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직선적인 것과 곡선적인 것, 그리고 그것들을 컴퍼스와 자, 직각자 등으로 구성해 만든 평면적이거나 입체적인 형태들이다. 이러한 형태들은 다른 것들처럼 상대적인 의미가 아니라 항상 그 자체의 본성으로서 아름답다(플라톤,『필레부스』).
추상미술로 유명한 피트 몬드리안의 그림은 특별히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다 하더라도 누구나 쉽게 알아볼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빨강 노랑 파랑의 구성> 연작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다루는 만큼우리에게 더없이 친숙하다.
피트 몬드리안, <빨강 노랑 파랑의 구성 II> , 1930
그런데 막상 추상미술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는 명쾌한 답을 내기 어려울 것이다. 자연에서 추출하다'라는 추상의 언어적 의미만으로는 추상미술을 설명하기엔 너무 모호하다. 아닌 게 아니라 자연에서 추출한 이미지라면 꽃, 새, 동물 등을 기호화한 원시미술이나 식물의 입과 줄기를 도안화 한 이슬람의 아라베스크 장식미술도 매한가지 아닌가. 20세기 미술의 가장 큰 성과물로 일컫는 추상미술이 알고 보면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닌, 원래 있던 것에 단지 '추상미술'이라는 이름만 붙여놓은 것일까?
모르긴 몰라도 막연하게나마 추상미술이 기호학적 이미지 외의 어떠한 이론적 개념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서 당대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의 견해를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먼저 미술사학자 알프레드 바(Alfred H. Bar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술에서 추상이라는 용어는 자연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욕구의 극단적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용된다." 이는 자연으로부터 독립하고픈 인간의 욕구의 반영이다.1얼른 르네상스인들이 신으로부터의 독립을 희망하였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르네상스인들이 원근법과 해부학 단축법등을 활용해 자연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면 추상미술은 자연의 외관을 닮기를 거부하고 자연의 고유한 법칙과 질서를 파악하는 데 열중한다. 곧 자연을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데 열중하기를 그만두고 비가시적인 영역에 관심을 돌리는 일이다.
이러한 경향은 유럽의 진보적인 화가들에게서 서서히 일었다. 프랑스 상징주의 화가 모리스 드니가 “회화는 전쟁터의 말이나 또는 나부와 같이 이야기이기 이전에 본질적으로 일정한 질서를 가지고 선택된 색채로 덮인 평면이다”라고 말하며 가시적인 자연 형태를 본질적 원리로 재정립할 것을 피력하였다. 1890년대와 1900년대에 러시아의 지배적 예술 사조로 대두했던 러시아 상징주의는 구체적인 현실을 초월하여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리얼리티에 도달할 것을 목표로 했다.2신조형주의의 창도자 몬드리안은 최소한도의 기본적인 형태(선과 면)와 색채로 표현을 한정시킴으로써 대상의 보편성과 본질에 도달하고자 했다. 몬드리안은 자신의 몇몇 논문에서 전통적인 회화가 자연의 외형을 재현하는 데 주력해 왔기 때문에 자연의 핵심인 내적인 '관계'를 감추어 왔다고 지적하며, 이에 자신의 회화의 목표는 '순수한 관계의 추구'라고 말했다.3
이들의 공통된 견해를 요약하자면 20세기 예술의 진정한 토대는 대상의 외양이 아닌 내면성이며 항구적으로 변치 않는 어떠한 절대성이다. 추상미술은 대상의 본질에 도달하고자하는진실성과 순수성을 신념으로 하여 자연의 외관을 넘어서는 독특한 조형성과 인간주의적 시각 세계를 갖는다.
그동안 간과되어 왔던 정신과 정신적 질서의 복권을 꾀하는 철학적 움직임도 등장하게 되었다. 20세기 초반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개된, 베르그송과 포시용으로 이어지는 생명주의적 사고는 자연과 예술의 관계를 하나의 생명체로 인식하게 만듦으로써, 예술가들에게 자연의 모방이 아닌 생명 현상의 은유를 통해 자연을 표현할 수 있다는 의식을 불어넣었다.4 눈으로 본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울림을 그려야 한다는 인식으로 미술을 정신적 사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고자 했다.
묵시의 사제들
종교, 과학, 도덕 등이 흔들릴 때, 그리고 외적인 버팀목이 무너질 것 같을 때, 인간은 시선을 외적인 것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향한다(칸딘스키).
나탈리아 곤차로바, <묵시>, 1910
이러한 사고체계가 발달하게 된 사회적 정신적 배경에는 전쟁의 후유증과 종말론이 불러온 허무주의가 있었다.
추상미술은1920년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폐허 속에서 탄생했다. 전쟁으로 인한 슬픔과 절망이 도처에 번졌다.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낡은 세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마련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철학가들과 미술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재앙은 새로운 탄생의 성자로서 찬양된다"는 칸딘스키의 말처럼 이 대재앙이 새로운 세계가 건설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굳게 믿으며, 그 믿음을 질서 있고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형태 언어인 기하학적 추상으로 실천에 옮겼다.5
말하자면 정신적인 세계의 갈망이자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신인간들의 간절한 염원인 것이다. 곧 추상미술은 전쟁을 겪은 유럽인들의 유토피아에 대한 희망과 더불어 전개된 것이다.
이들이 꿈꾼 유토피아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조형언어의 개발과 도덕적 가치의 실현으로, 이를 통해 참혹한 비극에서 인류를 해방시키고자 하였다.6여기에는 물질세계는 하등의 가치도 없는 것다고 주창한 신지학(Theosophy)*의 교리와 모든 사물에는 확고한 정형이 없다고 밝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하 양자론, 원자 분열 등 자연의 내적 요소와 핵심을 다룬 과학)이 협력했다.
내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추구한 이들의 목소리는 당시엔 아주 작고 연약했다. 단지 몇 사람들만이 이들의 예술세계를 주시할 뿐이었다. 그러나 온 세상에 팽배한 음울한 힘과 공포의 분위기, 정신적 무지와 병듦, 천박하고 저급한 물질주의 홍수에 지치고 피로하여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어 하는 영혼들에게는 분명한 빛이 되었다.
독일의 바우하우스 작가들과 뮌헨에서 활동한 칸딘스키, 러시아의 전위미술가들과 말레비치, 네덜란드의 몬드리안이 이러한 영혼들의 등대이자 구원의 방주가 되었다.
*세계 1차 대전에 돌입할 때부터 종말관을 수반한 위기의식은 절정에 달했다. 이러한 위기의식의 돌파구로 종교가 때로는 묵시론적인 때로는 신비주의적인 색채를 띠고 인간의 고뇌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새롭게 채택되었다. 이와 같은 계기에서 신지학은 종교와 철학을 결합한 가장 중요한 정신운동 중 하나로 비롯되었다. 신지학의 창시자는 블라바츠키 여사로, 그녀의 책 <신지학의 열쇠>는 그녀가 인도에서 여러 해 동안 생활한 후 깨달은 '야만성'과 '문명'의 연관관계를 설명한다. 블라바츠키에 따르면 신지학은 영원한 진리의 추구이며, 물질세계는 하등의 가치도 없는 것이자 정신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인간의 의지와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혼란케 하는 방해물에 불과한 것이란 교리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