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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 Oct 24. 2020

가능한 한 행복하고 가능한 한 별탈없이

-보나르와 마티스; 일상에서 찾은 감사와 행복-

일용할 양식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엘리자베스 길버트).
피에르 보나르, <정원을 향한 아침식사>, 1930

 늘어지게 자고 일어난 일요일 아침이다.

 버터를 바른 따듯한 빵 한 덩어리, 삶은 달걀 두 개, 잘 구운 베이컨 두 줄, 치즈 몇 조각, 먹기 좋게 썰어낸 사과와 토마토, 그리고 막 내린 커피. 이것들을 가장 아끼는 식기에 담는다. 유튜브에서 맞춤한 음악도 고른다. 검색창에 키워드만 입력하면 그날그날의 날씨와 무드에 딱 들어맞는 음악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가령 '선데이 모닝 블랙퍼스트'라고 치면 클래식컬 뮤직부터 경쾌하고 감미로운 보사노바와 재즈 뮤직까지 줄줄이다.  

 좀 더 조용하고 편안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을 땐 자연의 소리도 좋다. 숲 속의 새소리, 빗소리, 모닥불 타는 소리, 파도 소리, 사막의 모래바람 소리....... 그러면 집에 있으면서도 마치 야외에 나와 소풍 도시락을 먹는 기분을 낼 수도 있다.    

 이제 남편을 부른다. "말짜이트! Mahlzeit! 식사해요!)"

 남편이 식탁 앞에 앉아 가만히 두 손을 모은다. 나는 그의 모습을 조용히 관찰한다. 식전에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경건한 신앙심과 겸손함이 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마 6:11) 이 짧은 기도문에는 우리가 먹는 빵 한 조각 물 한 방울에 대한 의미를 새삼 깨우친다.

장 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식전의 기도>, 1740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육체의 소용에 닿는 모든 것들을 신에게 간구하도록 이끈다. 하나님, 우리에게 지속적인 양식을 약속해 주시고 우리에게 평강을 주옵소서!  

 먹이시고, 기르시고, 돌보아주실 것을 날마다 기대하고 소망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나는 얼른 샤르댕의 그림 <식전의 기도>가 생각난다. 

 샤르댕은 18세기 프랑스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으로, 당대 회화분야 중 가장 저급한 장르로 취급된 정물화로 왕립미술원의 정회원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의 소박한 정물화와 중산층의 실내정경을 담은 풍속화는 드니 디드로 등 당대 최고의 비평가들로부터 커다란 찬사를 받았다. 특히 초창기 샤르댕의 성공은 사물에 대한 치밀한 관찰에 기초한 그의 정물화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종교나 신화, 역사를 주제로 한 역사화가 지배하던 당시 프랑스 화단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상당히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데뷔 초기인 1720-30년대 샤르댕은 과일이나 야채, 생선이나 육류 등 일상 식생활의 기본이 되는 단순한 소재를 바탕으로 일련의 정물화를 제작하였고, 이후 1740년대에는 풍속화 제작에 집중하다가 다시 1750-60년대에는 정물화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1) 


 샤르댕의 그림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자 대중적 사랑을 많이 받는 이 그림은 어머니가 저녁 상을 차려 놓으면서 어린 두 딸에게 감사기도를 드리자고 권하는 장면이다. 예배당의 성화나 성모자상에서 경험한 성스러움과 고상함이 보통 가정집의 조촐한 식탁 위로 옮겨온 듯하다.  

 흥미롭게도 샤르댕의 그림을 사랑한 마르셀 프루스트가 그의 유명한 소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이 <식전의 기도>를 암시하는 듯한 글을 써 눈길을 끈다.: “식탁을 준비하는 여인의 앞으로 기울어진 몸, 즐겁게 움직이는 그녀의 손과 오래된 식탁보, 아직은 이가 나가지 않은 그릇들 사이에는 우정, 아니 애정이 느껴진다.”

장 밥티스트 시메용 샤르댕, 버틀러의 식탁,1756

 프루스트의 영향 때문일까, 정말로 샤르댕의 그림 속 사물들이 미묘하게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접시, 찻잔, 냅킨, 마른 빵 덩어리, 복숭아, 달걀 등 프랑스의 어느 가정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이 사소한 것들이 너무도 가치 있는 대상으로 바뀌어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1728년 왕립미술원 입회작으로 제출한 그림 <뷔페>는 정물화로서는 이례적으로 높이가 거의 2미터에 달한다. 하얀 식탁보가 깔린 식탁 위에는 포도주와 각종 과일들이 탐스러운 빛깔을 뽐내며 수북히 쌓여있다. 이 밑에서 개 한 마리가 목을 빼 들고 군침을 삼키고 있다. 

