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
템플 스테이가 가고 싶어 덜컥 신청을 했다. 운이 좋게 딱 한 자리가 남아있었다. 스님에게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다. 딱히 믿는 종교는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독실한 기독교인이셨다. 그래서 제사 한 번 지내본 적 없고, 어렸을 땐 주말이면 으레 교회에 나갔다. 한 때는 하나님을 절실히 찾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겪은 후엔 의미가 없어졌다. 영화 '밀양'에서처럼 하나님이 나 대신 누군가를 용서하길 바라지 않는다. 할 수 있다면 내가 직접 할 것이다.
그래서 절에 갔다. 잘은 모르지만 불교는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았다. 모든 프로그램을 마치고 새벽에 일어나 절밥을 먹은 후 조심스레 스님께 다가가 물었다.
"스님,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용서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스님은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더니 이내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셨다.
"우선, 마음을 비우세요."
# 7-1.
그런 일을 겪고도 살아지긴 했다. 마음을 다 돌보기도 전에 어찌어찌 취업을 했다. 회사에 다니느라 상담은 도중에 종결해야 했다. 속내가 멀쩡했던 것은 아니다. 아빠 나이대의 과장님과 팀장님들을 보면 괜히 거부감이 들었다. 저분들은 집에서 좋은 아빠일까, 나에게 조금만 잘해줘도 불편하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등산이 취미라고 하면 불륜이라는 단어부터 떠오르고, 여자 선배님들이 소개팅이며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나와는 먼 얘기라는 생각에 서글퍼지는 스스로를 보며 앞으로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는 어렵겠구나 깨달았던 것 같다.
엄마 아빠가 미웠다. 내게서 평범한 삶을 앗아간 것 같아서. 믿고 기댈만한 어른이 되어준 게 아니라 모든 감당의 몫은 나에게만 떠넘겨놓고 간 것 같아서. 그게 원망스러웠다. 내겐 용서라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하지만 난 가벼워지고 싶었다. 미움도, 원망도, 슬픔도 다 내려놓고 훨훨 날아가고 싶었다. 밖에선 우울을 숨기고 밝게 살아가지만 그건 진짜 내가 아니었다. 그러려면 환경을 바꿔야겠다고 판단했다. 내가 나를 먼저 깨끗하게 해주고 싶었다. 모든 것을 비우고 태초로 돌아가 진정한 나로부터 출발하고 싶었다. 회사를 나와 진정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모두의 기대와는 완전히 어긋나는 일이었다. 엄마는 지금도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찬다. 난 네가 진짜 멋진 앤 줄 알았는데.. 큰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나도 그들에게 상처 아닌 상처 하나를 줬으니 쌤쌤이라고 생각한다. 못났지만 그래야만 내가 그들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만 생각하다 보니 천천히 마음이 비워져 갔다. 새로운 걸 담을 공간을 만들어야 했다. 죽고 새로 태어나야 했으므로.
# 7-2.
얼마 전 처음으로 아빠가 꿈에 나왔다. 우리 집에 차마 들어오지 못하고 베란다에서 애타게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었는데 평소와 달리 엄마가 아빠를 집 안에 들이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 엄마 미쳤어?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엄마를 쳐다봤는데 그녀가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너네 아빠가 너무 불쌍해.." 현실과는 너무 상이한 꿈이라 깨고 나서 바로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엄마. 아빠한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
꿈을 꾸고 정확히 일주일 뒤, 동생이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둘이 따로 저녁을 먹다가 동생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누나, 아빠 암이래. 3기."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통쾌함도, 걱정스러움도 아니었다. 무(無)였다. 생판 모르는 사람의 투병 소식을 들은 것처럼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스스로에게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차라리 내가 오래 미워할 수 있도록 잘 살기나 하지. 끝까지 나빴네.
그가 불행하길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동생은 몇 번이고 병원에 찾아가 보라고 권했지만, 가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용서와 화해의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다고 들었다. ”아빠 병원 사물함 비밀번호, 누나 생일이더라.“라는 말과 함께.
더 이상 그가 밉진 않다. 이걸 용서라고 부를 수 있을진 모르겠으나, 그도 더 이상 내게 죄책감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항암치료 통원을 도와주고 있는 아들에게 내 몫의 사랑까지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그렇게 그도 새 삶을 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