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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하는 에밀리 Jul 16. 2022

#6. 제주 올레 15코스 탐방기

디지털 노마드의 제주도 일상

제주도에서 한라산이라는 9시간 산행 코스를 경험하고 나니 무서울 게 없었다.
한라산을 다녀온 지 일주일도 안되었는데 그 발로 나는 또 제주도 올레길을 걸었다.




숙소에서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이동을 해서 15코스의 시작점인 한림항에 갔다.

한림항 비양도행 도선 대합실 앞의 올레 스탬프 간세에서 도장을 찍고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지난번 6코스는 완주를 위한 걸음이었다.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중간중간 멈출 수밖에 없었으나 얼마나 더 가야 하며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에 더 집중해서 무작정 걷기만 했었다. 이번에는 마음을 바꿔 자연을 바라보고 즐기며 천천히 걸어보고자 했다. (이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좋았다. 해변가와는 또 다른 제주 항구에서 시작하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항구에서 시작했으나 가다 보니 밭도 가로질러 가고, 처음 보는 듯한 꽃도 보였다.


이어폰으로 나오는 음악은 감미롭고 운동을 하니 뭔가 보람찬 느낌. 느지막하게 일어나 출발했더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아마 출발을 12시, 1시쯤 했었던 것 같다.) 어떤 점심을 먹을까 지도를 보며 고심하던 중 ABB라는 세상 힙해 보이는 햄버거 가게가 하나 있었다. 제주도에 가서 꽤 의아했던 점은 생각보다 맛있는 수제버거집이 엄청  다는 것. 지난번에 서귀포에서 먹었던 맛있는 수제버거를 떠올리며 ABB로 들어갔다.

꽤 작은 가게였는데, 그래서 뭔가 더 맛있을 것 같은 느낌. 메뉴는 조금 특이했다. 제주도의 구좌읍이 당근으로 유명한데, 거기서 당근을 사 오시나... 당근 라페로 만든 햄버거를 팔았다. 햄버거를 만들어 주시는 동안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바라보면서 햄버거를 먹었다. 버거란 메뉴가 원래 다 흘리면서 먹는 메뉴이기는 하지만 산처럼 쌓인 당근 라페를 버거로 먹으려니 엄청 흘러서 먹기 힘들긴 했다.

친절하신 사장님과 소소한 수다를 떨며 싹싹 다 비웠다.

다 먹고 또 걷다 보니 길에 대파를 한껏 늘어놓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길가에 널어놓는 대파, 마늘을 자주 봤는데 왜 길바닥에서 널어두시는지 좀 궁금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너무 예쁜 스팟을 알게 되었다.

투명 카약을 타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바다가 너무 투명하고 아름다워서 한참을 앉아서 구경을 했다. (며칠 후에 제주도에 내려오는 엄마에게 전화해 투명카약 안 타고 싶냐고 물어보며 또 올 기회를 노렸다.) 그 뒤에 CAFECOLA라는 신기한 카페도 있었는데 코카콜라와 연관이 있는 카페인지 굉장히 궁금했다.


커피를 한 잔 하고 싶어서 고민하던 중 조금 더 걸어가면 가보고 싶은 카페가 있어서 부지런히 걸었다. 집의 기록 상점이라는 카페였는데, 예쁜 소품들도 많이 팔아서 구매하고 싶은 게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인스타도 추가하고 아직도 눈여겨보고 있는 가게 중 하나다. 자리가 있다면 앉아서 마시고 싶었는데, Take-out 위주의 카페여서 쉬지 못 하고 또 정처 없이 걸었다. 20분쯤 더 걸었더니 올레 스탬프 중간 지점이 나왔는데 숙소 근처였다. 사실 이때 숙소에 들어가서 그냥 쉬고 싶어서 좀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다.ㅋㅋㅋ 아직도 반이나 남았었는데 내 발은 매우 아파오고 있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또 걷기 시작했다. 숙소 근처인 곽지해수욕장을 지나서 계속 걸었다. 중간에 해변에 차박을 하는 사람을 보고 매우 부러웠다.  로망...

그것도 잠시였다. 풍경도 점점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무거운 다리를 들어서 걸었다. 겨우겨우 올레 15코스의 종점지인 고내포구까지 걸었다. 15코스는 A와 B코스로 나뉘는데 나는 B코스로 걸었다. 그 이유는 바다 쪽으로 걷는 코스이기도 했지만, 사실 B코스가 13KM로 A코스보다 3.5KM 더 짧다. 결국은 5~6시간 걸려서 완주를 했더니 보람찼지만, 배고픔과 힘듦이 더 컸다. 하지만 거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제주도의 식당들이 일찍 문을 닫고, 혼자서 밥을 먹을만한 식당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밥 집을 찾지 못했다.

괜한 나만의 알 수 없는 분풀이로 베리제주라는 소품샵에 가서 쇼핑을 좀 하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라면, 막걸리를 구매해서 마구 먹고 잠이 들었다.




이 날 느낀 것은 제주 올레코스는 15코스도 짧은 편에 속하기 때문에, 제주 올레길을 걸을 땐 풍경을 즐긴다는 마음보다 얼른 완주한다라는 마음을 먹고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풍경을 본다고 세월아 네월아 걷다 보니, 정말 끝도 없이 걸었다. 산에 오를 땐 포기하고 싶어도 지금껏 오른 게 아깝다는 생각에 포기하기 어려웠는데, 평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포기하기 쉬운 조건(버스, 택시, 카페, 식당 등)이 곳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온 것이 아까워서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제주도에는 올레길 코스가 23개쯤 있는데, 모두 찍어서 완성하는 게 내 목표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남은 모든 코스들은 '빨리빨리'를 머리에 새기고 걸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래도 하나하나 완성해나가는 올레 패스포트가 보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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