 한편, 생애 후반기에 그려진 정물화는 전반기에 그려진 정물화와 비교했을 때 빛의 처리나 물체의 질감 같은 기법의 변화가 눈에 띄며 특히 그림의 대상이 크게 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1720년대 중반부터 1730년대 중반까지 그의 정물화의 중심 오브제가 포도나 사과, 고등어나 가오리, 양파나 오이, 양고기나 닭고기 였다면, 그림 <집사의 식탁>에서 보이는 것처럼 50년대 이후부터는 값비싼 도자기와 은잔, 유리잔 등이 자주 등장하며 그림에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장 시메옹 샤르댕, <뷔페>, 1728

 그런데 샤르댕은 왜 비인기 장르인 정물화를 고집했을까? 알려지기로, 샤르댕은 본인의 이름조차도 제대로 쓰지 못했던 문맹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동료화가이자 왕립미술원장이었던 피에르로부터 늘 비아냥을 받았다고 한다. 원장인 자신보다 더 세속적 성공을 거둔 샤르댕에 대한 질투심에서 나온 과장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편지나 일기 등 샤르댕 본인이 쓴 기록물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그가 문맹이었다는 소리가 아주 터무니없는 억지소리는 아닌 듯싶다. 적어도 샤르댕이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즐기지 않았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더구나 장인계급 출신의 샤르댕이 역사나 문학 등 역사화 제작에 필수적인 고전교육을 받지 못했음도 명백하다. 역사화가로 성공할 가능성이 없음은 샤르댕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진로를 고심하던 샤르댕이 정물화를 택하게 된 배경은 당대 대표적 미술애호가 마리에트가 1749년 샤르댕에 관해 쓴 메모에서 잘 나타난다. 이를 직접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누군가가 사냥한 산토끼 한 마리를 그에게 선물했다. 산토끼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샤르댕은 이를 그려 친구들에게 보여 주었고, 샤르댕의 놀라운 재능을 발견한 친구들은 그를 크게 격려했다. 산토끼만 그려 넣으니 캔버스가 약간 공허했으므로 샤르댕은 주방용품 몇 개를 추가했고, 그러자 이 그림은 완벽한 구성을 갖춘 작품이 되어 곧 구매자가 나타났다. 이 구매자는 이 산토끼 그림과 짝을 이룰 작품으로 오리 그림을 주문했고, 이후 샤르댕은 많은 정물화를 제작하게 되었다.”2)

 샤르댕의 정물화는 이후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상당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마네와 세잔은 샤르댕의 정물화를 바탕으로 한 여러 점의 정물화를 남긴 바 있다. 



스위트 홈

집이 장미빛이라는 걸 기억하십시오(피에르 보나르).
피에르 보나르, <핑크색 소파가 있는 욕실>, 1908

 소박하고 친숙한 서민적인 일상에서 회화의 모티프를 찾는 앵티미스트(Intimiste) 화가 피에르 보나르는 샤르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보나르는 프랑스 국방부 중요 관료의 아들로 태어나 여유로운 환경 속에서 자랐고 고등교육을 받은 지성적인 화가였다. 그는 그림뿐만 아니라 문학과 철학을 좋아하였고, 라틴어와 그리스에도 능통했다. 처음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법대에 들어가 학위를 받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을 하기도 했으나, 그림에 대한 열정 때문에 결국 미술대학에 들어가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웠다. 거기서 훗날 나비파(Nabi. 히브리어로 비전의 전수자 혹은 선지자라는 뜻)의 멤버인 에두아르 뷔야르, 폴 세뤼지에, 모리스 드니 등을 만나게 된다.

 보나르는 정물, 거리와 실내풍경, 목욕하는 여인을 주로 그렸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주변 풍경이지만 그의 그림에는 눈부신 황홀함이 있다. 모리스 드니가 말한 것처럼, "보나르는 노란 호박을 금빛 마차로 바꾸는 요정과 같은 재주를 갖고 있다. 그는 황량한 일상을 찬란하게 만든다. 그의 붓이 닿으면 화장실도 천일야화의 한 배경으로 바뀐다. 그것은 경탄을 자아내는 광경이고 빛의 유희이며, 그의 본능이 창조하고 그의 감각이 이끄는 흥미진진한 경험, 유희로서의 회화이다."

피에르 보나르 <붉은 바둑판무늬 식탁보>, 1912

 그림 <핑크색 소파가 있는 욕실>은 보나르가 그린 아내 마르타의 초상이다녹색 벽지노란 카펫핑크색 소파가 어우러진 실내에서 마르타가 벌거벗은 몸으로 아침 햇살을 쬐고 있다원형 욕조에는 그녀

를 위한 따뜻한 물이 준비되어 있다. 그녀는 기지개를 한 번 켜고 이제 막 목욕을 할 참이다

 보나르는 마르타의 젊고 싱싱한 육체의 아름다움을 여러 폭으로 담았다. 그녀가 거울 앞에서 몸단장 하는 모습, 몸을 숙이고 옷을 입는 모습, 밝은 빛 속에 드러난 그녀의 피부색을 세련된 솜씨로 묘사했다. 자칫 관능적이거나 퇴폐적으로 보일 수 있을 법한 누드화가 이처럼 우아하고 편안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내를 바라보는 보나르의 다정한 시선 때문일 것이다마르타는 보나르의 사랑스런 아내이자 그에게 회화적 영감을 안겨주는 평생의 뮤즈였다

 <붉은 바둑판무늬 식탁보>는 마르타와 애완견의 모습을 담았다. 독특하게 두 부분으로 화면이 나뉘었다. 붉은 바둑판무늬 식탁보가 그림의 2/3를 차지하게 그림으로써 입체감보다는 디자인 적이고 장식적인 감각을 살렸다. 그런 면에서 이 그림은 얼른 마티스의 <붉은 방>을 떠올린다.



