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겨울은 추웠다. 차가운 바람을 피해 외투를 두 개씩 껴입고, 몸을 최대한 말아서 웅크리고 다녔다. 끝없이 몰려드는 추위를 피해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숨어 지냈다. 잘못한 것도 없고 피해야 할 것도 없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편했다. 밝은 대낮에는 집에 웅크리고 있다가 어두컴컴한 밤에만 집 밖을 빠져나와 일을 처리했다. 추위에 빳빳하게 굳어진 몸에서 자꾸만 삐걱삐걱 신호가 왔다. 아직은 젊지만 젊지 않은 몸에서 오는 신호는 혼란스러웠고, 추위를 피해 몸을 최대한 말았지만 추위도 피할 수 없었다. 그 해 겨울, 나보다 더 빳빳하고 바스락거리는 몸을 지닌 엄마에게서 한통의 전화가 왔다. 나의 몸보다 엄마의 몸보다 먼저 신호가 온 것은 우리 건물이었다.
박쥐처럼 어두침침한 곳을 찾아 숨어 지내는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던 3월의 끝자락, 오후 3시에 나왔다. 어두컴컴한 엄마의 뱃속에 숨어 있다가 세상에 던져졌을 때 우리집은 대변혁이 예고되어 있었다. 그 시절 흔치 않았던 직장 여성이었던 엄마는 해마다 새로운 엄마를 만들어 3살의 오빠를 키워냈다. 그러나 한 명이 더 나오자 엄마는 또 다른 엄마를 만들어주는 것에 포기를 선언하고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따라서 나는 오빠가 겪었던 세 명의 엄마를 겪지 못하고, 단 한 명의 엄마만을 기억하게 된다.
늦은 나이까지 공부만 하는 아빠를 대신하여 생계를 책임지던 엄마는 직장과 육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결국 아빠와 상의 하에 나를 없애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지만 할머니에게 나의 존재를 발각되어 모든 노력이 산산조각 났다. 엄마는 직장을 그만 두어야 했고, 아빠는 공부를 멈추어야 했고, 나는 세상에 던져져야 했다. 당시 진해로 돈을 벌러 간 아빠를 대신해 엄마는 우리를 키웠고, 엄마의 월급과 퇴직금을 모두 털어 넣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건물 건축을 시작했다. 어린 꼬마 둘과 함께 버스를 타고, 은행을 누비며 대출을 받고, 인테리어 상가를 방문하고, 인부들을 감독하며 드디어 건물을 올렸다. 내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한 때는 일하는 여성이었던 엄마의 삶은 3층 건물로 대체되었다. 아빠보다 낮은 학벌과 직장이었지만 한 때는 아빠보다 수입이 훨씬 좋았던 엄마에게 건물은 마지막 자존심이자 자부심이었다. 건물이 완성되자 우리 가족은 모두 이사했다. 진해에 갔던 아빠도 합체된 완전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1층에 작은 상점, 2층에 당구장, 3층에 우리집이 있는 전형적인 상가 건물이었다. 새 집에 들어간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라 아직 마르지도 않았던 시멘트 냄새, 퀴퀴한 약품 냄새, 페인트 냄새조차 향기로웠다. 새 집 증후군이니 환경 호르몬 따위로 걱정하는 젊은 어머니를 비웃기나 하듯이, 그 시절 우리 가족은 그 냄새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세상 최고의 행복을 누린다. 지금도 새 건물에 들어서면 마냥 행복했던 6살 꼬마 냄새가 난다. 새 집에 산다는 기쁨만으로 가슴이 벅차서 우리집이 부자가 되었다고 착각하던, 아직은 글자를 모르는 세상에 살던 6살 꼬마로 변신한다. 눈이 따갑도록 매운 새 집 냄새는 나의 유년을 여는 열쇠가 된다.
순식간에 나는 3층집 딸이 되었다. 동네 사람들이 나를 빌딩집 막내딸이라고 불렀다. 3층이 무슨 빌딩이냐고 비웃겠지만 그 당시 우리 동네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푸른빛이 도는 끈 달린 원피스를 입고, 한 손에는 피아노학원 가방을 들고 3층 빌딩집 공주님으로 변신한다. 오빠와 나는 옥상까지 점령하여 마음껏 뛰어다니고, 밤새도록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골목길도, 구멍가게도, 운동장도 어느덧 우리 놀이터가 되어 마음껏 누비고 다녔다. 어린 남매의 눈에 우리집과 동네는 절대 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넓고 광대한, 탐험이 필요한 신비로운 세계였다. 시계 바늘은 돌려져 또 한 번의 이사를 결심한다. 외풍이 심한 상가 건물에서 연탄보일러로 추운 겨울을 나기가 힘들다는 점이 주된 이유였다. 빳빳하고 바스락거리는 몸을 지녀야 하는 운명을 지닌 엄마와 나에게 거스를 수 없는 절실한 문제였다. 기름보일러, 온수, 엘레베이터가 제공되는 생각만으로도 따뜻한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 그렇게 나의 유년 시절은 끝이 났고, 3층 빌딩집 공주님의 신화도 막을 내렸다. 이제 오빠와 나는 더 이상 뛰어다닐 이유가 없어졌다. 우리집이라는 광대하고 신비로운 세계가 아닌 각자의 독립된 공간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
주인이 사라진 건물은 더 쉽게, 더 빨리 나이를 먹는다. 발단은 건물 2층에 화장실을 추가로 설치하면서였다. 수시로 일하는 사람을 바꾸고, 수많은 공사를 해도 잡을 수 없는 물줄기가 생겼다. 건물 2층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계단을 점차 엉망으로 만들고, 겨울이면 얼어붙어 세입자의 원망을 샀다. 결국 엄마는 월세를 동결하고 세입자에게 사정을 하는 상황으로 역전하였다. 나의 유년을 눈부시게 비추어 주던, 우뚝 솟은 3층 빌딩은 조금씩 치료가 안 되는 회복 불가능의 낡은 건물로 바뀌고 있었다. 어린 꼬마가 나이 많은 노처녀로 바뀌는 동안, 동네를 마음껏 뛰어다니던 남매가 각자의 공간에서 몸을 웅크리고 숨어 지내는 동안 건물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여름에는 폭우를 견디지 못해 물이 새고, 겨울에는 동파로 점차 한계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결국 그 해 추운 겨울을 이기지 못했던 건물은 화장실, 부엌, 보일러실로 이어지는 보일러와 수도관을 모조리 터뜨렸다.
결국 엄마는 건물의 이상 징후를 견디다 못해 수리와 동시에 팔기로 결정했다고 통보했다. 그 날, 생명을 단 한 번도 품지 못했던 노처녀의 몸에도 이상 징후가 발생했다. 갑자기 생리가 터졌다. 내 몸에서 나왔으리라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진한 선홍색 피와 검은색 끈끈한 물질이 낮설었다. 그래도 잠시라도 내 몸의 일부였으리라는 생각에 유심히 쳐다보았다. 평소와는 분명 달랐다. 나를 동화 속 공주님으로 뛰어놀게 해주던, 엄마의 유일한 자부심이던, 건물이 팔린다는 생각만으로도 나의 몸의 일부도 슬며시 빠져나간 기분이었다. 우리 가족에게 마른 수건처럼 한 방울도 남김없이 수액을 빨아낸 낡은 건물은 그렇게 사라졌다. 빳빳하게 변한 내 몸도, 바스락거리는 엄마 몸도, 몸을 둥글게 말아 숨어서 지내는 우리 남매도, 이제 주인을 잃어버린 건물도 추위에 조금씩 무감각해지고 있다. 그 해 겨울은 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