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화' 된 임신 가내 수공업 시스템
6년 전, 결혼을 막 했을 때의 나는 인간사에 대해 오만했던 것 같다.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니, 앞으로 내 인생에서 계획한 일은 한 치의 걸림돌 없이 진행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어리석은 믿음은 일 년도 안되어 나를 비웃었다.
나의 계획은 이러했다.
‘결혼해서 일 년은 신혼을 즐길 거야.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해보고, 가고 싶은 곳도 마음껏 가보고, (즐길게 뭔지도 정확히 없었으면서) 즐길 거 다 즐기고 임신을 할 거야.’
내가 계획한 대로 제대로 즐기고 제대로 시간을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제 계획한 대로 임신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1년의 시간이 지나도 우리에게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자, 내 마음속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 내 계획과 다른데? 임신이 내가 마음먹으면 되는 게 아니었나?’
처음에는 임신 소식을 기다리는 것이 좋았고 설레었다. 결혼이라는 것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재미있는 이벤트인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번 달은 지나가고 다음 달을 기다려야 하는 반복된 시간이 너무 길고 초조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나에게 임신 소식을 전해준 한 친구가 내가 몰랐던 새로운 문물을 소개해줬다. ‘배란 테스트기’라는 것인데 매일의 소변 검사를 통해 배란일을 나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해서, 임신 가능성을 높여 준다는 것이었다. 그 신문물을 들인 이후로 우리 집은 체계화된 시스템을 가진 임신 가내 수공업 현장이 되었다. 한 달 30일은 임신을 위한 일정으로 계획이 짜여졌고, 그 계획에 맞춰 나는 매일 저녁 ‘배란 테스트기’에 소변을 묻혔다.
요즘 유행하는 mbti에서 확신의 P가 나오는 (무 계획형의) 우리 부부에게 ‘그날’을 제안해 주는 주체는 그날그날의 우리 감정이나 무드가 아니라 한 손에 잡히는 얇고 긴 '배란 테스트기’의 지시였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즐거움을 잃어 갔다.
‘과학적인’ 배란테스트기에 의존하면 금방 임신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나에게 삼신 할머니는 어림없는 일이라고 기별을 주셨다. 기다림은 눈덩이처럼 점점 크고 무거워져서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한때 나에게 ‘설렘’이라는 단어만 같던 기다림이 어느새 ‘두려움’, ‘불안함’과 가까워졌다.
배란테스트기를 사용한 지 한참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자, 나는 어느 날 남편에게 ‘난임 병원’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내 나이는 31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