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재작년에 친삼촌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삼촌은 결혼을 하지 않고 특정한 직업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었다. 말수가 없고 행동이 느려 아빠한테 구박받는 동생이었다. 삼촌은 형인 아빠를 어려워하고 무서워했다. 어린 내 눈에는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명절에도 늘 방에만 있다가 밥 먹을 때만 잠깐 나왔다. 가족들과는 떨어져서 벽에 혼자 기대어 TV를 보다가 소리소문 없이 다시 그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어른들은 모두 그런 삼촌을 걱정했지만, 어린 나는 삼촌의 방 안이 궁금했다. 저 작은 방에서 삼촌은 매일 무엇을 하며 지낼까.
언젠가 삼촌이 한 번 나를 자신의 방에 초대해 준 적이 있었다. 체크 셔츠를 입고 정갈하게 머리를 빗은 삼촌은 글을 쓰고 있었다. 삼촌은 내게 빛바랜 종이에 펜으로 꾹꾹 눌러쓴 습작들을 읽게 해 주었다. 나한테만 보여주는 거라고 비밀스럽게 웃으면서 말이다. 삼촌은 꿈이 있었구나. 그래서 이 방에서 나비가 되기 전 애벌레처럼 도약을 기다리는 거였구나. 멋지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알고 나니 삼촌의 느긋함과 숫기 없음도 예술가의 낭만처럼 보였다. 성인이 되고선 삼촌과 대화를 나눌 일이 점차 없어졌지만 늘 삼촌의 글이 궁금했고, 그 꿈을 응원했다. 입 밖으로 한 번이라도 꺼내어 말씀드릴걸. 마음이 아팠다. 삼촌이 쓴 글은 다 어떻게 됐을까? 그냥 버려졌을까.
삼촌의 장례식에는 가지 못했다. 가게 되면 아빠를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와 나 대신 동생만 참석했다. 아빠는 이혼 후 할머니 댁에 들어가 살고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와 아빠 사이의 일을 모른다. 엄마도 굳이 얘기를 전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아빠가 자신의 입으로 얘기했을 리는 없으니까. 만약 사실을 알았다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몇 년간 꾸준히 내게 전화를 하고, 보고 싶다고 문자를 하진 못하셨을 거다. 동생을 통해 내 소식을 궁금해하지 않으셨을 거다. 그들이 무슨 잘못이 있을까. 하지만 나는 한 번도 답장을 하지 못했다. 할 수 없었다.
# 5-1.
할머니댁이 같은 동네다 보니 동네에서 마주칠 일이 있을까 봐 한동안은 외출도 꺼렸었다. 우리 집을 찾아오면 어떡하지 걱정도 많이 됐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뵌 적이 없지만 아빠는 두 번이나 마주쳤었다. 한 번은 지하철역에서였다. 들어오는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스크린도어 너머로 뒤편에 등산복을 입고 서 있는 아빠를 봤다. 다른 등산객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나만 알아본 것 같아 빠르게 다른 칸으로 이동해 지하철을 탔다. 심장이 마구 빠르게 뛰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피해야 하지? 그때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한 번은 주말 아르바이트하던 호프집에서였다. 동네 번화가에 위치하는 데다 고객 연령대가 높아서 언젠가 한 번은 만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걱정이 현실이 되었다. 카운터를 보고 있는데 시끌벅적 남녀가 섞인 등산객 무리가 들이닥쳤다. 그중 한 명이 붉어진 얼굴로 다가와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는데 아빠였다. 난 한눈에 그를 알아봤지만 이번엔 숨을 수도 없었고, 숨고 싶지도 않았다. 화장실은 나가셔서 오른쪽 코너 돌면 바로 있어요. 비밀번호는 따로 없고요. 아빠는 흠칫하곤 몇 차례 내 얼굴을 살피더니 다른 사람들을 끌곤 황급히 가게를 나갔다.
가게는 금방 관뒀지만 그 사이에 혹시나 아빠가 찾아올까 두려워 매일 퇴근 후 남자친구에게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해야만 했다. 만나면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떠올려봤던 적도 있었지만 제대로 마주하고 나니 어떤 말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 표정, 그 눈빛, 그 모든 게 너무 생생하게 그날 일을 불러일으켰다. 피가 빠져나가듯 차가워졌고 온몸이 차가워졌고 머리는 댕댕 울렸다.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이제 그는 그저 내게 모르는 아저씨일 뿐이다.
# 5-2.
부고 소식을 듣고 몇일 뒤 삼촌이 꿈에 나왔다. 평소 항상 무채색만 입던 사람이 알록달록한 한복을 입고 활짝 웃은 채 내 앞에 서 있었다. 좋은 곳에 가셨구나. 내가 장례식에 가지 못한 걸 알고 이렇게 꿈에 찾아와 주셨구나. 깨고 나니 눈물이 맺혔다. 죄송한 마음이 앞섰다. 앞으로 나는 몇 번의 장례식에 더 참석하지 못할까. 고모, 할머니, 할아버지.. 몇 번을 더 나쁜 아이가 되어야 할까? 인사도 없이 가족이었던 사람들을 보내야 할까?
그 사건 이후론 외할머니댁도 잘 가지 않게 됐다. 처음 몇 해는 얼굴을 비추러 갔지만 사건의 진상을 아는 외가사람들은 늘 나를 불쌍하게 여겼다. 그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손녀가, 조카가, 일도 그만두고 성격도 삐딱하니 폐인이 되었다고 수군거리는 것만 같았다. 엄마는 본인의 가족 하고도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것 또한 신경 쓰였다. 친척들과의 자리가 점점 불편해져서 명절이 되면 나는 자연스레 혼자 여행을 떠나거나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는 등 가족과의 시간을 피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명절이 되면 나는 곧잘 우울해진다. 그 기간에는 매일 지옥에 떨어지는 꿈을 꾼다. 친척들과 다 같이 모여 덕담을 주고받고, 음식을 나눠먹고, 하하 호호 웃으며 소원을 빌던 나날들은 이제 두 번 다시 내게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난 가족을 몽땅 잃어버렸다. 그리고 매년 점차 고립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