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가 없어서, 의지가 부족해서
오늘도 야근을 했다.
대개 나의 일상은 늦게 마무리된다. 지금 내 본업의 숙명인지, 나의 문제인지 혹은 내 클라이언트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하나는 하루 중 나를 위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겠다고.
혼자 오랜 시간 무언가를 이끌어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나는 ‘나’라는 사람을 꽤 잘 알고 있다. 함께라는 작은 부담이 필요하다. ‘나’라는 사람을 평가하게 하는 상황이 필요하다.
2018년 12월, 대단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서른은 싱겁게 마무리 중이었다. 여느 때보다 혼란스럽고 무거웠던 마음을 안고 이끌어간 1년이었는데 남는 것 없이 끝나가고 있었다. 아주 티끌만큼의 결과물이 없었다. 허탈했다.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을 켰다. 한 해를 잘 보낸 이들을 피드를 부러워하며 내려보던 중, #염려하지않는글쓰기 모임 글을 보았다. ‘아무 염려 없이, 누구의 평가도 검열도 없이,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이 문장을 보니 수습하지 못한 채 펼쳐둔 나의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재촉 없이 천천히 나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메시지를 보냈고 그렇게 1년이란 시간 동안 모임에 함께했다.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무언가를 쓰고 있다. 무엇을 써 내렸다 지우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안정감이 들었다. 날 위해 내어 준 시간이 아닐 텐데도 시간을 내어 옆에 있어준다는 것이 큰 격려가 되었다. ‘너도 무언가 쓸 수 있을 거야’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시간을 내어 보내는 것에 익숙해져야 했다. 내 시간을 낸다는 것이 익숙치 않으니 무엇을 쓰건 일단 써 내려갔다. 지난 여행의 일기를 모아보기도 했고, 스쳐가는 생각들을 써보기도 했고 가끔은 마무리하지 못한 회사일을 가져와 처리하기도 했다.
내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질 때 즈음 무엇을 쓰는지 고민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조금이나마 모아지는 이야기를 가지고 글을 써내려 갈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혼자이면서도 혼자이고 싶지 않은,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은 것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여전히 나의 시간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툭 떼어 놓을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실천을 위한 노오력을 위한 마음도 생겼다. 나의 ‘염려하지 않는 글쓰기’는 나 혼자는 무서우니까, 용기 나지 않으니까 다른 건 잘 써도 용기와 실천이라는 것을 잘 쓰지 못하는 내가 잘 쓰기 위한 또 다른 씀씀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