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먹기 프로젝트

by 현재 작가

바람이 불었다. 찬바람에 몸이 오싹오싹 떨려왔다. 날이 추워서인지 얼큰한 국물 떡볶이가 생각났다. 온 몸의 세포가 다 살아나서 고추장과 설탕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맛, 빨간 고춧가루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콤한 냄새, 코끝으로 전해지는 국물의 따스함, 땀을 흘리며 먹고 나면 오히려 청량한 기분까지 떡볶이와 관련된 모든 기억이 떠올랐다.


달콤한 빨간 국물에 온 몸을 내맡긴, 매끈하고 말랑말랑한 흰 몸을 꽉 깨무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순대, 튀김, 김밥, 만두의 떡볶이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아 빨간 국물에 퐁당 빠트리고 싶었다. 떡볶이 국물에 떡볶이 친구들을 적셔서 숟가락으로 떠먹는 맛은 또 얼마나 일품인가. 슬프게도 이렇게 좋아하는 떡볶이를 먹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회사에서 힘든 프로젝트를 떠맡게 되자 동료들이 큰 맘 먹고 시켜준 포장용 떡볶이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커다란 일회용기에 온 몸을 내맡긴 빨갛고 하얀 떡볶이를 바라보며, 찌그러진 종이컵에 꾹꾹 눌러 먹었던, 눈물 나게 맵고 속 쓰린 기억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분식집을 방문한 기억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회식이라는 제도를 제외하고 누군가와 밥을 먹어본 기억이 없었다. 나에게 식사란 혼자 빈속을 채우거나 공적으로 회사 사람들과 먹어야 하는 일과가 되었다.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한 끼의 식사를 함께 하는 소박한 즐거움을 갖기에 직장은 항상 빨리 움직이는 시곗바늘 같았다. 날씨는 항상 덥거나 추웠고, 동료의 입맛은 항상 나와는 달랐고, 회사에는 항상 급하게 처리할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직장 동료들이 원하는 음식을 두고, 아무렇지 않게, 아무런 이야기나 하며, 뭐든 입 속에 쑤셔 넣고 시간에 맞추어 식사를 마쳤다. 주말이 되어서야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은 30대가 넘어가면서 하나 둘 가정이라는 이름으로 떠나갔다. 조금씩 빨라지는 시간 앞에서 밥을 함께 먹을 여유도, 음식을 앞에 두고 인생을 논할 이유도 사라졌다. 내 주변에 있었던, 한때는 푸르른 나뭇잎의 푸른 기억을 지녔던 소중한 사람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30대와 40대 길목에서 남겨진 것은 바람이 불고 나간 텅 빈 자리였다.

오늘 따라 떡볶이 생각이 간절했다. 호주머니에서 카드와 빳빳한 지폐 몇 장을 만지작거렸다. 10년 직장 생활 동안 병가나 연가를 쓴 일이 채 10일도 되지 않는다는 근무 성적표는 그 동안의 직장 생활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빨간 싸구려 떡볶이를 100번을 먹어도 되는 화려한 근무 성적표였다. 그러나 떡볶이를 먹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분식집을 가는 일은 혼자 카페에서 가는 일과는 너무나 달랐다.


왁자지껄 시끄럽게 떠드는 여드름투성이 학생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혼자 몰래 분식집에 방문해 포장을 해서 가져올까도 고민했다. 식은 떡볶이를 멀뚱멀뚱 텔레비전을 보며 혼자 먹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떡볶이를 비닐봉지에 내 맡긴, 일회용기에 담긴 떡볶이는 그냥 떡볶이였다. 학창 시절에 지겹게도 경험했던 분식집에서 갓 끓여낸 떡볶이, 진짜 떡볶이를 먹고 싶었다. 분식집에 혼자 앉아 꾸역꾸역 떡볶이를 먹다가 복통을 호소하는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았고, 포장해 온 식어빠진 떡볶이를 전자렌지에 데워 먹는 청승도, 그렇다고 혼자 먹겠다고 주방을 난도질해가며 빨간 국물이 사방으로 튀는 떡볶이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빳빳한 지폐와 카드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우리들만의 특별했던 회수권 떡볶이가 먹고 싶었다. 하교길에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먹던 빨갛고 달콤한 국물에 몸을 맡긴 매끈한 밀가루 떡, 약간의 눅눅했던 튀김과 순대 생각이 간절했다. 중학교 시절, 친구들 대부분은 먼 거리에서 통학했다. 미리 학생 할인 금액으로 회수권을 구입하면, 버스비를 회수권으로 대신 받는 시스템이었다. 회수권은 우리의 발을 대신해 주었다. 어느 날 친구들은 학교 주변의 가게들은 회수권을 돈 대신 받는다는 정보를 입수해 왔다. 그 때부터 버스를 타는 용도로만 알고 있었던 회수권은 떡볶이와 주전부리로 모양을 바꾸어 다가왔다. 회수권 한 장에 쫀드기, 회수권 두 장에 튀김, 회수권 세 장에 떡볶이가 되는 우리들만이 아는, 우리들만의 가격표가 생겨났다. 우리의 발을 대신해 주던 회수권은 굶주린 배를 채워주었고, 먼 거리만큼이나 참으로 길고 즐거운 수다를 떨며, 학교에서 집까지 불편하게 걸어 다니게 한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맛도 맛이지만 학생용 회수권으로 사먹는 떡볶이의 맛은 더 특별했다.


침을 사방으로 튀기면서,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박박 긁어먹었던 회수권 떡볶이와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전화를 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실은 전화를 걸고 싶은 그 누구도 떠오르지 않았다. 재잘대던 목소리와 손 때 뭍은 교복들, 교복 주머니에 뒹굴다가 반 토막 난 회수권들, 함께 맞잡았던 손의 온기만 느껴질 뿐이다. 환영처럼 회수권이 바람에 날렸다. 바싹 마른 시든 나뭇잎이 바람을 따라 사방으로 흩날렸다. 어느덧 떡볶이 먹는 일이 프로젝트를 꾸려야 할 만큼 어렵고 난감한 일이 되어 버렸다. 또 다시 바람이 불었다. 매콤한 떡볶이를 먹은 듯 혀가 얼얼하게 마비되어 갔다. 살짝 코끝이 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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