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문] 사진보고 상상해서 쓰기
그를 만난 것은 10년 전 봄, 파고다 공원에서였다. 허름한 차림의 그는 수백 마리의 비둘기에 둘러싸여 모이를 주고 있었다. 살이 디룩디룩 찐 비둘기들에 둘러싸인 노인의 모습은 피죽도 못 얻어먹은 이 처럼 퀭해서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늘에 앉아 멍하니 그 풍경을 바라보던 나는 점점 노인이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모이주기를 마친 노인이 내 옆에 와 앉았을 때 참지 못하고 오지랖을 부리고야 말았다.
“어르신 사람 먹을 것도 없는데 왜 저 도움도 안 되는 비둘기에게 헛돈을 쓰십니까?”
나는 무례했고 오만했다. 그런 나에게 노인은 덤덤하게 응수했다.
“도움이 되지 않는 이라고 살 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요.”
‘비둘기도 먹고 살아야지’ 쯤의 답변이었다면 내용이 그리 다르진 않아도 나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한 말의 뜻을. 그러나 그는 내가 뱉은 짧은 말에서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정확하게 짚어주어 나를 당황시켰다. 나는 대답을 못한 채 그의 말을 곱씹었다. 우리가 앉은 자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노인들이 무언가를 향해 줄지어 서있었다. 그 줄 끝에는 무료급식차량이 있었다. 나는 내가 방금 한 말을 누군가 저 급식차량의 주인에게도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들과 비둘기들이 파고다공원을 찾는 이유는 그리 다르지 않았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삼삼오오 모이고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떼 지어 선다. 그들은 삶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충족하지 못해서 그곳에 모인다. 도시에 비둘기가 늘어나듯 세상에 노인이 늘어난다. 그것은 그들이 선택한 것은 아니다. 세상의 흐름이 그러해서 벌어진 일인데 세상은 함께 책임져 주지 않는다. 아직은 세상이 자신들을 필요로 한다고 자부하는 젊은이들은 비교적 그 필요가 덜한 모든 존재를 쉽게 무시한다. 그리고 천덕꾸러기 취급한다.
사과의 인사 대신 대접한 자판기 커피 한 잔에 노인은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말했다. 저 쓸모없는 비둘기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게 이 쓸모없는 노인네뿐이라고. 그가 쓸모없다는 말에는 공감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세상임을 이해해서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10년이 지났고 종로에는 더 많은 노인과 더 많은 비둘기가 생겼다. 비둘기가 득실거리는 공원에 가기를 꺼리듯 노인들만 넘쳐나는 종로는 더 이상 기능을 하지 못하는 도심이 됐다. 그리고 그 틈에 지금의 내가 앉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