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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 Aug 21. 2020

밥벌이(2)

-마네, 카유보트, 드가, 로트레크; 도시의 일꾼-

도시의 일꾼

클로드 모네, <노르망디 기차의 당도(생 라자르역)>, 1877

 후기 인상주의 회화로 갈수록 노동의 주제를 새롭게 부각하려는 시도가 일었다. 에드워드 마네와 에드가 드가, 구스타프 카유보트 등이 무산계급의 노동을 회화의 주제로 삼았으나 그것의 성격과 분위기는 앞서 본 쿠르베나 밀레의 그림과는 전연 달랐다. 이들은 자신의 시대와 환경에 대해서 매우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려고 애썼으며 일터와 생활공간이 공존하는 도시 공동체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구스타프 카유보트, <마루를 깎는 사람들>, 1875

 젊고 진보적인 인상주의 화가들은 가난한 삶과 

노동의 현장에서 마주하는 어두운 부분들을 모두 걷어냈다. 육체노동의 영웅성, 존엄성, 근면성과 같은 윤리적 가치를 시각적 도식으로 창조하려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대신에 그 자리에 일하는 여인의 두툼한 팔뚝이나 웃통을 벗은 인부들의 근육질 몸매, 졸음에 겨워 하품을 하는 여인을 그려 놓았다. 이들의 모습은 비참하거나 우울해 보이지 않고 어떠한 사회적인 메시지를 주장하지도 않는다.

 이는 에드가 드가와 툴르즈 로트레크와 같이 부르주아 계급 출신의 화가들이 속속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인상파 특유의 밝고 자유로우며 낙천적인 화풍 탓도 있었다.

에드가 드가, <뉴 올리언스의 코튼 사무소>, 1873

 드가의 <뉴 올리언스의 코튼 사무소>은 드가의 삼촌이 운영했던 면화 중개업소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그림 속 면화의 품질을 더듬고 있는 사내가 바로 드가의 삼촌이고, 왼쪽 창문에 기대어 서있는 사내와 그림 중심부에 신문을 읽고 앉아 있는 사내는 가의 형제이다.

 1872년, 드가는 두 형제와 삼촌이 있는 뉴 올리언스를 방문했다. 그는 원래 짧게 여행을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갈 계획이었으나 귀국이 지연되는 바람에 그곳에 남아 그림을 그리게 됐다. 드가는 삼촌의 사무실을 들락거리며 나중에 영국 섬유 제조업체에 판매할 의도로 이 그림을 그렸는데 경제 불황 때문에 예술시장과 면화시장이 쇠퇴하면서 그림 판매에 대한 희망을 접어야 했다.

 당시 어려운 경제사정 때문에 삼촌의 면화 중개업소는 파산의 위기에 처했는데도 그림의 분위기는 어둡거나 무겁지 않고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일터라는 인상만이 강하다.    

에드가 드가, <다리미질하는 여인들>, 1887

 드가의 또 다른 작품 <다리미질하는 여인들>을 보노라면 얼른 에밀 졸라의 소설 『목로주점』의 몇 장면이 떠오른다.:

 "클레망스 양, 캐미솔을 다시 입어요. 그러고 있으면 다 보이잖아요. 벌써 가게 앞에 선 남자가 셋이나 돼요. (...) 클레망스는 서른 살도 안됐는데 벌써 뼛골이 빠질 정도로 방탕에 젖어 있었다. 강렬한 환락의 밤을 보낸 다음 날이면, 그녀는 길을 걸어도 공중에 붕 뜬 듯 발에 감각이 없었고, 머리와 배가 넝마로 가득 찬 듯 온종일 일을 하면서도 멍하니 졸았다. 그래도 그녀는 해고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 어느 다림질장이도 그녀만큼 맵시 있게 남자 셔츠를 다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자 셔츠에 관한 한, 그녀는 달인이었다. 

"나 좀 내버려 둬요, 제발." 마침내 그녀가 젖가슴을 탁탁 치면서 말했다. (...) 달구어진 쇠 냄새, 쉬어 가는 풀물 냄새, 살짝 탄 다리미 냄새, 욕조처럼 미지근한 냄새가 가게를 가득 채웠는데, 거기에 어깨가 빠지도록 일하는 네 여자의 틀어 올린 머리와 땀에 젖은 목덜미에서 나는 진한 사람 냄새가 뒤섞였다."1

구스타프 카유보트, <발코니에서>, 1880

 여기에는 동정과 비애와 같은 낭만적 감수성이라던가 의미 있는 사건으로 몰고 가려는 정치적 의도 일랑 전혀 없다. 다만 배경과 인물의 순간적인 동세를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는 인상주의 그림에 나타나는 특유의 표현적 특질인데, 전통적인 인간관에 대한 무심으로도 읽힌다. 

 또한 인상파 그림의 창의적인 시점도 한몫한다. 멀리서 바라본 시가지 전망이나 2-3층 높이의 호텔, 아파트 발코니에서 내려다본 도시 전경을 보라. 이렇게 원거리에서 그리게 되면 인물의 형체는 마치 점처럼 불명확해진다. 자연히 인간성을 드러낼 만한 어떠한 특질이 그림에 드러나기 힘들다. 

 한편 어느 한 장면을 클로즈업해서 생활의 단면을 뚝 잘라 보여주는 식도 있다. 이러한 이례적이고 대담한 화면 구도는 감상자들에게 현장감과 생생함을 안겨 준다. 그러나 어떠한 감정이 끼어들 여지란 없는 것이다. 

