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거나, 증거가 되거나, 그 무엇도 되지 않기를 간곡히 희망합니다.
# 3.
20대 초반, 교내 상담센터를 다녔었다. 심리학 석박사 과정을 밟는 대학원생들이 무료 상담을 진행해 주는 곳이었다. 이때부터 심리 상담에 관심을 갖게 되어 관련 대외활동에 참여하면서 정신과와 심리상담센터에서의 치료 차이, 우울증과 조울증의 차이 등 정신 건강 분야에 대해 알게 됐다. 세상엔 마음이 아픈 사람이 참 많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료를 받지 않는 사람도 참 많았다.
처음 상담을 받게 된 계기는 부모님을 상담센터에 데려가기 위함이었다. 우리 가족은 여러모로 병들어 있었다. 어느 날 넌지시 가족 상담 얘기를 꺼냈을 때 부모님은 본인은 문제가 없다며, 그런 곳은 정신병자들이나 가는 곳이라고 거절했다. 정말 그런가. 내가 먼저 가서 확인해보고 싶었다. 간단한 테스트를 한 결과 우울증 지수가 높게 나왔고, 우선순위로 배정받아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우울증은 마음의 병이 맞지만 심하지 않은 경우 약물 치료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정신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으면 의료 기록이 남는다고 꺼려하는 친구들도 많았으나 이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 상담을 받으며 알게 된 점은 내 우울감은 상당 부분 가정환경에서 기인한다는 것이었다. 유년 시절의 불안정한 애착 형성과 잦은 이사와 전학으로 인한 대인 관계의 어려움 등이 원인으로 거론되었다.
난 상담에서도 내 이야기를 편히 못하는 내담자였다. 아무리 상담사라 하더라도 내 개인사를 깊게 알게 되는 게 싫었다. 나는 이 사람을 모르는데 이 사람은 나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그것을 적고, 판단하고, 연구에 활용한다. 그 느낌이 불쾌해 중도 하차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을 들켜버린 것이 창피했던 것 같다.
사건 이후 트라우마 센터에서 받은 상담은 좀 더 전문적이었다. 트라우마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지만 검사 결과 나는 PTSD라고 부를만한 증상이 매우 크진 않았다. 회피 성향, 기분과 인지 변화 등이 감지되었지만 그보단 우울감 수치가 높았다. 자연스레 상담 과정을 밟다 보니 내가 그 사건과 아빠에 대한 이야기보다 엄마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우울은 지나간 사건이 아닌 진행 중인 사건에서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3-1.
"00 씨는 엄마를 무척 신경 쓰네요. 알고 있어요?"
스스로를 늘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너는 너만 생각해. 나를 이해 안 해.
너처럼 이기적인 애는 처음 봤어. 지 아빠 닮아서.
너랑 똑같은 딸 낳아서 고생 좀 해봐야 알겠지.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이 되려면 엄마를 이해해야 했다. 이해가 안 되면 억지로 받아들여서라도. 엄마가 아무렇지 않게 자식에게 욕설을 뱉어도, 이모와 삼촌과 등지고 살며 내게 무거운 역할을 맡겨도, 나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아도 엄마는 불쌍하고 힘든 사람이니까 난 엄마를 이해해야만 했다. 그럼 이번에도 그래야하는 걸까. 엄마가 유부남을 만나는 것도?
나를 도와준 그 아저씨는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둔 유부남이었다. 아내를 사랑하진 않지만 이혼할 생각은 없는, 내 앞에서 술을 마시며 딸 자랑을 늘어놓는 사람이었다. 엄마가 이 사실을 말하기 직전까진 망설였을지 모르겠으나 말한 이후론 전혀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아저씨를 우리 집에 들이고, 아저씨와 다툰 얘기를 하고, 아저씨의 아내는 팔자가 좋다며 부러워했다. 그런 얘기를 늘어놓을 때마다 내가 화를 내며 잘못됐다고 말하면 엄마는 누구보다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고 나를 원망했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려 들어. 내 인생이야. 나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
#3-2.
