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관자!" 동생의 뺨을 때렸다

by 실타래

# 4.

동생이 전역 후 돌아온 집은 풍비박산이 나있었다. 부모님은 이혼했고, 누나는 더 이상 웃지 않게 됐다. 동생 입장에서도 큰 충격이고 상실이었을 것이다. 전역 전부터 엄마와 나는 많은 고민을 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말해줘야 할까? 우리를 이해할까? 엄마의 결론은 함구하자는 것이었다. 나중에 물어보면 그때 말해주자고. 잘못된 선택이었다. 동생은 끝까지 묻지 않았고, 나는 설명할 기회를 잃었다.


동생은 아빠한테 맞고 자랐다. 공부를 못해서, 도둑질을 해서, 시키는 걸 하지 않아서 손으로, 커튼봉으로, 야구 방망이로 맞았다. 아빠는 늘 큰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동생을 때렸다. 몸을 때리는 둔탁한 소리와 끔찍한 비명소리가 문 밖으로 흘러나오면 나와 엄마는 귀를 막고 각자 방으로 숨어들었다. 모두가 아빠를 무서워했고, 막지 못했다. 그 기억 때문에 난 지금도 액션 영화를 보지 못한다. 폭력적인 장면을 보지 않고 듣기만 해도 극심한 스트레스와 함께 온몸이 아프기 때문이다.


동생을 구해주고 싶었다. 구해야만 했다. 반에서 1등을 할 때마다 소원으로 동생을 더 이상 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아빠는 체벌의 방법을 바꾸었다. 때리는 대신 머리를 박게 하고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두 다리고 부들거리고 땀이 줄줄 흐르는데도 주어진 시간 동안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면 또다시 시켰다. 동생은 이번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동생은 내게 늘 아픈 손가락이었고, 같은 부모를 가진 불행을 함께 나누는 유일한 동반자였다. 그도 반항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생 때 한 달간 가출을 한 적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아빠를 미워하진 않았다. 성인이 되어 아빠보다 훌쩍 더 커지고 나서야 동생은 더 이상 맞지 않게 됐다. 언젠가 동생이 내게 말했다. 어차피 다 지난 일이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아빠가 이해가 된다고. 난 이게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치유받았어야 할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못하면 그 아픔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세상에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 4-1.

순하고 착한 아이였다. 여자친구가 생기면 내게 소개해주고, 종종 같이 쇼핑도 할 만큼 사이가 멀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우리 사이는 붕괴되었다. 동생은 나에게 어떤 말도 묻지 않았다. 그저 날 부모님을 이혼시킨 주범이자 엄마 편을 들기 위해 아빠와 연을 끊고 사는 딸 정도로 생각하는 듯했다."엄마 아빠가 사이가 안 좋다는 건 이미 알고 알았겠지만 아빠가 누나한테 큰 잘못을 했어." 동생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마 상처받길 피하기 위해서였을 거다. 동생을 보호해주고 싶었다. 이미 오랜 시간 아팠을 아이에게 내 아픔까지 공유하고 싶진 않았다. 아빠를 미워하길 바라지도 않았다. 내겐 나쁜 아빠지만 동생에게는 남은 생 동안에라도 좋은 아빠가 되어줄 수 있을 테니까.


잡고 혼내던 사람이 없어지니 동생은 엄마와 나와 살면서 누구보다 자유롭게 생활했다. 매일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흥청망청 돈을 썼다.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해 집에서 남자 역할을 해줄 거라 믿었던 엄마의 믿음과는 다르게 동생은 집에 없는 날이 더 많았다. 집안일도 전혀 돕지 않았다. 생활비를 보탰지만 엄마 성에는 차지 않았다. 엄마 말은 전혀 듣지 않아서 잔소리를 할 일이 있으면 엄마는 내게 부탁했다. 동생에게 쓴소리를 해야 할 일이 점점 많아졌다. 일상적인 얘기는 줄어들고 서로 의무와 책임감만 나누게 됐다.


동생은 명절이나 주말에 따로 아빠를 만나러 갔다. 친할머니댁에도 용돈을 드리며 살뜰히 챙겼다. 엄마는 이것을 일종의 '배신'으로 받아들였다. 엄마의 오래된 특성이었다. 항상 아빠와 자신 중 한 명을 선택하게끔 강요하는 일종의 편 가르기였다. 한 명을 선택하면 한 명은 버려야 했다. 어린아이에겐 너무 잔혹한 선택이었다. 엄마는 동생이 자신과 함께 살면서 아빠를 만나는 것에 분노했다. 둘이 무슨 꿍꿍이인지, 자신의 욕을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럴 거면 아빠랑 살지 왜 자신과 살면서 도와주진 않고 힘들게 하냐고 비난했다.


