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건 그들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

by 실타래

# 8.

내겐 기댈만한 어른이 없었다. 어른이란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채 나이만큼의 책임감만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불쌍한 존재 같았다. 점차 어른이라 불리는 나이가 되면서 나 또한 그러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요즘,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제야 비로소 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 8-1.

기억에 남는 선생님들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손으로 하는 것에는 뭐든 재능이 없었던 내가 그린 그림을 칭찬해 주셨다.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술 시간에 들은 칭찬이었다. 선생님은 엄마한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00 이를 잘 키워보세요. 분명 뭐라도 될 아이예요." 내 그림은 형편없었지만 선생님은 내 안의 무언가를 알아봐 주셨다.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모종의 이유로 나를 미워하셨다. 일기장에 선생님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적어낸 적이 있는데(일기 검사를 하는 걸 빤히 알면서 그런 나도 이상하긴 하다), 그걸 보시곤 반 아이들 앞에서 날 크게 혼내셨다. 본인이 무시당했다고 느끼셨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인사를 해도, 수업 시간에 발표하기 위해 손을 들어도, 숙제 검사를 맡으러 가도 날 투명인간 취급하셨다. 심지어 반장 선거에서 다른 친구와 내가 동표가 나오자 "선생님은 00 이가 더 좋다"며 그 친구를 반장에 임명하기도 하셨다. 서러움에 집에 와 털어놓자 엄마는 선생님을 찾아가 선물을 빙자한 무언가를 건넸다. 여태껏 담임 선생님께 아무것도 안 드린 학생들 중 하나가 나였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선생님은 선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사건은 일단락됐다.


중학교 선생님들은 사춘기 학생들을 잡기 위해 애를 쓰셨다. 특히 불량학생이 많았던 우리 학교에선 선생님 앞에서 욕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 등 말 그대로 개기다가 뺨을 맞거나 귓방망이를 맞아 고막이 터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체벌이 가능한 시절이었다. 이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누가 봐도 젊고 아름다운 커리어우먼이었는데 무척 예민하셨다. 어느 날 반에서 심각한 왕따 문제가 생겼고, 반장이었던 내가 상황을 보고 드리러 갔다. "친구들과 이야기해서 이렇게 저렇게 해결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때 선생님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셨다. "이래저래 신경 쓸 게 많아서 걱정이 됐는데... 네가 도와준다니 고마워. 난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었거든."


# 8-2.

완벽해 보이던 어른도 무너질 수 있구나. 어른이란 아이만큼 나약할 수 있는 존재구나. 그 장면은 아직까지내게 충격적으로 남아있지만, 학원 강사 일을 하며 아이들을 대하다 보니 선생이라고 늘 어른스러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불쑥 화가 날 때 화를 다스리고, 가려서 말을 하고, 지식 전달뿐만 아니라 학생들끼리의 관계나 그들의 기분까지 케어해줘야 할 때가 많다. 다시 부모님 얘기로 돌아가보자. 내게 이해받고, 기대길 원하셨던 내 인생의 첫 어른인 부모님. 나이가 들면서 여전히 그들의 행동이 옳다고 할 순 없지만 일정 부분 이해가 가는 지점이 생겨났다.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이 생기고, 나 또한 여러 번의 연애를 거치며 사랑받고 싶은 여자의 마음을 알게 됐다. 한평생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무시당하며 외로웠을 마음이 증오가 되어 자신을 갉아 먹는 한 여자를 떠올려본다. 본인의 사랑이 메마른 상태에서 자식에게 나눠줄 어떤 사랑도 없었을 그녀는 아이들의 아픔은 방치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자식만이 이 결혼의 유일한 성과라고 믿고 싶었을 테다. 나와는 다르게 멋지게 살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바랐지만 따라주지 않는 자식들을 보며 무너져 내린다. 삶을 늘 후회하며 살았으니 이제부터라도 자신을 위해 살자며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예쁘지만 능력이 없고 포용력이 부족하던 엄마의 곁에서 아빠는 한 편으론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회사에서 쫓겨 나와 시작한 자영업이 망하고 몇 년간 집에서 놀 때도 있었지만, 일 년에 한두 번은 의무적으로라도 가족 여행을 계획해 가족들을 끌고 다녔다. 남한테 굽히기 싫어하는 성격이 회사를 나와선 굽신거리며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퇴근 후 집에 와서도 일을 하고, 남은 시간은 홀로 소파에 누워 TV를 보는 게 유일한 낙인 평범한 한 가장을 떠올려본다. 가부장적인 태도로 가족들과는 이미 사이가 소원해서 책임감에 비해 가정 내에선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다. 그러다 주말마다 등산 모임을 찾게 되고, 그 분위기에 취해 술도 몇 잔 하고, 몇 년간 아내와 하지 않았던 관계에 대한 욕망이 이상한 곳에서 터진다. 아내와 외모는 똑같지만 더 현명하고 어린 딸을 보며 그가 사랑했던 그 시절의 아내를 생각한다. 누구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으리란 걸 안다.


# 8-3.

부모와 자식, 선생과 제자 관계에선 언젠가 자식이 부모가, 제자가 선생이 되는 때가 온다. 그때서야 보이고, 만져지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생긴다. 응당 부모라면, 선생이라면 이래야 해라는 것이 환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안다면, 옳은 선택만 할 수 없는 게 삶이라는 것을 안다면, 이것이 그들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지만 그들을 조금 덜 미워할 수 있는 이유가 되어준다.


나 또한 수없이 부딪히고 실수하며 여전히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이러한 아픔과 성숙의 과정을 통해 타인의 삶을, 이 세상을 좀 더 넓게 끌어안을 수 있게 된다면 누군가에게 내가 그토록 원했던 '좋은 어른'이 되어주고 싶다. 우리는 서로가 모르는 각자만의 상처를 안고 매일을 살아간다. 그러니 타인을 조금만 더 사랑스럽고 안쓰럽게 봐주는 게 어떨까. 험난한 삶을 하루하루 치러 가고 있는 모두를 응원하면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라도 따스히 대해주자. 어린 나 자신을, 나의 못난 엄마아빠를, 내가 만났던 모든 선생님들을, 오늘은 말없이 꼭 안아주고만 싶다. 수고했어요 , 오늘도.


keyword
이전 08화용서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