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아침마다 산책하던 동네 하천가에도 푸드덕 날개짓하는 새들과 오리떼로 장관을 이룬다. 훈훈한 봄의 미풍은 메마른 땅에도, 얼어붙었던 하천에도 푸르른 싹이 돋아나고, 생명의 기쁨은 꽃처럼 피어난다. 어린 새싹은 물이 차올라 눈부시게 빛나는 시절을 맞이하고, 번성한 것은 쇠하여지는 기적의 현장이다.
계절이 바뀌고 한 해가 시작되듯이 우리 가족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갓난아기였던 어린 조카들은 꽃의 여신 플로라처럼 꽃향기 가득한 봄이 되었고, 코흘리개 어린 남매는 가정을 이룬 장성한 성인이 되어 여름과 가을은 넘나든다. 어린 남매를 키우던 부모님은 어느덧 겨울의 끝자락을 맞이하고 있다. 인생의 사계절처럼 자식이 장성한 성인이 되고, 장성한 성인이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부모는 병들고 쇠약해지고, 자식은 어느덧 부모와 같은 노인이 되어가는 인생의 사계절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그것이 내 이야기가 되었을 때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그것도 조금씩 때로는 빠르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연로하신 치매 부모를 돌본다는 것은 더욱더 받아들이기가 힘겨웠다. 부모가 치매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부터 이제는 내가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지금이 가장 좋은 날이라는 것, 부모의 이상 행동과 성격 변화도 감내해야 한다는 것, 언제 어떻게 끝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
다행히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셔서 큰 짐은 덜었지만, 여전히 우리 가족은 겨울에 머물고 있다. 치매 부모를 돌보며 느낀 첫 번째 감정은 내가 40년 이상 알고 지내던 부모가 아니라는 느낌이다. 매주 찾아뵐 때마다 처음 보는 낯선 타인과 동행하는 느낌이었다. 아무 일도 아닌 일에 갑자기 화를 내신다든지, 밝게 조명을 켜고 생활하시던 아버지가 모든 불을 다 끄고 깜깜한 거실에서 우두커니 텔레비전을 보신다든지, 옷을 갈아입고 목욕하기를 거부하신다든지, 분리수거함에서 별 필요도 없는 물건을 계속 주워오신다든지, 말도 안되는 일을 본인이 맞다고 계속 우기신다든지 사소하지만 낯선 변화였다.
너무나 낯선 타인이 철없는 나를 돌보아주고 키워주었다는 느낌 그리고 긴 시간 동안 함께 살을 맞대고 사랑했다는 사실이 가끔은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거친 말이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믿지 않기로 했다. 부모의 분노도 믿지 않으며, 성격이 변했다거나 낯설다는 느낌도 믿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한 때는 다정했던 가족끼리 어느 순간부터 주고받았던 모진 말과 괄시도 믿지 않는다. 또한 힘든 겨울을 보내고 있으니, 조금만 견디면 따뜻한 봄이 찾아와 너른 날개를 펼치고, 푸른 하늘을 훨훨 날아갈 것이라는 환상 따위도 꿈꾸지 않는다. 어떻게 진행될지, 얼마나 악화될지 모르는 불안한 미래에서 무엇을 더 꿈꾸는가.
대신에 그 거친 말과 이상 행동에도 숨겨진 사랑의 속살이 있으리라고 믿기로 했다. 나도 아프고 힘들면 말도 안 되는 거친 말을 하고 짜증도 내며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니까. 아이를 간절히 기다리는 난임 부부에게 아기가 쉽사리 찾아와주지 않는 것처럼, 긴 겨울을 보내는 치매 가족에게 따뜻한 봄의 행복이 쉽사리 찾아와주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거친 말과 행동을 이겨내는 단단한 사람이 되기를, 그 거친 말과 행동에 숨겨진 맑은 속살을 보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그리고 어느 순간 계절이 바뀌듯이 모든 변화를 온몸으로 이겨내는 사람이 되기를 오늘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