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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Apr 05. 2018

슬기로운 사진생활

신진 작가와 대담을 나누다 생긴 사소한 궁금증

신진 작가와 대담을 나누다 생긴 사소한 궁금증이 있다. 사진학과의 커리큘럼 문제, 신진 작가 지원 등등.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대학 교수와 강사, 기획자, 큐레이터들에게 물었다. 슬기로운 사진생활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보내온 그들의 솔직한 의견.



등록금과 교육 환경은 반비례?

얼마 전 예술대학생등록금대책위원회와 반값등록금운동본부는 “같은 학교라도 예술계열 학생들은 타전공 학생들보다 등록금을 32만8천 원∼165만 원 더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의견1) 등록금은 학교 관할이다. 사진학과는 학교로부터 예산을 받아 운영되는데, 실제로 예산이 늘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취업률에 따라 차등 배분하기 때문이다. 취업률이 저조한 사진과는 한정된 예산으로 기자재를 사야 한다. 문제는 디지털 장비가 너무 비싸다는 것. 게다가 디지털은 몇 년마다 업그레이드를 해줘야 한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기자재 관리가 잘 안 된다는 것이다. 해외 대학 사진학과는 새로 구입한 기자재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체계적인 매뉴얼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테크니션을 별도로 두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학생들은 조교나 테크니션으로부터 기자재 사용 방법을 배운다. 이를 건너뛰면 기자재 대여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수업 시간 때 선생 혹은 조교가 기자재 사용법을 상세하게 가르쳐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러니 금방 망가질 수밖에 없다. 

의견2) 사진학과의 등록금이 산정되는 근거는 교수들도 모른다. 해외 대학과 비교할 때 국내 교육 환경이 열악한 것은 사실이다. 몇 년째 등록금이 동결 중이다. 교육부가 등록금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측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등록금 동결은 곧 물가 상승분에 해당하는 정부 지원이 있어야 하거나 대학이 돈벌이를 해야 한다는 뜻인데, 그런 이유로 교육환경은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



필드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사진가를 강사로 초빙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느 학교는 유명 작가들을 교수와 강사로 모셔왔는데, 어느 학교는 특강에서조차 만나보기 어렵다.


의견1) A학교의 경우 외부 강사가 50% 정도 강의를 담당하고 있다. 대부분이 필드에서 활동하고 있다. 1년에 20여 회 정도 해외 유명 작가와 현장 실무진, 국내 큐레이터 및 작가들이 특강을 진행하고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의견2) 실제로 대부분의 강사들이 맡는 건 귀찮거나 하찮은 수업이다. 필드에서 활동 중인 강사가 중요 과목을 어느 정도는 전담해야 서로 경쟁하면서 수업의 질이 높아질 것 아닌가. 그런 점이 안타깝다.



너무 오래된 커리큘럼. 동시대 흐름을 따라가고 있나?

사진학과 학생들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커리큘럼이 똑같다.”고 말한다. 커리큘럼은 왜 시대 흐름에 맞춰 바뀌지 못하는 것일까?


의견1) A대학 사진학과의 경우 시대에 맞춰 커리큘럼에 변화를 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제한된 강좌수다. 이는 타 학과와의 융합으로 풀고 있다. 현실적으로 사진교육은 현대미술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해외 대학과의 교류, 해외교수 초빙을 통해 현대 예술의 첨단을 지향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글로벌 교육 시대에 맞춰 영어 강좌도 진행하고 있다.

의견2) 우리나라 사진교육은 시작부터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사진교육이 시작될 당시 강사 대부분은 일본 학원에서 공부하고 왔던 사람들이다. 그것도 아주 짧은 기간 동안. 1980년대 후반부터 사진학과가 늘어났고, 유학 1세대들이 돌아왔다. 그런데 유학 1세대 대부분이 대학원 유학 출신이다. 학부 유학이 아닌 까닭에 정작 사진의 기초를 가져오지 못했다. 체계적으로 공부하려면 학부부터 공부해야 하는데 말이다. 지금 상황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석사과정만으로 사진을 심도 있게 공부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동시대 사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까. 예전에 배운 걸 지금 어린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게 과연 현실적인 것일까. 또, 전공 용어도 잘 모르는데 영어로 수업하는 게 무슨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영어 강좌를 늘릴 것이 아니라, 좋은 학문을 잘 배워서 잘 가르치는 선생들이 많아져야 하는 게 먼저다. 