그리고 친구

오늘 아침 처음으로 떠오른 사람이 당신이었다는 사실을 글로 알리는 것이 기쁘군요(앙리 마티스).
앙리 마티스, <붉은 방>, 1908

 보나르는 미술대학에서 수학할 때부터 친교를 맺어온 뷔야르와, 같은 시기에 활동한 앙리 마티스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작업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예술가로서의 고민과 고통을 토로하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애정 어린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으며 어려운 시기를 버텼다.


보나르와 뷔야르의 편지:

 "친애하는 뷔야르. 당신의 편지를 수십 번 음미하면서 읽었습니다. (...) 저는 파리에서 완성할 작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실 <솔페지오>에 무얼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지나칠 정도로 점잖은 소품을 하나 완성했습니다. 제가 고전에 심취하게 된 걸까요? 아니면 무기력해진 걸까요?"(보나르, 1897년 8월 7일)

 "친애하는 보나르, (...) 당신의 그림을 혹평하는 예술 극장의 간행물을 받았습니다. 모두 혐오스러울 뿐이니 신경을 쓰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 저는 한동안 손을 놓았지만 지금은 다시 작업을 시작한 상태고 (...) 대부분의 시간은 혼자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심심하지는 않습니다. (...) 친애하는 보나르, 뭐 필요한 것은 없습니까? 시간이 있을 때 글 한 줄 써서 보내 주세요. 당신의 편지는 제게 큰 기쁨을 줍니다."(E. 뷔야르, 1892년 11월)** 

피에르 보나르, <화장대와 거울>, 1923

보나르와 마티스의 편지:

 "오늘 아침 처음으로 떠오른 사람이 당신이었다는 사실을 글로 알리는 것이 기쁘군요. 저는 당신의 작업을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분명하게 기억한 적은 결코 없을 정도이지요. 장미나무 풍경이 있는 그림은 아직까지도 눈에 선합니다. 정말 마음에 드는 그림입니다."(마티스, 1940년 1월 8일)

 

"제 연구를 그렇게 높게 평가해 주시니 기쁩니다. 저는 당신이 모든 상투적인 미학적 관례에서 벗어난 정신의 소유자라고 생각합니다. 화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가장 큰 자산, 자연을 직접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은 오직 그 뛰어나고 싱싱한 정신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지요. 당신 덕분에 저도 그 정신을 약간을 누리고 있습니다."(보나르, 1940년 1월)3)

 

피에르 보나르, <전원의 식당>, 1913

 보나르와 뷔야르와 마티스, 이 세 화가는 삶과 예술에 대한 막대한 불안을 작업으로 극복하려 했고 서로에게 쓰는 편지로 기운을 얻었다. 뭘 하는지 일일이 털어놓지는 않더라도 서로가 각자직무에 전념하고 있다는 알았다. 그렇게 서로를 격려하고 의지하며 묵묵히 자신들의 작업을 계속해 나갔다.

 특별히 보나르와 마티스의 우정에 대하여 장 클레르는 다음과 같이 썼다. "쌍둥이처럼 닮은 서로의 작업 진척 상황에 대해 예절을 갖춰 묻고, 진실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 이기주의와 편협함을 배제하고 서로 돕는 모습은 마치 베네딕트파 수도사들 같다."4)




1) 전동호,「물건들의 삶: 샤르댕의 정물화 속에 등장하는 음식과 18세기 프랑스의 음식문화」, 미술사와 시각문화, 16권, 2015, 90쪽.

2) 전동호, 위의 글, 95쪽.

3) 모리스 드니, <색의 잔치 벌인 최고의 색채화가>, Economist 694호, 2003년 6월 30일 기사 내용, 함수연,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 작품에 나타난 일상성 연구」, 상명대학교 미술대학 석사학위 청구 논문, 2004에서 재인용.

4) 앙투안 테라스, 지현 옮김,『보나르』, 시공사, 2001, 102쪽, 114-115쪽.


[참고문헌]

전동호,「물건들의 삶: 샤르댕의 정물화 속에 등장하는 음식과 18세기 프랑스의 음식문화」, 미술사와 시각문화, 16권, 2015.

함수연,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 작품에 나타난 일상성 연구」, 상명대학교 미술대학 석사학위 청구 논문, 2004.

앙투안 테라스, 지현 옮김,『보나르』, 시공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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