...) <쌍두 송아지> 식당으로 6수짜리 간단한 식사를 하러 갔다."
(에밀 졸라, 『목로주점』)


피에르 보나르, <카페 테라스>, 1898,

프랑스인들의 식습관도 큰 변화를 맞았다. 당시 상류층들만 하루에 세 번 식사를 했고 노동자나 농부들은 하루에 두 번 식사를 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혁명을 거치는 사이 이러한 규칙은 사라졌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프랑스인들은 친구를 만나거나 함께 식사하는 일을 레스토랑에서 하게 되었다. 불과 대여섯 개 밖에 안 되었던 레스토랑은 곧 파리의 전 지역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3세가 집권한 이후로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레스토랑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리고 1802년, 십 년의 혼란기가 끝나고, 파리에 들어선 레스토랑 수는 무려 이천 개에 달했다.3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페 비스트로>, 1877

레스토랑은 당시 신흥세력으로 급부상한 부르주아들에게도 매력적인 곳이었다. 이들은 부를 축적한 만큼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고 싶어 하고 집안과 몸치장을 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이란 혼란스러운 시기를 거치면서 아주 드러내 놓고 부를 과시하기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여 이들은 은밀한 공간에서 성대한 식사를 하고 사교를 나눌 수 있는 레스토랑을 즐겨 찾았다.

아름다운 조각이 새겨진 은 식기와 나무랄 데 없이 깨끗한 하얀 식탁보, 격식 있는 매너로 조용히 시중을 드는 종업원들. 이 더할 나위 없이 우아하고 매혹적인 상차림! 또한 은근히 풍기는 맛있는 음식 냄새와 잔잔한 음악의 선율!

발자크의 소설 『인간희극』을 보면 당시 파리의 레스토랑에 대해 상세히 알 수 있다. 그의 책은 가히 파리 사회와 미식문화에 대한 실용적인 보고서라 할 만하다. 발자크는 이 책을 통해서 무려 40여 개의 레스토랑을 언급한다. 가장 화려한 레스토랑부터 가장 소박한 레스토랑까지, 그곳의 실내장식이며 분위기며 서비스 수준이며 메뉴까지 자세히 묘사했다.

발자크에게서 별 3개를 받아 만점을 기록한 레스토랑은 베리와 르 로세 드 캉칼, 이렇게 두 곳인데 특히 베리의 유명세가 대단했다. 베리가 다른 레스토랑보다 한 발 더 앞서 나갔던 점은 인원이 많은 단체 손님이나 단둘이 사적인 시간을 보내길 원하는 손님을 배려해 독립된 방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종업원들은 이 방에 들어갈 때면 반드시 노크를 했다. 베리는 오늘날 파리 보졸레 가에 자리를 잡고 있다.4


"베리에서 식사를 했던 사람은 결국 베리로 돌아왔다. 1년 내내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신선한 생선을 먹을 수 있었고(...) 베리는 왕정복고 시절에도 인정받은 레스토랑의 왕궁이자 왕궁을 위한 레스토랑이었다"(발자크, 『잃어버린 환상』)

베리와 같은 파리의 고급 레스토랑을 찾은 이들은 주로 무엇을 먹었을까?

파리의 미식가들과 부르주아들은 신선한 생선과 굴 요리를 대단히 좋아했다. 프랑스 정신의 가장 독창적인 특징들 중 하나는 '신선함'의 개념을 크게 중시하는 것으로, 이 '신선함의 미학'은 요리의 차원에서도 어김없이 표현되었다. 그것은 생굴과 생야채를 선호하는 취향이다.

프랑스보다 더 해양적인 민족들도 신선함에 대하여 이 정도의 숭배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영국 사람들은 굴을 익혀 먹고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조개와 갑각류라면 질색했다.

프랑스인들은 후식도 독일인이나 영국인처럼 설탕에 절인 과일이라든가 파이보다는 자연산 과일을 선호했다. 이 신선함에 대한 애착은 프랑스 부르주아들의 사치와 세련의 극치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겠다.5


1)앙카 멀스타인, 김연 옮김, 『발자크의 식탁』, 이야기나무, 2016, 49쪽.

2)위의 책, 48~51쪽 참고.

3)위의 책, 51~54쪽 참고.

4)위의 책, 57~58쪽 참고.

4)미셸 투르니에, 김화영 옮김, 『예찬』, 현대문학, 2004, 99쪽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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