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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양 Jan 15. 2021

나는 작은 일을 큰 사랑으로 한다

-베르메르와 샤르댕; 일상의 아름다움과 소명-

일상에서 찾은 아름다움

 네덜란드 출신 화가 중 렘브란트 다음 세대로 가장 중요한 화가로 꼽히는 인물이자 우리에게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잘 알려진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에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을 다룬 베르메르의 '앵티미즘'1 회화는 종교적이거나 도덕적인 교훈이 있거나 역사적 메시지를 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장대한 역사화보다 품위가 있고, 감미로운 로코코 화풍보다 매혹적이며, 엄숙한 종교화 보다도 금욕적이다. 온화한 햇살이 감도는 집안 정경과 조용히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인물의 모습이 얼마나 진실되고 아름답게 묘사되는지...... 차분하고 고요한 시정과 우리를 묵상으로 이끄는 힘. 이는 베르메르의 그림이 부리는 신비한 마술이다.  



날마다 하는 일 날마다 정성 들여

안쪽 벽에 걸린 버들 광주리, 녹색 식탁보가 덮여 있는 탁자, 푸른 수건, 치즈, 청색 로카이유 도제 항아리, 물받이 단지, 붉은빛... 붉은빛 단지의 강렬함(공쿠르 형제).
요하네스 베르메르, <우유를 따르는 여인>, 1660

 베르메르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을 그림 <우유를 따르는 여인>을 보자. 왼쪽 측면에 난 창문을 통해 오후 햇살이 실내로 들어온다. 녹색의 식탁보가 덮여 있는 탁자 위에는 푸른 수건과, 치즈, 청색 로카이유 도제 항아리, 빵, 물단지가 놓여있다. 햇살이 정물들의 표면을 반짝반짝 빛내고 색을 더하며 실내의 공기를 포근하게 감싼다. 

 탁자 옆에, 파란 치마에 노란 윗도리를 입은 수수한 모습의 여인이 침착하고 신중한 자세로 질그릇에 우유를 따르고 있다. 우유는 하얀 윤기를 빛내며 또르르, 하고 쏟아진다. 모름지기 수만 번은 했을 텐데도 여인은 마치 처음 하는 일처럼, 단 한 방울의 우유도 흘리지 않으려는 듯 정성을 들이고 집중하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나 경건하고 겸손하다.

 그림의 배경은 우리의 시선을 여인에게 잡아두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절제시킨 분위기가 난다. 그러나 배경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너무도 사실적인 묘사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넓고 휑한 회색조의 벽에는 움푹 움푹 파인 못 자국들이 보이고 석회가 떨어져 간 자리의 우둘투둘함이 손끝에 전해질 정도다. 이처럼 아주 세밀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묘사했음에도 그림의 주제를 방해하지 않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레이스를 뜨는 여인>, 1669-1670

 우유를 따르는 사소한 행위, 이 소박한 일상성을 주목한 화가의 눈길은 이제 <레이스를 뜨는 여인>에게 이어진다.

 양 갈래로 머리를 따고 노란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뜨개질에 집중하고 있다. 어찌나 일에 열중한 모습인지, 그녀가 기울이는 주의력이 방안을 꽉 채우는 듯해 나는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숨을 참게 된다.

 이 그림 역시 젊은 여인에게 초점을 맞추기 위해 배경을 절제시켰다. 하물며 의도적으로 전경을 흐릿하게 처리했다. 레이스를 뜨는 여인의 손과 탱탱한 실의 묘사는 방석 위에 흘러내리는 실가닥의 불분명한 묘사와 대조를 이룬다. 마치 카메라로 줌인한 부분만 명확하게 하고 나머지는 흐릿하게 처리하는 효과와도 같다.2


 만일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일반 은총에 더 주목하라'라고 외친 '칼뱅주의의 정신'3 이 가시화된다면 꼭 베르메르의 그림 속 여인들과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정신을 지배한 칼뱅주의가 모든 직업이 -설사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나의 '소명'이라고 인식하였듯이, 서민의 삶 가운데 반복적으로 맞이하는 장면과 매일매일 수행하는 하찮은 일과를 더없이 귀중하게 그려낸 베르메르의 그림은 모든 삶의 영역이 '예배'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4

 더욱이 주목할 점은 '빛'이다. "인물들의 용모를 부드럽게 만들고 머리카락을 후광으로 둘러싸고 여인들이 입은 옷자락을 비단처럼 반짝이게 하고 그녀들의 아주 평범한 행동을 신비스러운 광채로 둘러싸는"(파스칼 보나푸) 베르메르의 그림 속 빛 말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사가 비단 성인이나 성직자에게만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내 생명과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부어지는 것임을 보여준다. 성경은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게 주어진 일을 정성스럽게 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소명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일상과 자기 일은 더없이 존엄하고 중요한 것이다.



나는 작은 일을 큰 사랑으로 한다


 샤르댕의 그림은 사물을 대하는 영혼과 그것을 아름답게 감싸는 빛 앞에서 모든 것은 신성한 평등함을 갖는다. 그는 관습 안에 갇혀 약해진 아름다움 혹은 인위적인 취향이 아닌 자유롭고 강하고 범세계적인 아름다움을 현실 속에서 발견하게 해 준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세계를 열어주고, 아름다움의 바다에 안내한다(마르셀 푸르스트).
장 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시장에서 돌아옴>, 1739

 네덜란드에 베르메르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샤르댕이 있다.

