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는, 돌아갈 수 없는 이야기

by 실타래

#9.

자기 연민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왜 이럴까.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지? 나는 아픔이 있는 아이야, 그러니 네가 날 이해해야 해. 내가 남들과 달리 살 수밖에 없는 건 가정환경 탓이 커. 난 행복해질 수 없을 거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자.

온갖 말들로 스스로를 후려쳤다.


친구들이 부모님 얘기를 할 때마다, 드라마에 나오는 불륜 장면을 볼 때마다, 결혼식에 참석할 때마다 자기 연민은 커졌다. 나는 저들과 달라. 절대 같아질 수 없어. 남들과는 다른 인생의 길을 선택할 때마다 자기 연민은 가장 큰 합리화가 되어주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마음대로 살자며 내 삶을 특별하게 여기고 싶었다. 하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난 벗어나고 싶었다. 누구보다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이미 지나간 일은 모두 잊고, 다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썼다. 말로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시원하게 배출하고, 이곳에 영영 묻어버렸다. 기억 속에만 있던 일들이 글로서 되살아날 땐 꽤나 아팠지만 있었던 일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은 가벼워졌다. 어깨에 늘 지고 있던 짐을 드디어 내려놓은 느낌이랄까. 쏟아내듯 적다 보니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별 거 아닌 일처럼 여겨졌다. 이것 때문에 그동안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힘들어했던 밤들이 바보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마지막엔 피식- 웃음이 났다. 이게 다 뭐라고. 여전히 나는 나야.


#9-1.

똑같은 하루하루다. 낮에는 학원 일을 하고, 저녁에 돌아와 작사를 한다. 불안정한 미래에 던져져 있지만 지금 하는 일이 즐겁다. 나는 무조건 잘 될 거라고 자기 암시처럼 믿는다. 안 돼도 뭐, 과정이 행복했으니 됐다. 엄마와는 아직도 자주 다투지만 이젠 종종 함께 술을 먹으며 속 얘기를 나눈다. 그래도 곁에 있을 때 잘해야지. 동생과는 점점 대화할 일이 줄어든다. 하지만 새벽에 나타난 벌레에 긴급 호출을 하면 군말 없이 깨어 벌레를 잡아주는 착한 녀석이다. 다소 삐딱한 관계지만 그 속에서 나름의 안정감이 깃들었달까.


마냥 우울하거나 눈물이 나는 날도 줄었다. 감정의 폭이 크게 날뛰던 때도 있었는데 모든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니 다스리는 방법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명절이 되면 아빠 소식을 전해 듣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아졌다는 말을 들으면 장례식에 참석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할 것이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은 돌이킬 수 없다. 없기 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다르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 순 있다. 이 여정을 함께해 준 독자님들 덕분에 나아갈 원동력을 얻었다. 더 이상 나를 동정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나를 응원해야지.


살면서 마주할 인생의 많은 굴곡들 중 하나를 겪은 것뿐이니 이 시간을 견딘 힘을 통해 고난은 유연하게 넘기고, 찾아온 행복은 감사해하며 살아갈 것이다. 원망은 남기지 않겠다. 남은 가족들과 가족의 의미를 찾아가며, 남들이 정의한 사랑이 아닌 나만의 사랑의 모양을 만들어가겠다. 행복해질 것이다. 거창한 행복이 아닌 일상에서의 행복을 나누며 멋지게 살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나와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보듬어줘야지. 내가 먼저 알아보고 손 내밀어 줘야지. 그런 게 산다는 거 아닐까.



#0.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나의 이야기.

안녕 나의 20대. 미련 없이 나는 다음 챕터로 넘어갈게요!

다음 브런치북에서는 말랑말랑하고 재밌는 이야기로 만나요.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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