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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Mar 26. 2018

간결할수록 아름답다

미니멀리즘과 사진

(왼쪽) w.stdl.rs-01, 90 x 70cm,  2015 (오른쪽)w.ttm-03, 90 x 70cm, 2015

조정란’s Choice / 김도균


호흡을 멈추게 하는 순간

짧은 순간 숨을 멈추게 만든 사진을 마주했던 기억이 있다. 모든 복잡한 요소들은 사라지고 가장 단순한 선으로만 구성된 사진은 차분하고 간결했다. 색채마저도 숨을 죽인 회색톤 화면에는 사물의 본질만 남아있었다. 기하학적인 선들만 남겨진 김도균의 <W>시리즈가 그러했다. 수평, 수직에 엄격하며 모서리에 집중한 그의 작품에서는, 호흡을 잠시 멈춘 선택의 순간 작가가 마지막 셔터를 누르는 그 순간이 연상된다. 또한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화면을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표면으로 만들어낸 <P>시리즈를 통해 김도균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 ‘이게 뭐지?‘하는 의문을 품고, 가까이 또는 멀리 몇 번을 오가며 들여다본 후에야 깨닫는다. 세상에 드러나는 주체를 위한 부수적인 포장재의 부분이란 것을. 그 또한 주체만큼이나 중요하고 단단하며 아름다운 면을 가졌다는 것을 작가의 시선을 통해 보여준다. 김도균의 작품에는 작가의 주관을 배제함으로써 사물의 고유한 특성을 제시하고자 하는 미니멀리즘의 특성과 함께, 자신이 나고 자라온 곳에서 물든 잔잔한 감성이 배어있다. 

- 누크갤러리 디렉터 조정란 - 




김도균  ‘도시건축’을 모티프로 해서 현대 건축이 가지고 있는 추상적 아름다움을 엄격하고 미니멀한 방법으로 제시한다. 건축 사진이기보다는 기하추상, 혹은 색면 추상에 가까운 회화적 화면을 구성해 보여주고 있다.  서울예술대학교 사진과를 졸업한 후 독일의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마이스터쉴러(토마스 루프)와 아카데미브리프(크리스토퍼 윌리암스)를 취득했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 16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다수의 기획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www.kdkkdk.com


조정란 누크갤러리 디렉터. 2013년부터 김도균의 <74cm> 전시를 비롯해 20여회의 2인전을 기획 전시하였다. 가능성 있는 작가들의 평면작업과 입체작업, 미디어 설치 등을 함께 아우르는 2인전 기획을 통해, 각 전시마다 주어진 공간 안에서 정해진 전시 콘셉트 아래 전혀 다른 매체의 작업이 뒤섞이며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공간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다.


Acne Studios ⓒ Viviane Sassen

이여운’s Choice / 비비안 사센


초현실적 미니멀리즘

뉴욕에서 길을 걷다 공사현장 가림막에서 마주한 ‘Acne Studios’ 포스터는 패션화보라기보다는 오히려 현대미술 작품처럼 보였다. 초록과 노랑의 컬러 블록 배경과 대비되는, 온몸을 흰색으로 칠한 모델의 검은 머리카락과 붉은 입술이 상상력을 자극했고, 폭발하는 감정과 에너지를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비비안 사센은 장식미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패션화보를 오히려 단순하고 간결한 방식으로  연출하여 특유의 감각적인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옷보다는 이미지 제작에 흥미를 느껴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지난 20여 년 동안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발전시켜오고 있다.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신비로움을 제시하는 그녀의 작업은 초현실적이며, 동시에 미니멀리즘적이다. 불필요한 요소들을 최소화하여 간결한 실루엣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색을 사용함으로써 대상의 본질만을 표현하는 작업은 사진이라기보다는 회화 혹은 콜라주 방식을 닮아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 대림문화재단 큐레이터 이여운 - 