동생은 점점 그런 엄마를 무시하게 됐고, 집에선 입을 닫게 됐다. 엄마와 아저씨의 관계를 알게 되고부터는 더욱 그랬다. 내가 퇴사를 하며 장녀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하고, 엄마와 아저씨 사이를 알면서도 함구하는 것에 대해서 동생은 나에게도 실망을 했다. 그러면서 자꾸 아빠의 소식을 내게 전했다. 아빠가 나를 보고 싶어 한다느니, 어디가 아프다느니 하는 말들이었다. 나는 그런 동생의 문자에 대답해 줄 수 없었다.


엄마는 아빠 없이 우리 셋이서 오순도순 사는 그림을 꿈꿨는지 모른다. 그래서 이혼 후 거처도 옮기고, 직장생활도 시작했다. 언젠가 셋이 여행도 가고 정기적으로 저녁식사도 함께 하자고 했지만 주도적으로 이뤄지진 않았다. 서로의 상처가 너무 크면 다른 이의 상처를 품어줄 여유가 없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전혀 보듬어주지 못하고, 각자 밖에서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위안을 받았다. 집에선 서로의 상처를 캐지 않기 위해 침묵을 택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상처는 곪을 대로 곪아 터질 준비를 마쳤다.


# 4-2.

"너만 아니었으면 이혼을 안 했겠지. 너한텐 미안하지만 가끔 이혼한 거 후회해. 그냥 참고 살면 적어도 이 고생은 안 했을 텐데. 내가 왜 너네를 데리고 나와서 다 큰 자식들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모르겠어. 네 아빠는 혼자 벌어서 혼자 호사 누리고 살 텐데. 그리고 00 이가. 지가 엄마아빠 이혼의 가장 큰 피해자래. 기껏 생활비 조금 내놓고 집안일 하나 안 도와주면서 가장 노릇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다른 집 애들은 엄마랑 잘만 놀러 다니고, 좋은 거 사 먹이던데. 아빠 없으면 너네 나한테 더 잘해야 되는 거 아니야? 왜 나를 더 힘들고 외롭게만 해? 너네가 이러니까 내가 아저씨를 만나는 거야. 내 입장은 생각도 않고. 그냥 싹 다 연 끊고 나가 살았으면 좋겠어. "


엄마는 툭하면 우리를 내쫓겠다고 협박했다. 기분이 안 좋으면 폭언을 하고, 울고, 우리에게 비난의 화살을 쐈다. 분명 가해자는 따로 있는데 우린 서로를 탓했다. 엄마랑 크게 싸우고 며칠씩 말도 안 하고 지내면 동생이 눈치를 봤다. 엄마와 동생이 싸운 날엔 내가 눈치를 봤다. 아빠가 있었을 때보다 집은 더 냉랭해져만 갔다. 난 좋은 딸도, 좋은 누나도 될 수 없었다.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대체 와닿지 않았다.


엄마가 손목 수술을 하고 돌아와 며칠 집에 누워있던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에 오니 부엌에 쌓인 설거지가 한가득이었다. 닫힌 동생의 방 안에서 시끄러운 게임 소리가 들려왔다. 그날따라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당장 나와서 네가 먹은 설거지 좀 하라고 소리쳤다. 동생은 게임 끝나면 하겠다며 내 말을 무시했다. 더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방문을 열고 소리를 질렀더니 동생이 혼잣말로 욕지거리를 내뱉곤 나와서 들으라는 듯이 그릇을 부술 기세로 설거지를 했다. 툭. 이번엔 동생에게 마음의 끈이 끊어졌다. 그대로 동생의 뺨을 후려쳤다.


그 이후로 동생은 방문을 잠그고 방에만 있기 시작했다. 이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 괴로웠다. 몇 달간 서로 투명인간 취급하며 살다 술을 먹고 사과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때려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내 잘못이었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동생에게 쌓인 서러움이 있었다. 방관자라고 생각했다. 왜 내 얘기는 듣지도 않고 나를 나쁜 애 취급하는 거지. 왜 죄책감이 들게 하는 거지. 한 번쯤은 괜찮냐고,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봐줄 순 없는 건가. 기대가 있었기에 실망감이 들었고, 더 이상 우리가 동반자가 될 수 없다는 게 슬펐다. 사실을 알고 있든 아니든, 우리는 이미 너무 멀어져 있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그게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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