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밤, 엄마는 아저씨와 있었다

by 실타래

#1.

늘 성실히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목표는 좋은 대학을 가는 게 아니라 성공해서 최대한 멀리 집에서 벗어나는 거였다. 당시 난 대학 졸업을 앞둔 취준생이었고, 목표 달성까지 얼마 안 남지 않았었다. 근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거다. 지금 당장 집을 나갈 수는 없다. 무언가 바뀔 거라는 내 희망과 노력이 녹아있던 이곳의 옥상에 서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다고. 사실 그렇게 놀랍지도, 비극적이지도 않잖아. 비상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항상 추락중이었단 걸 인정하기로 했다. 그럼 이제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날 저녁까지 내가 무얼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처 없이 걸었던가. 추위를 녹이러 카페에 들어갔던가. 저녁쯤 하루 종일 꺼둔 폰을 켰다. 당시 만났던 연인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그는 당장 내 동네로 달려와 따뜻한 저녁을 사주었다. 종일 한 끼도 못 먹은 내게 뜨끈한 감자탕을 먹여주었다. 그가 떠주는 감자탕을 가만히 받아먹다 이 상황에서 밥이 들어가는게 웃겨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걱정하는 그에게 난 아주 조그만 사실만을 털어놓았고, 그는 당장 자신의 집에서 가서 함께 지내자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기가 두려운 건 사실이었으나 짐 하나 챙겨 오지 못했고, 다른 가족들에겐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주저하는 나를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 내가 있는데 뭐가 문제야? 그 집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보단 훨씬 낫잖아?

- 근데.. 있잖아. 너도 남자잖아. 내가 너는 어떻게 믿을 수 있어?

- ....


그 사람과는 이 일이 있은 후 한 달이 채 가지 않아 헤어졌다.


밤이 되도록 가족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고, 일단 집으로 돌아가길 택했다. 오늘은 엄마가 집에 와 있을 테니까. 일부러 아빠가 잠들었을 시간을 노려 집에 들어갔다.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기까지 현관문 밖에서 얼마나 망설였는지 모른다.


아빠는 거실 소파에 앉아있었다. 늦게 다니네? 일찍 좀 들어와. 마치 어제 일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 사람처럼 인사를 건네곤 태연히 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니 모든 게 꿈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트는 순간 모든 건 금방 다시 현실이 되었다.


#1-1 .

엄마와 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우린 서로를 미워했기 때문이다. 나를 낳고부터 엄마는 아빠와 사이가 안 좋아졌고, 그 관계 속 서러움과 한탄은 몽땅 내 몫이었다. 엄마는 어린 내게 아빠에게 쌓인 화부터 친가에 대한 험담까지 스스럼없이 말했고, 엄마의 고통은 그대로 내 맘에 쌓아 올려졌다. 너는 날 이해해야 해. 아빠와 똑같은 이야기를 엄마에겐 더 자주 들었다.


그녀의 인생은 이미 충분히 불행했다. 아빠와 닮은 구석이 있는 나를 미워하면서도, 당신과는 다른 나를 기대했다. 딸은 엄마와는 다른 행복한 삶을 살 거라고. 언젠가 같은 여자로서 자기를 이해하고 자신의 편이 되어줄 거라고. 하지만 난 엄마를 이해할 수 없어 불행해졌다. 늘 굳게 닫힌 안방 문 안에서 엉망이 된 얼굴로 울고 화를 내는 엄마를 상상하는 게 싫었다. 그 울음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날엔 혹시 엄마가 진짜 죽은 게 아닐까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차마 방문을 열어 볼 용기는 없었다.


엄마는 늘 내게 죽고 싶다고 말했다. 아빠와 크게 다툰 날, 엄마는 부엌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다 같이 죽자고 소리치던 엄마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중학생 때 인터넷에 온갖 자살 방법을 찾아본 적이 있다. 그중 무엇 하나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는 것이 없었다. 엄마. 그래도 칼보다는 다른 게 나을 것 같아. 그 말은 엄마를 멈추게 할 순 있었으나 구제하진 못했다. 죽고 싶다는 엄마가 진짜 죽어버릴까봐 난 늘 아픔을 숨겨야했다.


#1-2.

그 일이 있고 며칠 동안 방에만 처박혀 있었다. 아빠는 여전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굴었고, 그런 아빠를 마주 하기 싫어 삼시 세끼를 방에서 먹었다. 그는 가부장적이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온 가족이 나와 자신에게 인사를 해야 했고, 저녁 식사는 꼭 같이 해야 했다. 며칠째 방 안에만 있는 날 엄마가 억지로 부엌으로 끌어내 함께 밥을 먹게 했다. 얼굴을 마주 보니 속이 메스꺼워 밥 한 숟가락 뜨기가 어려웠다. 내내 눈을 내리깔고 있는데 아빠가 말을 걸어왔다.


- 밥 좀 퍽퍽 먹어. 그리고 넌. 아빠가 왔는데 인사도 안 하니?

-...

- 대답 안 해?

- 그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내가 아무렇지 않게 같이 밥을 먹어요. 나한테 화낼게 아니라 사과를 해야 맞지 않아요?

- 고작 그 일로 지금 아빠한테 눈을 부라려?!


탁. 그건 숟가락을 내려놓는 소리가 아니라 내 마음의 마지막 불빛이 꺼지는 소리였다. 아빠는 그 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과하지 않았다. 미안해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엄마한테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당당할 수 있는 거다.


역겨웠다.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아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 날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엄마에게 울며 모든 걸 털어놓았다. 일단 내가 살아야 했다. 단 하루도 그와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내 말 중 그 어느 것도 믿지 못했다. 그게 내게 또 다른 상처가 됐다.


"아무리 너네 아빠가 미워도 그럴 사람은 아니야. 나랑은 피부 닿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인데.. 그래도 너는 예뻐했는데 술 취해서 실수한 거겠지. 이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너처럼 똑 부러지는 기지배가 그걸 말 안 하고 참고 있었다고? 말도 안 돼.


나중에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나서야 엄마는 내 상처를 안아줬다. 그날 밤 너를 혼자 두어 미안하다고 날 감싸 안고 사죄의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의 의미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다고 한 그날, 엄마는 친구가 아닌 어느 아저씨와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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