Viviane Sassen  네덜란드 출신 사진가. 아른헴 예술학교와 위트레흐트 예술학교에서 패션 디자인과 사진을 전공한 뒤, 아른헴 아틀리에에서 파인아트 석사과정을 마쳤다. 인체를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한다. 2017년 시카고 현대사진 박물관에서 열린 전시 <Umbra> 포함, 30여 차례의 개인전과 60여 차례의 단체전을 개최했다. www.vivianesassen.com


이여운 큐레이터. 대림문화재단(대림미술관, 디뮤지엄, 구슬모아당구장) 전시 팀장이다. 그동안 <MVRDV>, <Color Your Life-색, 다른 공간 이야기>, <Youth-청춘의 열병, 그 못다 한 이야기>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Snow No. 38 & 39, 57 x 90 cm, Digital print on rag paper, 2002

김이신’s Choice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계산되지 않은 질서

요즘처럼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간혹 후배들의 기사에서 현란한 미사여구가 거슬려 “단순함이 미덕일 때도 있는 법”이라고 마지막 글자에 힘을 주어 조언한 적도 있지만, 사실 최근 몇 달 간 사무실로 배달된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스트’로 살기를 권고하는 수많은 신간에서 우리가 얼마나 남보다 더 많이 소유하는 데만 집중했는지 확인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예술도 그렇다. 특히 현대미술은 괴랄한 매체와 넘치는 장치, 과분한 기술의 집합체인 경우가 많다. 예술이라는 것이 본래 대중을 불편하게 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이끌어내는 데 의미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불편’, ‘갈등’, ‘경험’이 지속될수록 사람들은 저 반대편 미니멀리즘 예술에 기웃댈 수밖에 없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진은 그 반대편에 자리한 최고의 작품 중 하나다. 그의 작품 속 눈, 새, 나무, 그림자는 현대미술의 정점이 늘 그러하듯 어떤 면에선 기호처럼, 부호처럼, 때로는 암호처럼 읽힌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사진을 미니멀리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음은, 그것을 해석하는 데 어떤 갈등도, 필요 이상의 에너지도 소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사진을 단순히 반복성, 단순성, 간결성으로 정리하는 건 무리가 있다. 질서정연하지만 그것이 완벽주의자의 것 같지 않은, 계산되지 않은 인간적인 질서. 그것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미학이고 그의 조형이다.    - <아트나우> 편집장 김이신 -




Abbas Kiarostami  이란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이자 사진가, 시인이다. 테헤란 예술대학교를 졸업한 뒤 그래픽디자이너, 북 일러스트레이터, 광고제작자로 일했다. 1969년 영화감독의 길로 들어선 그는 1999년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특별상을 받았다. 40년 넘게 사진작업을 이어온 그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과 빅토리아&알버트박물관 등에서 전시된 바 있다. 최소한의 미학을 통해 인간과 자연, 그리고 삶의 문제를 끌어안으며 따뜻한 휴머니즘을 전하는 작업을 한다.


김이신 <아트나우> 편집장. 매일경제신문사 매거진 <시티라이프>,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마담휘가로>를 거쳐 현재 <노블레스> 피처 디렉터와 <아트나우> 편집장을 맡고 있다. 2012년 국내 최초 하이엔드 아트매거진 <아트나우>를 창간한 후 국내 아트 컬렉터들에게 현대미술작가 및 글로벌 아트 이슈를 쉽고 친근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왼쪽) Grieshaber - Dora - diptych (오른쪽) 7. E. K. VelvetVelox - 1914

