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적기까지 많이 망설였다. 모든 이야기는 완료형이 아닌 진행형으로서 존재하며, 몇 번이나 누군가에게 털어놓으려 노력했지만 실패한 결과로써 글로 남겨지길 택했다. 개인적인 아픔을 왜 이런 공개적인 곳에 털어놓냐고 묻는다면 살고 싶어서라고 답하겠다. 고일대로 고여 썩어버린 상처를 훌훌 털어내고 그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은 욕망의 움직임이라고. 눈물 없이 그때를 떠올릴 수 있게 된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라 믿는다. 내 관점으로만 쓰여지는 것에 대해서 남겨진 가족들에게 미리 사과한다.
*선정적/ 폭력적 행위에 대한 묘사가 있으니 읽을 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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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금명이는 한평생 내가 가장 부러워했던 유형의 사람이다. 뿌리 깊은 깡이 있는 사람. 날 선 모서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미친 듯 속이 깎이고 뭉개져도 그걸 다 채우고도 넘칠 만큼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물을 가진 사람. 그걸 보통 사람들은 '집'이라고, 혹은 '가족'이라고 불렀다. 나도 그런 것을 갖고 있었다. 다만 나의 집은 샘물이 아닌 밑 빠진 독이었다. 하루 종일 에너지를 채워도 그곳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빨아먹혔다. 공허한 TV 소리가 울려 퍼지는 거실, 꽉 닫혀 절대 열리지 않는 안방 문, 차갑게 식어버린 음식이 차려진 부엌을 지나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침대 하나 놓이지 않은 작디작은 내 방 안 뿐이었다. 그래서였나, 난 늘 세상에게 졌던 것 같다.
금명이에게 아빠란 손안에 열 개가 있으면 열두 개를 내어주는 존재다. 색깔로 치자면 한낮의 제주 바당을 닮은 따뜻한 블루. 나의 아빠는 회색 인간이었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아 더욱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자식인 나를 사랑하는 것 같다가도 때론 가족이란 단어를 배운 적 없는 것처럼 모두에게 삭막했던 사람. 머리 손질을 하느라 준비 시간이 길어진다며 오랫동안 길러온 딸의 긴 머리를 댕강 잘라버리는 사람. 길을 걷다 맞은편 사람과 부딪힐 것 같으면 딸을 안쪽으로 감싸는 대신 밖으로 밀어버리는 사람. 엄마랑은 하루 종일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고, 동생에게는 훈육이라는 이유로 자주 매를 휘두르던 사람. 나의 집은 그렇게 차가웠다.
어릴 땐 그래도 아빠가 엄마랑 동생보단 나를 예뻐해서 다행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그가 집안의 권력자였으니까. 엄마와 동생과 달리 난 아빠 말을 잘 듣고 공부를 잘해서 나를 좋아해 주는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더욱 그것들에 집착했다. 아빠가 나를 예뻐하는 방식은 특이하고 은밀했다(여기서부턴 역겨움을 이겨내면서 썼고 이것이 발행일이 자꾸 미뤄진 이유다). 엄마와 동생이 없는 날 내 방에 들어와 입을 맞추고, 혀를 집어넣고, 상의 안에 손을 넣어 가슴을 만졌다. 훗날 상담센터에서 구체적인 행위 묘사나 빈도수 등을 구술해야했을 때 기억이 니지 않는다고 답했는데, 이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밖에서 난 똑 부러지는 아이였고, 이 행위가 부녀 사이에 일상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지만 그때 난 내가 이 사실을 인정하면 우리 가족이 무너질 걸 알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불행을 덮고 살아가는 이 가족의 민낯을 나 혼자 까발릴 순 없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어린 난 엄마와 동생처럼 아빠한테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 남자친구를 사귀고 첫 스킨십을 했을 때 애써 외면하던 감각이 깨어났다. 그건 경멸감과 수치심이었다. 난 분명 처음인데 이런 게 왜 익숙하지. 이런 건 사랑하는 사이에서 하는 건데 그게 부모 자식 간의 사랑과 다르다는 건 굳이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성인이 된 이후 집에 있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아빠가 내게 '그런 짓'을 하는 일은 없었고, 평소에는 누가 봐도 이성적이고 점잖은 사람이기에 나조차도 과거의 일들은 꿈에나 일어났던 일이라 여기게 됐다. 그러나 내 속은 늘 뒤틀리고 꼬여있었다. '뭔가 잘못 됐어'.
엄마가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고 집을 비운 그날 밤. 그 밤이 아니었다면 난 지금까지 살기 위해 상한 음식이라도 억지로 욱여넣는 사람처럼 이 삶을 우악스럽게 삼켜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동생은 군 복무 중인 시기였고, 아빠는 친구들과 산행 후 술 한 잔을 걸치고 오겠다고 했다. 평소와 달리 내 방이 아닌 안방에서 잠을 청했다. 보통 엄마가 혼자 안방에서 자고 아빠는 동생 방에서 잤기 때문에 오늘만이라도 좁은 내 방을 떠나 혼자 편히 침대에서 자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자정이 조금 지났을까. 도어록 열리는 소리와 함께 술에 취한 아빠가 들어왔다. 내가 안방에 있는 것을 확인하더니 대충 눈인사를 하곤 곧바로 화장실 샤워기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잠에 빠지려는 찰나 달랑 팬티 하나만 걸친 아빠가 어둠 속에서 안방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그는 자연스레 내 옆에 눕더니 입을 맞추고, 속옷을 벗겼다. 징그럽게도 ’너는 나 이해하지. 아빠가 힘드니까 딸이 이해해 줘'를 중얼거리며. 번개에 맞은 듯 잊고 있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그는 늘 나에게 이런 짓을 하고 나서 '이해'에 관한 얘기를 늘어놓곤 했으니까. 도대체 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때도 지금도 알 수 없다. 두려움에 굳은 내 손을 그는 자신의 팬티 안으로 억지로 집어넣으려 했다. 이건 이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공포감이 번졌다. 지금 이 집엔 나를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온 힘을 다해 아빠를 밀치고 내 방으로 도망쳐 문을 잠갔다. 몇 번이나 문을 두드리며 전화를 하는 아빠를 피해 이불 속에 숨어 귀를 틀어막고 꼬박 밤을 새웠다. 어딘가에 전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서 빨리 날이 밝아 이곳을 벗어나고만 싶었다.
금세 지친 그는 동생 방으로 가 코를 골며 잠에 들었고, 마주치지 않기 위해 새벽녘에 허겁지겁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왔다. 물론 갈 곳은 없었다.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가다 보니 다녔던 고등학교에 도착해 있었다. 휴대폰 전원을 끄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주말이었고, 옥상 문을 여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내리는 눈에 세상이 온통 희었다. 고작 스물다섯이었다. 예쁜 나이라는 스물다섯의 겨울이 가혹할 정도로 시렸다. 아마 그날부터 난 겨울을 싫어하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