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by 현재 작가

그 해 여름은 더웠다. 더운 여름을 이길 만한 튼튼한 몸도, 더위를 피해 오랫동안 여행을 할 만큼의 넉넉한 돈도 지니지 못한 나는 집을 잃은 강아지처럼 이곳저곳을 방황했다. 그러던 중에 하루 만 원 안팍이면 비교적 풍요롭게 하루를 보낼 최적의 장소를 발견했다. 바로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국립대학 도서관이었다.


뜨거운 태양을 피해 으슥한 곳에 몸을 숨길 수 있는 곳, 시원한 냉방장치가 가동되는 곳, 내가 사랑하는 책들이 가득한 곳,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점심식사와 커피가 제공되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숨 막히는 더위를 피해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 어느 순간 책들이 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인문서적을, 철학 서적을 기웃거리며 가볍게 나들이를 하다보면 향기나는 커피가 문득 그리워진다. 쌉싸름하고 강렬한 에스프레소와 부드러운 우유거품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카페 라떼 한 잔과 향기로운 책 한 권이면 내 인생은 충분히 행복했다. 더위도 피하고 재미있는 책을 읽으며 싸구려 믹스커피의 텁텁함을 달래줄 이곳이 바로 천국이리라.


도서관과 도서관 내 카페를 전전하다가 2~3시쯤 슬슬 배가 고파지면 자연스럽게 구내식당으로 발길을 돌린다. 젊은 청춘들과 더불어 한 끼의 거룩한 정찬을 즐기면 그 순간만큼은 나도 20대의 치열한 피 끓는 청춘이 된다. 식당에서 배고픈 청춘들과 더불어 배를 채우며 배고프지 않는 내일과 배부른 미래를 같은 마음으로 기원하는 것이다. 식당을 들어가기 전과 나오면서 달라지는 몸과 마음처럼 우리의 내일은 분명 오늘과는 다를 수 있다고 외친다. 도서관 문을 열고 닫은 횟수만큼 당신의 미래도 찬란하게 변할 것이라는 표현은 너무 진부한가.


늦은 점심을 먹고 나면 슬슬 심심해졌다. 대학 노트를 꺼내고 또다시 무언가를 적는다. 글을 쓰는 의식을 시작하는 것이다. 내 글을 읽어줄 독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계속해서 글을 쓴다. 왜냐면 이 글을 나를 위한 것이니까. 답답한 현실이라는 장벽을 온 몸으로 밀어내기에는 힘이 벅차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나 자신이라도 글을 통해 변화 받고 싶은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윤동주의 시처럼 내 마음 속에도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을 수 있을까. 작가지망생도 전업 작가도 아니지만 황폐한 마음을 달래고자 오늘도 글을 쓴다.


더운 여름을 이기기 위해, 더운 여름보다 더 숨 막히는 현실을 피하기 위해 피 끓는 청춘들과 함께 오늘도 도서관에 있다. 취업을 준비하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젊은 청춘들에게 신의 축복이 함께 하길. 그리고 아무 이유도 없이 글을 쓰는 나에게도 현실을 장벽을 이길만큼 강인한 심신을 만드는 여름이 되기를. 올 해 여름도 이렇게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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