취업과 예술,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사진학과를 나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사진학과는 예술 할 사람, 즉 전업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만 지원해야 할까?


현실적으로 취업이 어렵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사진학과는 사진 관련 기초학문을 가르치는 게 맞다. 사실 이것도 인터넷과 사진 기술이 좋아져서 혼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하다. 만약 작가가 되고 싶다면 대학원에서 심화 과정을 공부하면 된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경영대나 법대를 졸업한 다음 사진과로 진학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경쟁력이 더 있을 수 있다. 사진학과는 아트스쿨 개념으로 가는 것이 맞다. 취업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공부와 작업을 하는 것이 우리나라 사진계의 발전을 위해서 더 낫다. 취업만 생각하면 더 암울하다. 산업 기반이 없는데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을까.



사진학과 통폐합에 장밋빛 미래가 있을까?

여기 저기서 사진학과가 다른 과와 합쳐진다고 난리다. 사진을 배웠는데, 다른 과에서 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의견1) 사진학과는 첨단 학문 분야로 거듭 발전하여 각광 받고 있다. 소프트웨어 강화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타 전공과 협업하는 뉴미디어아트 대학원을 신설할 예정인 대학도 있다. 사진학과는 통폐합이 아니라 그 영역을 디지털미디어 분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드론 과정을 준비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의견2) 분야가 확대되면 오히려 사진의 입지는 줄어든다. 예를 들어, 인터랙티브(Interactive) 예술에서 사진 잘 찍고, 포토샵 잘 하는 게 과연 도움이 될까. 사진학과와 프로그래밍이 결합된 분야에서 사진학과 출신이 코딩에서 강점을 보일 수 있을까. 냉정하게 말해서 낙관적일 수 없다고 본다.



신진 작가 발굴에 대한 사명감, 꼭 가져야 할까?

많은 미술계 관계자들이 앞으로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정말일까?


의견1) 모두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진(젊은) 작가가 잘 성장하는 것이 미술계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지만, 큐레이터 성향 상 다른 지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큐레이터는 아무래도 신진(젊은) 작가에게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 이 큐레이터에게 신진(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관심을 가지라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폭력일 수 있다. 대안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기획자들에게 왜 근현대미술 작가들에게 관심이 없냐고 물어볼 수 없지 않은가.

의견2) 대부분의 상업 갤러리는 신진 작가에 대한 관심이나 사명감과는 거리가 먼 게 현실이다. 그들은 작가를 키우는 것보다 ‘판매’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 20~30대 작가들이 계속 작업을 한다는 보장도 없다. 작업을 구매했는데 시간이 흘러 종잇조각이 된다면,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할까. 어느 정도 영향력 있는 40대 이상 작가들의 작업에 집중하는 게 안전하다고 본다.



‘작가의 개성’과 ‘현대미술의 문법’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작가 작업이 현대미술계 안에서 주목 받을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다.


현대미술 문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이 ‘인기 있을 작품’을 의미하진 않는다. 미술은 항상 그 시대를 반영한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그 시대에 맞는 언어라는 것이 존재한다. 동시대 미술의 여러 문법들은 동시대 정신을 충실히 담아내는 것이다.



큐레이터는 작가에게 어느 정도까지 조언해야 할까?

가능성 측면에서, 이 작업은 ‘아니다’라고 판단했을 때 큐레이터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편일까 아니면 방임하는 편일까?


작품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편이 옳다. 신진(젊은) 작가들의 가장 큰 잘못된 판단 중 하나는 작가가 오롯이 존재하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작가의 생각은 혼자 방에 틀어박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고, 책도 읽고, 일도 하면서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큐레이터로서 충분히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일종의 교류다. 단! 큐레이터가 어떤 것을 제안했을 때 작가가 무조건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큐레이터가 법은 아니다. 작가가 듣고 선택하면 된다. 