버지니아 헤커트’s Choice / 앨리슨 로시터


빛으로 그리지 않은 그림

앨리슨 로시터는 카메라와 필름을 사용하지 않는 사진가다. 그렇다고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빛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빛에 민감한 인화지와 화학약품만을 필요로 할 뿐이다. 최소한의 개입으로 탄생된 그녀의 작업은 구체적인 형체를 알 수 없어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는 절제된 표현으로 대상의 본질을 탐구하는 미니멀리즘 개념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엘리슨 로시터의 작업은 2007년부터 시작됐다. 작업의 핵심은 유효 기간이 지난 젤라틴 실버 인화지를 암실에서 화학 처리하는 것이다. 주로 1900년대 이후 상업적인 목적으로 생산된 인화지를 사용했다. 그중에는 19세기에 제작된 희귀한 것들도 있었다. 작업 과정은 간단하다. 인화지를 현상 용액에 담그거나, 현상 용액을 인화지 위에 부은 뒤 수세와 정착 과정을 진행하면 된다. 그녀의 작업은 라슬로 모홀리 나기의 사진과 모리스 루이스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오랜 시간 인화지 위에 축적되어 있던 곰팡이와 지문, 빛 샘 현상이 드러난 결과다. 이는 앨리슨 로시터가 죽어 있던 인화지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것과 다름없다.   - 폴 게티 미술관 큐레이터 버지니아 헤커트(Virginia Heckert) - 




Alison Rossiter  캐나다 밴프 예술대학과 뉴욕 로체스터 공과대학을 졸업했다. 카메라 없는 사진 작업을 한다. 1981년 캐나다 예술진흥원 ‘Photography Short Term Grant’를 수상했으며, 총 20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현재 그녀의 작업은 LA 폴 게티 미술관, 시카고 현대사진 박물관, 뉴욕 휘트니미술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alisonrossiter.com


Virginia Heckert 큐레이터. 미국 로스앤젤레스 폴 게티 미술관(J. Paul Getty Museum) 사진 분과 책임 큐레이터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독일 사진과 20세기 후반의 미국 사진, 그리고 현대사진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지그마르 폴케(Sigmar Polke),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 베허 부부(Bernd and Hilla Becher), 어빙 펜(Irving Penn) 등의 전시를 기획했다. 저서로는 <Light, Paper, Process: Reinventing Photography>(2015), <Irving Penn: Small Trades>(2009) 등이 있다.


(왼쪽) Chair, 130x160cm, C-Print, 2010 (오른쪽) Wheel, 130x160cm, C-Print, 2011

신현빈’s Choice / 원서용


압축된 현실

원서용 작가의 작업을 미니멀리즘이라는 하나의 사조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압축된 현실> 연작에는 미니멀리즘의 요소가 충분히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는 그 부분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일련의 작업들에는 주제가 되는 오브제는 물론, 오브제가 위치한 공간 전체의 스테이징이 그대로 담겨 있다. 흥미로운 부분은 의미의 전복과 혼합이다. 일상적인 오브제를 그대로 담았다는 면에서는 분명 미니멀리즘이다. 그러나 그 오브제가 스튜디오라는 특수한 공간에 놓이고, 와이어에 매달리거나 조명을 받는 대상이 되며 생겨나는 새로운 의미는 미니멀리즘이 지양했던 부분이다. 그러면서도 오브제만을 담는 것을 넘어, 오브제가 놓인 상황 자체를 있는 그대로 사진 속에 담아내는 것을 통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측면에서는 다시금 미니멀리즘과 맞닿게 된다. 이러한 복합적인 면이 원서용 작가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되고, 또 앞으로의 작업을 더욱 기대하게 하는 이유다.   - 배우 신현빈 -




원서용  일상에서 사용하는 오브제를 회화나 설치, 조소의 요소와 조합해 한 장의 사진으로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예술대학과 상명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영국 런던 UCL Slade School of Fine Art에서 미디어를 공부했다. 2014년 두바이에서 열렸던 ‘Shortlist of International Emerging Artist Award’에서 신진작가로 선발된 바 있다. www.seoyeoung.com


신현빈 배우.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학사를 졸업했다. 2010년 영화 <방가? 방가!>로 데뷔했고, 이듬해인 2011년 <제4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영화 <어떤살인>과 <공조>, 드라마 <무사 백동수>, <추리의 여왕>, <아르곤> 등에 출연했다.

[2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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