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나의 작업실

작가지망생이 글을 쓰던 공간

by 현재 작가

나는 낡은 복도식 아파트 끝자락에서 몸은 젊었으나 마음은 어두웠던 그 시절을 보냈다. 하는 일은 나와 맞지 않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평범한 가정을 꿈꾸었지만 인연은 빗나갔다. 어렵게 구한 일자리를 박차고 나갈 용기도, 계속해서 없는 인연을 억지로 만들 노력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나이를 먹고 낡은 아파트에서 중년이 되었다.


내가 살던 복도식 아파트는 어두운 저녁이 되면 엘리베이터 입구와 복도 끝부분에만 잠깐씩 센서등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어둡지 않았지만 긴 복도를 지나다 보면 금새 어두워져서 끝자락에 위치한 우리집에 도착할 때쯤 마지막 센서등이 작동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누군가 집근처에 숨어 있나 습관처럼 둘러본 다음에야 조용히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여자 혼자 살면서, 가끔씩은 늦은 밤에 귀가하던 내가 15년 이상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혹시 내가 당황할까봐 이웃 주민이 오히려 나를 피해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지 않았거나,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올라가도 내가 현관문을 닫고 나서야 발걸음을 옮기던 주변 이웃의 배려가 컸다. 그렇게 15년 이상을 살아낸 다음에야 그 곳과 작별했다. 긴 복도라는 어둠의 터널을 지나면 반짝이던 우리집 그리고 나의 젊은 시절.


그 시절 나는 하루 종일 웅크리고 앉아서 무언가를 읽고 쓰기를 반복했다. 평일에는 직장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산책하고, 장을 보고, 주말에는 밀린 잠을 보충하고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며 일요일 밤에는 어김없이 불면에 시달리는 단순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만날 친구도, 미래를 기약할 인연을 찾는 것도 점점 내 삶에서 멀어져갔다. 그런 나에게 주방 겸 거실은 소음, 온도, 습도, 밝기, 외로움 따위에 맞춤형으로 설계된 최고의 공간이었다. 4인용 식탁에서 수많은 책과 노트북을 힘겹게 껴안으며 평범한 직장인, 작가 지망생, 늦깍이 학생 역할을 버텨냈으니까. 멋진 풍경이 펼쳐진 잔잔한 음악이 나오는 카페라고 상상하며,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라고 속삭이며, 간혹 힘들 때는 답답한 이 곳을 홈 카페나 작가의 작업실로 만들어낼 상상력도 없이 무슨 글을 쓰겠냐며 자책하며 하루 종일 웅크리고 앉아서 끼니를 해결하고 혼잣말을 하며 작업을 했다.

복도식 아파트 4인용 식탁.jpg

물론 글쓰기도, 공부도, 직장 생활도 모두 녹록치 않았으니 그 작업실에서 성공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4인용 식탁에 수없이 펼쳐놓았던 노트북과 난잡한 책들도 다 팔아버렸고, 직장과 병행하며 힘겹게 다녔던 대학원도 수료에서 그쳤고, 등단을 꿈꾸던 글쓰기도 그만 두었고, 직장 생활도 겨우 버티는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나마 늦게라도 우리 남편을 만나 그 곳을 빠져나왔으니 다행이라고 할까. 나를 배려하여 무관심으로 대응해준 고마운 이웃 주민도, 삐걱거렸던 4인용 식탁도, 낡은 책상도, 먼지가 흩날렸던 옷장도 다 작별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긴 복도를 지나던 그 시절, 나의 작업실을 여전히 기억에서 만난다. 많은 것을 이루어내지는 못했지만 글을 읽고 쓰던 내 젊은 시절의 일부였으니까. 예민했던 작가 지망생의 성향을 모두 맞추어준 유일한 공간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복도를 수없이 지나다니며 꿈꾸던 그 시절만 가능했던 글이 있었으니까. 오늘 밤도 세상의 모든 작가 지망생을 생각하며, 어두운 터널과 여전히 반짝일 그 작업실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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