엄마는 아빠랑 이혼하기 전부터 그 아저씨를 만나고 있었다. 아빠도 들키지만 않았을 뿐이지 등산 모임에 나가 다른 여자들과 어울렸다며 엄마는 스스로를 변호했다. 아빠가 나를 추행했던 날도 엄마는 아저씨와 함께 있었다. 그녀는 처음 사랑받는 기분을 느낀다며, 셋이 놀 때가 제일 행복하다며, 내가 아저씨를 아빠처럼 여기길 원했다. 아빠가 나한테 한 짓만큼 엄마의 불륜도 큰 충격이자 상처였다. 내 세상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거꾸로 뒤집혔고, 난 이전과는 절대 똑같이 살아갈 수 없게 됐다. 그때 이미 한 번 죽은 삶이였던 것일지도.
내가 엄마의 행복을 방해하는 걸까? 엄마 인생이니까 그 결정을 존중해야 하는 걸까? 사람들이 다 돌을 던져도 난 엄마를 감싸 안아야 하는 걸까? 이 잘못된 관계에 죄책감을 느낀다. 아저씨 옆에서 소녀처럼 해맑게 웃는 엄마를 보며 그냥 나만 눈 감으면 되는 거라고 믿고 싶던 적도 있었다. 사랑받는 여자의 얼굴은 아름답다. 살면서 한 번도 엄마에게선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엄마가 추천해 준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보며 그들을 이해해 보려고도 노력했다. 아빠보다도 다정하게 나를 챙겨주는 아저씨를 보면서 저 사람이 내 아빠였으면 어땠을까 라는 마음을 감히 가져본 적도 있다. 셋이 같이 좋은 곳에 가서 좋은 것을 먹고 웃을 때마다, 누군가 가족끼리 참 닮았네요라고 툭 던질 때마다 그랬다. 웃고 있지만 비참했다. 이 행복은 결국 내 것이 아니다. 훔친 거다.
아저씨가 미웠다. 하지만 아저씨가 없었다면 엄마와 나는 이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거다. 밉지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게, 유일한 보호자인 엄마가 또 그만큼 무능력하다는 게 싫었다. 이 관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나는 내 상처를 치료하기도 벅찼고, 그들은 집에만 틀여 박혀있던 나를 꺼내주기 위해 여기저기 좋은 곳에 데리고 다니며 좋은 것을 먹였다. 고맙다고 생각하다가도 불쑥 정신을 차리면 화가 났다. 어제는 분명 같이 재미있게 놀았는데 다음 날은 아저씨를 모른 척하며 피했다. 혼란스러웠다. 그럴 때마다 엄마와도 항상 다퉜다. 엄마는 이제 아빠가 아닌 나 때문에 울었다. 그게 날 또 불행하게 만들었다.
"나도 엄마랑 똑같은 사람이 되긴 싫어.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되면 아저씨 가족은 우리가 얼마나 미울까?
내가 아빠한테 받았던 상처를 이 사람들도 받을 거야...
우리는 죄인이야 엄마. 죽으면 같이 지옥에 떨어지겠지.
그렇다고 다른 가족까지 망가뜨리면 안되잖아. 그들은 행복해야지"
* 어느 4월, 상담 기록 중 일부
-선생님.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이상한 걸까요? 제가 나쁜 걸까요? 전 엄마를 미워해야 하나요, 이해해야 하나요?
-00 씨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에요. 모두가 비정상인 환경에 놓여있으면 비정상이 정상이 되고, 정상이 비정상이 되곤 하죠. 본인이 갖고 있는 가치관이 맞아요.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을 버리지 마요.
-그럼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너무 괴롭고 죄책감이 들어요. 엄마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해요.
절 위한 거라고 해요.
-일단은 치료에 집중해요. 00 씨가 먼저 살아야죠. 이후엔 집에서 독립을 하는 방법도 있고, 지금 환경에서 분리되고 싶다면 투숙형 센터에 들어가서 장기 상담을 받는 방법도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