학연은 허상일까, 실제일까?

어디에서나 학연은 존재한다. 서로 끌어주고 밀어준다. 사진계를 비롯한 미술 현장에서도 그런 학연이 당연시되어야 할까.


현장에 있다 보면 여러 가지 잘못된 점들을 몸소 느끼게 된다. ‘학연’이 대표적이다. 지금은 많이 없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서울대, 홍대, 한예종 카르텔이 있다. 그런데 그 카르텔이라는 것이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프닝 뒤풀이에 가면 자연스럽게 선배, 후배 무리가 이뤄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렇게 그들끼리 어울리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 그 대학을 나오지 못한 사람은 자연스럽게 소외되게 된다. 큐레이터 세계도 마찬가지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다. 



공모전 안과 밖의 온도 차이는?

외부에서 바라본 공모전과 내부에서 바라본 공모전은 너무 다르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백퍼센트 객관적이고 공정할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의견1) 외부에서 공모전을 볼 때 이 작가가 왜 그 공모전에 선정된 것인지 미심쩍었던 경우가 있었다. 심사위원이나 심사과정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내부에서 공모전을 지켜보니 합리적인 과정으로 진행된다는 걸 알게 됐다. 가령 심사위원들 각자가 나름의 점수를 매기고, 그 합계를 통해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대상자가 선정되는 경우 심사위원 한 명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물론 토론이 이뤄지는 최종 심사의 경우 좀 더 타당한 근거를 든 심사위원의 의견이 관철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심사위원의 개인적인 친분 때문이라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공모전은 심사위원 각자의 미적 취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인물을 심사위원으로 선정하는지가 중요하다. 단, 대안공간이나 신생공간에서 공모전을 진행하는 경우 심사위원의 권위가 크게 필요하지 않다면, 공간의 디렉터나 큐레이터들이 자기 공간 성격에 맞는 작가를 뽑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의견2) 학연과 지연, 친분 관계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잘 안다는 것이 꼭 개인적인 친분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작가 작업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작업 내용, 작가로서의 자세, 삶의 태도 등이 다른 심사위원들에게 잘 전달된다면 분명 심사과정에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의견3) 서울대, 홍대, 한예종이 미술계 주류 아닌가. 여기 출신들이 갤러리 관장, 유명 작가로 활동하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공모전 지원 전, 자기 작업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뜻이다. 동점이 발생할 경우 심사위원이 자신과 친분관계가 있는 사람을 뽑아줄 수 있는 건 전 세계 어디나 다 똑같다. 또한, 한 명 내정해놓고 나머지를 들러리 세우는 것이 비단 미술 공모전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면접 뒤 지원자들끼리 이야기하다 보면 자신이 희망을 가져도 될지 아닐지 금세 파악할 수 있다.



새로운 작가 발굴일까 아니면 숟가락 얹기일까?

의외로 유명 작가가 공모전 당선 목록에 자주 등장한다. 갤러리, 미술 관련 협회 등에서 공모전을 개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모전의 장점은 참여자의 자발성이 작용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적극적인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보이는 부분이 강조되다 보니 기존에 알지 못했던 작가와 작품을 비교할 경우 그 진정성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 공간마다 공모전을 진행하는 목적이 다를 것이다. 대안 공간이나 신생 공간의 경우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의미가 클 것이다. 반면, 유명하거나 전통이 있는 공모전은 유명한 작가에게 권위를 더 부여해주고, 자신들도 그 권위를 함께 누리기 위해서 진행하기도 한다.



좋은 작품이란 무엇일까?

공모전에서 심사위원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 따로 있나?


작업 개념과 그것을 구현한 작품이 일치하는 게 좋은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소비를 비판한다고 작업 개념을 썼는데, 작품이 소비를 제대로 비틀지 못하고 현상이나 표면을 드러내는 정도라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공모 신청서도 성실하고 꼼꼼하게 작성해야 한다. 실현되지 않은 작업보다는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을 구현한 후에 공모전에 제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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