에드워드 마네, <카페의 코너>, 1878-1880

 이에 대하여 영국의 저술가 제랄드 보르낭(Gerald Brennan)은 다음과 같은 비판의 글을 남겼다. "그들은 똑같이 인간적인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들은 길을 가는 사람을 도와줄 수 없으며 작은 집에 은총을 내릴 수도 없다. 어떤 감정을 느끼려면 인간의 지평에서 그들을 보아야 한다. 사람은 상대와 보조를 같이 할 때에 그 사람에게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2

 

 이처럼 인상주의 화가들은 철저한 관찰자로서 임했다. 대상의 사소하고 세부적인 상황 속으로는 흡수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했다. 내부와 외부의 극적이고 심리적인 의미가 내포된 이미지는 회피하고 보이는 대상의 구체성과 객관성을 묘사하였다. 인상주의 화가들의 시각은 카메라 렌즈의 시각과 비슷한 것이었다.

 


 

에드가 드가, <포주의 이름 축일>, 1876-1877

 그러나 이 냉철하고 객관적인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 속에도 어김없이 잔인하고 구질구질한 인간사가 노출되어 있다.

 드가는 도덕적 타락이 일상화된 근대 도시의 음침한 구석 또한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작품 <기다림>과 <포주의 이름 축일>은 모파상의 창녀촌 소설 <텔리에르의 집>의 삽화로도 사용되었는데, 매음굴에 득시글거리는 창부들의 벌거벗은 육신이 과감 없이 그려져 있다. 

 드가는 매춘의 양상에 대해 이중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작품 <기다림>은 헐값에 몸을 파는 노동자이자 사회로부터 배척된 천민으로서 손님을 따분하게 기다리는 근대 창녀의 서글픔을 보여주는 반면, <포주의 이름 축일>에서는 창부들이 포주의 이름 축일 덕분에 손님을 받지 않고 벌거벗은 상태로 포주에게 꽃다발을 안겨주려 하고 있다. 여기서 포주와 아가씨들은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관계이면서도, 잠시의 휴식기에는 마치 가족적인 분위기인 양 외현 되는 계급적 아이러니를 엿볼 수 있다.3

에드워드 마네, <폴리 바르제르 술집>, 1881-1882

 에드워드 마네 또한 매일 경험하는 도시의 노동현장을 셀 수 없이 많은 스케치와 그림으로 남겼다. 

 근대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신흥계층인 부르주아들이 경제권을 갖고 사회의 주류세력이 되었는데, 이들은 예술과 문화를 향유하는 데 필요한 교양은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대신에 이들의 막강한 자본력으로 퇴폐문화가 성행했다.  

 퇴폐문화의 중심지는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에 위치한 유명한 두 술집으로, 오늘날에도 그 유명세가 대단한 물랑루즈와 폴리 바르제르이다.

 파리의 사내들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이 두 술집에서 여흥을 즐겼고 화가 로트레크를 비롯하여 여러 화가들도 술집을 들락거리며 근대 파리인들의 밤문화를 관찰했다. 마네의 <폴리 바르제르 술집>은 그것의 기록이다.

 그림을 살펴보자. 화면 중앙에 젊고 아리따운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은 술병이 가득한 테이블 위에 두 손을 얹고 거울을 등지고 섰다. 폴리제르 술집의 바텐더이다. 거울에 비친 인파들로 보건대 술집 안이 매우 시끄럽고 정신없이 북적임을 알 수 있다. 술집의 분위기는 한참 무르익어 가고, 검푸른 연미복과 중절모를 쓴 한 사내가 이 여성에게 다가와 어떤 거래를 제시하고 있는 모습이 거울에 비친다. 사내의 말을 듣고 있는 여성의 얼굴이 몹시 피곤해 보인다. 사내는 도대체 무엇을 요구했을까?

앙리 드 툴루주 로트레크, <물랑루즈에 들어가는 라 굴뤼>, 1892

 당시 파리 인구수는 200만 명을 넘어섰고 도시 인구의 크기에 비례해서 매춘부의 수도 늘었다. 19세기 중반부터는 관청에 등록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매춘부가 두드러지게 증가하여 싸구려 여인숙이나 술집에서의 매춘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1870년 주류소매업의 자유화 법안이 통과되면서 이제 카바레, 카페, 포도주 소매상점, 선술집 등에서도 비밀 매춘이 공공연히 행해짐에 따라 세기말 매춘의 공간은 도시 전체로 확대되기에 이른다.


 몽마르트르 가의 이미지 사냥꾼으로 알려진 로트레크 역시 화려한 도시의 뒷공간에 대해 진지하게 관찰하면서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는 실제로 창부촌에 거주하거나 자주 들락거리면서 보고 체험한 일상의 한 단면을 감각적으로 그려냈다.

 이처럼 마네, 드가, 로트레크는 대도시에 넘쳐나는 불안과 도덕적 폐해, 소시민들의 근면한 노동에도 해갈되지 않는 걱정거리들, 파리 변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급 계층의 어두운 양상을 목격한 그대로 화폭에 담았다. 이는 당시 아노미 상태에 빠진 파리 사회와 하급 노동자 계층이 겪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드러낸 리얼리티의 기록이었다.4





1)에밀 졸라, 유기환 옮김, 『목로주점』, 열린책들, 2011, 200-201, 216쪽.

2)린다 노클린, 권원순 옮김, 『리얼리즘』, 미진사, 1997에서 참고.

3)홍석기, 『인상주의: 모더니티의 정치사회학』, 생각의 나무, 2010, 254쪽.

4)위의 책, 250-258쪽에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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