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엄마와 다른 남자와 같이 있는 걸 본 게 처음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동창, 직장 후배 등의 이름표를 단 남자들이 환한 얼굴로 내게 인사하고, 맛있는 걸 사주고, 용돈을 쥐어주고, 엄마는 옆에서 어색한 웃음을 짓고. 그런 엄마가 싫어 감사 인사도 않고 홱 돌아서면 엄마는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무안 줬다며 집에 돌아와 나를 혼내곤 했다. 그들과 엄마가 어떤 관계였는진 모른다. 다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아저씨는 조금 달랐다.
내 취업 준비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동네 초밥집에서였다. 인상은 다소 험악했으나 아는 게 많은 분이었고 재밌어서 나랑 말이 잘 통했다. 맛있는 걸 사준다는 핑계로 셋의 만남이 잦아졌을 때쯤 내가 앞서 걸을 때 뒤에서 둘이 몰래 손을 잡는 것 정도는 눈치로 알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아빠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아빠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든 게 이상한 상황이었다. 어느 날, 내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을 때 엄마는 아빠와의 이혼을 그 아저씨가 도와줄 거라고 했다. 모든 상황을 들은 아저씨가 엄마한테 직구를 날린 것이었다. 딸을 살리려면 결정을 하라고. 네 딸은 지금 죽어가고 있는 거야.
그 말은 사실이었다. 집 안은 여전히 냉랭했고 엄마는 사식 배급하듯 매일 저녁 식사를 내 방으로 밀어 넣어줬다. 그렇게 나는 아빠를 마주하지 않은 채 하루 종일 좁은 방 안에서만 갇혀 생활했다. 그 일이 일어났던 안방은 쳐다보기도 싫어 거실로도 나가지 않았다. 한창 취업 준비로 바쁠 시기였지만 멍하니 침대에 누워 천장만 쳐다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밤에 잠들 때보다 아침에 눈 뜰 때가 더 무서웠다. 내게 아무런 가치 없이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이 부담스럽고 막막해서 내일은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 2-1.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엄마가 미웠지만 난 엄마를 너무나 잘 알았다. 엄마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다. 사소한 것 하나를 결정할 때도 주변에 수십 번을 물어봐놓고 결국엔 그 결정마저도 매번 후회하는 사람이다. 남편에 대한 원망은 가득하지만 홀로 남은 삶을 살 용기나 능력이 없어서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 옆에서 매일 울면서도 이혼할 생각조차 하지 못해 우울해지기를 택하는 사람이다.
아빠와 마찬가지로 엄마한테도 내 마지막 마음의 끈이 툭하고 끊어졌던 때가 있다.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가 있었을 때, 출국 후 한 번도 연락이 없던 엄마가 새벽 2시에 전화를 걸어왔다. 한국 시간으로는 이른 아침이었을 것이다. 비몽사몽 한 내게 엄마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죽고 싶다는 말과 아빠 욕을 늘어놨다.
- 엄마. 딸이 외국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하나도 안 궁금해? 지금 여기 새벽이야. 시차는 확인해 봤어?
- 내가 오죽하면 너한테 전화를 했겠어. 오죽 답답하면.
- 제발.. 어차피 멀리 있어서 뭘 해줄 수도 없는데 이런 얘기 들으면 내 맘이 편하겠어?
- 그럼 난 어떡하라고! 너도 없는데! 엄마 생각은 안 해?
- 이제 자기 불행쯤은 스스로 좀 감당하면 안 돼? 나도 매번 이렇게 듣는 거 힘들어. 지겨워!
툭. 그렇게 전화는 끊겼다. 이후 다시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엄마와 따로 연락하지 않았다. 엄마의 영향으로 난 누군가에게 내 힘듦을 털어놓고 위로받지 못하는 어른 아이로 자랐다. 들어주는 사람의 고통을 너무 잘 알아서 적어도 난 누군가에게 그 짐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때도 내 생각보다 엄마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엄마도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엄마는 날 지켜줄 힘이 없잖아. 내가 능력을 키워서 얼른 조용히 나가면 돼. 그때까지만 버티자.
그런데 그런 엄마에게 드디어 도와줄 사람이 나타난 거다. 아저씨의 조언을 받고 엄마는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를 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두 달 정도 후였던 것 같다. 그동안 아무런 티를 내지 않던 엄마는 어느 날 아빠를 호프집으로 데리고 나가 담판을 짓고 왔다. 아빠는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엄마도 진짜 무언가가 일어난 게 맞구나 하고 내 말을 믿었던 것 같다. 며칠 뒤 아빠는 내가 집에 없던 주말에 모든 짐을 싸서 나갔다. 이혼 절차는 신속히 이뤄졌다. 아마 그 일이 아니었다면 엄마 아빠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하지 못했을 거다. 그리고 만약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든 독립을 해서 가족과 연락을 끊고 살았겠지. 어차피 두 선택지 중 좋은 결말은 없었다.
# 2-2.
아저씨는 나도 도왔다. 엄마를 대신해 나를 지자체와 연계한 트라우마 센터에 데려가 상담을 받게 했다. 상담센터로 넘어가기 전에 파출소에서 먼저 사건 진술을 해야 했는데 이 날은 내 인생에서 평생 잊히지 않을 날이다. 아빠가 정확히 '어떤' 짓을 '언제'부터 '얼마나 자주'했는지 구체적으로 내 입으로 말하는 것도 힘들었지만(성 관련 범죄는 피해자의 진술에 의해서만 사실이 다뤄질 수밖에 없단 걸 알고 있음에도 실제 겪어보니 참으로 폭력적이었다),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질문은 바로 이거였다.
"아버지를 신고하시겠어요?"
나의 증언에 의하면 아빠의 성추행은 오랜 기간 이어져왔으므로 증거는 충분하다고 했다. 법적인 책임을 물게 하고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리면 난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 없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 피해 사실이 법적 기록으로 남아야 추후에 실질적으로 받을 수 있는 심리 지원도 늘어난다며 경찰관은 신고를 추천했다.
하지만 이 더러운 피가 뭐라고. 그래도 자식이 어떻게 부모를 범죄자로 만들어요.. 내가 평생 증오하면 그게 감옥이지 영문도 모르는 친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난 이미 나쁜 년일 텐데 내가 여기서 어떻게 더 미움을 받아요.. 온갖 생각과 감정이 머릿속과 심장을 가득 채웠다. 살면서 이런 거지 같은 고민을 하게 되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게 왜 하필 나일까. 억울하고 비참했다. 하고 싶은 말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눈물과 함께 삼켰다. 결국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죄송합니다. 신고는 안 할래요. 못하겠어요.."
경찰관은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오라고, 신고 기한이 정해져 있진 않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실제로 성추행이나 폭력 피해자들 중 가해자가 가족인 경우엔 신고율이 현저히 낮아요. 가해자는 피해자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짓을 하는 건데 피해자들은 끝까지 가족이라고 감싸안는 모습을 많이 보거든요. 그녀는 끝까지 나를 설득하려 노력하며 안타까워했지만 파출소를 나오면서 난 앞으로도 절대 아빠를 신고하지 못할 거란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몇십 분이 흘렀는지 모를 그 고통스러운 고민의 순간에 내 머리를 스쳐간 수많은 것 중엔 어린 시절 아빠와 함께 세차를 하고, 바닷가에서 비눗방울을 불고, 함께 아이스크림을 나눠먹었던 추억도 들어 있어서. 그것까지 다 버릴만큼 난 강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