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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Jul 08. 2019

현장의 재구성

김진영, 남지우, 이병희

<Set-up>


영화 스태프에게 바치는 헌사

김진영


영화 스틸 사진가 김진영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일 것이다. <곡성>, <이태원 살인사건>, <인간중독>, <잉투기> 등의 작품에 참여했으며, 특히 홍상수 감독의 영화 스틸사진을 꾸준히 찍는다. 그는 크랭크인부터 크랭크업까지 영화 현장의 모든 것을 기록하는 것은 물론, 그 이면의 것을 담아내는 개인작업도 한다. 그 결과물이 바로 <Set-up> 시리즈다. 김진영의 입봉작인 류승완 감독의 <짝패>(2006)부터 지금까지, 40여 편의 영화현장에서 촬영한 사진을 엮었다. 흔히 말하는 ‘영화판’에서 탄생한 사진이라고 하면 감독과 배우의 일거수일투족을 조명할 것 같지만,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현장의 ‘언성 히어로’ 영화 스태프다. 말 그대로 영화 스태프는 ‘숨은 공로자’다. 영화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감독과 배우가 받지만, 고통의 시간을 마다하지 않는 스태프가 없다면 결코 훌륭한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의 가치는 평가절하되는 것이 현실이다. 어쩌면 ‘마케팅 스태프’로 분류되는 영화 스틸 사진가의 시선이 스태프에게 향한 것은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Set-up> 시리즈는 짧으면 5분 길면 1시간 정도 되는, 쇼트(Shot)와 쇼트, 그리고 신(Scene)과 신이 전환되는 시간에 촬영된 사진들이다. 이 시간은 스태프가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이다. 셋업을 위해 누구보다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인다. 그들의 분주함은 영화의 필요조건이다. 흥미롭게도 김진영은 스태프의 상기된 표정을 부각하지 않는다. 대신 어둠 속 스태프의 실루엣, 조명이 자아내는 몽환적 분위기, 감독의 사인을 기다리는 보조출연자들의 긴장감과 나른함이 공존하는 순간 등에 집중한다. 형식적인 것에서 탈피하기 위함이다. 만약 스태프를 직접적으로 찍었다면, 작업은 여느 영화 스틸사진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보는 이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에 그의 사진이 강렬한 공명을 주는 것일 테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김진영 역시 ‘언성 히어로’다. 영화현장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며 찍은, 직접적인 정보 없는 사진이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왼쪽) 두 도시 주물이야기, 중구 입정동 (오른쪽) 현대무용가 이인규, 강원도 평창
(왼쪽) 살풀이, 경기창작센터 (오른쪽) 배우 조아라, 남영동


퍼포밍 아트로부터

남지우


스스로를 ‘비주류 취급을 받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남지우는 ‘이동형 연극’과 ‘장소 특정적 연극’을 집중적으로 촬영한다. 고전적 의미의 연극이 아닌, 다양한 방식의 ‘퍼포밍 아트’ 작업을 한다는 뜻이다. 리허설 때의 스틸촬영보다는, 공연 중이나 마지막 ‘런 스루’ 때 스트레이트하게 사진을 찍는다. ‘퍼포밍 아트’ 작업을 하다보면, 배우, 연출가와의 관계가 돈독해진다고 그는 말한다. 리허설 이전부터 모든 과정을 함께 준비하고 고민하기 때문이다. 절로 동료애가 생길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덕분에 개인작업도 보다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다. 공연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손을 사진에 담기도 하고, 공연이 끝난 뒤의 흔적을 기록하기도 하며, 무대 뒤편에서 배우들을 찍다가 생각이 통하는 이를 만나면 따로 협업하기도 한다. 이러한 개인 작업은 한 연출가가 공연 기록 외에도 하고 싶은 작업을 더 해보라고 권유하면서 시작됐다. 을지로 입정동 주물공장 사장님들의 일상을 그려내기 위해 손과 도구를 찍어 전시를 진행했던 <두 도시 주물이야기>, 프랑스 부르고뉴 <비디오댄스 아트 페스티벌>에 출품했던 현대 무용가와의 작업 등이 대표적인 예다. 남지우 작업의 핵심은 촬영 시 피사체를 파인더 안에 가두지 않는 것. 파인더에서 벗어나면 오감이 예민해져 배우들의 소리, 몸짓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일까. 공연사진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사진들을 보면 자유분방함 속에서도 피사체의 짙은 감정 표현이 느껴진다. 이는 배우를 온전히 느끼고 바라보는 행위 때문 아닐까. 또한 사진이 수단이나 목적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싶다.


일본 오사카 공연에서 무대 위 오르기 전 옷 매무새를 살펴보는 가수 이승환
(왼쪽) 대기실에서 손에 셋 리스트를 메모중인 밴드 피아의 보컬 옥요한 (오른쪽) 공연 전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몽니 보컬 김신의


뮤지션의 감정선을 따라

이병희


이병희(닉네임 Chester)는 서태지와 이승환의 전속 사진가로 유명하다. 얼마 전에는 ‘2018 평양예술단’ 사진가로 선정됐을 정도로 이제는 마니아를 넘어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에게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한 인터뷰에 의하면, 그는 초등학교 교사 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시작한 취미가 업이 됐다고 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들으며 사진을 찍으니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공연사진의 매력이자 어려운 점은 주어진 상황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재해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뮤지션이 음악을 해석하는 자리인 공연장에서 그 공연을 현장보다 더 현장감 넘치게, 그리고 사진가만의 개성을 더해 다시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공연장이라는 환경은 어쩔 수 없이 비슷하고, 게다가 한 명의 뮤지션을 반복해서 촬영하다 보면 색다른 사진을 찍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타성에 젖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일까. 이병희는 무대뿐만 아니라 백스테이지에서도 작업을 진행한다. 에너지 가득한 현장과는 달리, 백스테이지는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공연을 앞둔 뮤지션은 각자만의 시간을 통해 마음을 다진다. 그래서일까. 사진을 보면 뮤지션의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어깨선이 살짝 올라간 뒷모습에선 긴장감이, 꽉 쥔 주먹에선 결연함이, 힘없이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에선 왠지 모를 공허함이 느껴진다. 백스테이지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 않다. 하지만 금단의 공간을 담은 이병희의 사진 덕분에 뮤지션과 교감하는 듯한 기분이다. 그렇다면 사진가에겐 어땠을까. 그도 뮤지션과 같은 감정선을 공유했을까. 불현듯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진가가 외롭게 느껴진다. [20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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