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넷 ep.06
남편과 만나 결혼한 지 10년이 되었다. 늦었던 첫 연애가 결혼으로 이어졌다. 5년간의 연애기간 동안 행복하기도 화나기도 짜증 나는 하루도 많았지만 대게 즐겁고 재밌었다. 남편은 항상 시답잖은 말장난을 했고 나는 맞장구을 치며 웃어줬다. 남편은 여행을 좋아했고 나는 남편이 세운 여행 계획으로 함께 떠나는 게 즐거웠다. 미묘하게 비슷하면서 다른 남편과 나는 소소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결혼하면서 남편과는 아이 없이 지내자면서 약속했지만 남편은 못내 아쉬워했다. 내가 완강하게 갖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내 미래도 불안한데 누군가를 책임질 여력이 없었다.
완강한 내 마음을 무너뜨리는 순간은 간간이 찾아왔다. 사랑스러운 조카가 나를 향해 웃어주다 자기 엄마에게 쪼르르 가버릴 때. 남편이 친구의 아이에게 나이키 신발을 선물할 때 짓은 표정을 볼 때.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이제는 임신할 수 있는 생물학적 나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할 때. 다른 친구들의 아이가 커갈 때. 성인이 된 딸과 아들의 손을 잡고 가는 중년의 부부의 모습을 볼 때. 그런 순간들이 모아져 병원을 찾았다. 결정타는 친한 친구들의 활발한 임신활동 덕이었지만.
아이가 없었던 4년 동안의 결혼 생활은 즐거웠다. 작지만 둘 만의 공간이 생긴 것도 즐거웠다. 엄마살림에서만 살다가 내 살림을 꾸려 살아가는 것도 재밌었다. 둘 다 첫 독립이었다. 나는 내가 요리를 잘한다는 것도 요리를 좋아하는 것도 결혼을 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여행도 자주 갔다. 함께 갔다 돌아오는 여행길은 즐거웠다. 그동안 살 수 없었던 살림들을 마음껏 사 올 수 있었다. 여행지에서 접시나 그릇, 식료품을 잔뜩 사 오기도 했다. 여행기간 동안 고양이들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엄마집에 맡겨두고 훌쩍 다녀오곤 했다. 짧은 여행을 다녀올 때는 항상 고양이들에게 허락을 구하고 다녀왔다.
별이와 콩이와 함께하는 취침시간도 행복했다. 여름에는 내 발끝에서 자다 겨울 되면 이불속으로 들어오는 별이. 항상 내 가슴팍에서 자는 응석꾸러기 콩이. 넷이 한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면 행복했다.
늦은 저녁 산책도 자주 다녔다. 결혼 생활을 시작한 곳은 둘 다 처음 살아보는 동네였다. 저녁을 먹고 누워 있고 싶어 하는 남편을 닦달해 항상 산책길을 나섰다. 하루는 오른쪽, 하루는 왼쪽으로 밤동네를 산책했다. 밤은 낮과 달라 새로운 모습이었다. 남편은 항상 덥다고 투덜거렸지만 여름에는 더워서 재밌었고 겨울에는 추워서 재밌었다.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커피 하나씩 마시면서 돌아오는 게 참 좋았다. 동네엔 영화관도 있어 심야영화도 훌쩍 보고 오곤 했다. 집 앞 횡단보도 건너편에 스타벅스도 있어 둘이 자주 가서 공부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멍 때리다 들어오기도 했다. 차가 없는 우리는 집 옆에 하천가를 따라서 자전거를 타고 마트에도 가곤 했다. 같이 나가도 따로 나가도 함께 집으로 갈 수 있어 좋았다.
결혼하기 1-2년 전 친구들과 재미 삼아 보았던 사주에서 나에게 아이가 생기면 남편에게 소홀히 대한다고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아이는 낳지 않을 거니 소홀하게 대할 일도 없겠다고 콧방귀를 뀌었다.
아이를 갖고 낳으면서 남편은 항상 내가 0순위라고 말한다. 매사 잔걱정이 많은 나를 항상 다독여주며 하는 말이었지만 나는 내심 안심이 되었다. 다정한 남편의 말이 듣고 싶어 더 투덜거린 적도 많았다. 임신으로 살이 잔뜩 쪄도 다리가 퉁퉁 부어 원래 다리 2-3배가 부었어도 호르몬 변화로 우울하거나 짜증 낼 때도 남편은 항상 같은 모습으로 있어주었다. 나도 우리는 항상 서로의 0순위 일 거라며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갑자기 만나게 된 아가들은 너무 작고 예뻤다. 모성애는 아이가 생겼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낳아서 키워가는 과정 중에 생긴다고 하던데 나와는 거리가 있는 말이었다. 아가들을 만나 나는 바로 새로운 사랑에 빠졌다. 니큐 면회 가는 길이 항상 행복했다.
퇴원 후 둘 다 가슴에 안고 있으면 가슴이 벅찼다. 머리 가득한 꼬순내와 따끈하고 사랑스러운 살냄새. 안아주고 있는 내게 더욱 꼭 안아 달라며 부비며 들어오면 우주를 안고 있는 기분이다. 아이들이 막 울고 있어 안아 달래다 보면 울음이 멈추는 데 보잘것없고 자랑할 거 하나 없는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다.
갑자기 나타난 아가들로 내 세상이 나뉘었다.
이젠 남편과 둘이서 하는 소소한 행복은 없겠지만. 넷이서, 고양이들까지 여섯이 함께하는 북적북적한 행복이 더 커지겠지. 양쪽에서 쌔근쌔근 잠든 아가들의 숨소리가 아직도 꿈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