 질서 있고 명료하게 구성된 공간과 차분한 색조, 그림 전반에 흐르는 고요함 탓에 샤르댕의 풍속화는 흡사 '인간이 들어간 정물화'로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바로크의 회화처럼 은유와 상징으로 그린 것이 아닌, 어떠한 과장이나 왜곡 없이 사실적으로 그렸다. 세심한 관찰력으로 사물의 물질성을 묘사하고 그것들에 깃든 고유한 서정과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시장에서 돌아옴>, <빨래하는 여인>처럼 별 볼 일 없다고 치부한 일상이 향기와 풍요로 가득한 그림의 대상이 된 것은 일상을 바라보는 화가의 따뜻하고 진지한 시선 때문이다. 우리가 그저 보잘것없는 일상의 사물들을 볼 때, 샤르댕은 그 사소함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주목하여 그림으로 충실히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가치 없는 물체에서도 시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뿐 아니라 거기에 시간을 초월하는 존엄성을 부여한"(H.W. 잰슨, A.F. 잰슨) 샤르댕의 그림은 베르메르의 그림과 견줄만하다.

장-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빨래하는 여인>, 1730년대

 베르메르와 샤르댕의 그림은 우유를 따르고, 레이스를 뜨고, 시장에서 장을 봐오고, 빨래를 하는 일 따위가 얼마나 중한 일이며 우리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두 화가의 그림은 "작은 일은 작은 일이다. 하지만 작은 일에 신실한 것은 큰 일이다."라는 19세기의 위대한 중국 개척 선교사였던 허드슨 테일러와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나는 큰 일을 하지 않는다. 나는 작은 일을 큰 사랑으로 한다"라는 마더 테레사의 말처럼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소박한 삶과 일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베르메르와 샤르댕의 그림에서 너무도 익숙하고도 친밀한 우리의 일상 모습과 그것에 깃든 아름다움을 보았듯, 우리도 날마다 하는 일을 날마다 정성스레 하는 것으로 우리의 일상을 진실되고 아름답게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1) 소소한 일상과 가정생활의 정경을 그린 회화를 앵티미즘(intimisme)이라고 한다. ‘친밀한’이라는 뜻을 가진 ‘앵팀 intime’에서 따온 말이다. 소시민들의 삶을 담아낸 앵티미즘은 흔히 20세기 초반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와 에드워드 뷔야르(Edward Vuillard)를 중심으로 전개된 나비파의 양식으로 언급되곤 하지만, 친숙한 일상과 가정적인 실내 장면이라는 주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앵티미즘의 시작은 17세기 네덜란드 풍속화 베르메르의 그림에서부터 보는 게 합당하다. 김리윤, 「노스탤지어의 편린(片鱗)들을 활용한 앵티미스트 회화의 구축: 연구작 <Reminiscent> 연작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박사학위 청구논문, 2018.

2) 파스칼 보나푸,  최민 옮김, 『VERMEER, 열화당, 1994에서 참고.

3) 스페인과의 80년간의 투쟁 끝에 종지부를 찍은 네덜란드는 개혁주의의 신앙의 자유를 인정받아 가톨릭이 아닌 칼뱅교(프로테스탄트 종파)를 네덜란드의 국교로 공인하였다. 칼뱅주의에 따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가시화하는 성상의 사용은 일체 배격되었고 이에 종래의 도상적 종교화는 쇠퇴하고 대신에 풍경화 풍속화 정물화와 같은 세속 미술이 발전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들 세속화 중에서도 17세기 네덜란드 시민 사회의 모습을 가장 잘 반영한 회화 장르는 단연 풍속화였다. 지병림, 칼빈주의 관점으로 본 요하네스 베르메르 작품 연구,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석사학위 청구논문, 2015.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한복음 17:4).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참 성전들이다(고전 3:16; 6:19; 고후 6:16). 육체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어떤 장소를 판별하지 말고 성령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라."(존 칼빈, <기독교강요>, 244쪽.) "신자가 자기 일을 하는 중에 믿음으로 하나님을 섬길 소명에 응답하는 것이라."(마틴 루터의 글, 오스 기니스 재인용)



[참고문헌]

김리윤, 「노스탤지어의 편린(片鱗)들을 활용한 앵티미스트 회화의 구축: 연구작<Reminiscent> 연작을 중심으로」,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박사학위 청구논문, 2018

지병림, 칼빈주의 관점으로 본 요하네스 베르메르 작품 연구,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석사학위 청구논문, 2015.

마르셀 프루스트, 에릭 카펠리스 편집, 이형식 옮김, 그림과 함께 읽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까치, 2008.

오스 기니스, 홍병롱 옮김, 소명, IVP, 2000.

존 칼빈(1536년 라틴어 초판), 문병호 옮김, 기독교강요, 생명의 말씀사, 2015.

파스칼 보나푸,  최민 옮김, 『VERMEER, 열화당, 1994.

H.W. 잰슨, A.F. 잰슨, 정점식 감수, 최기득 옮김, 서양미술사, 미진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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