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조예은
지난 2월 오픈한 펜디의 국내 첫 플래그십 부티크 ‘팔라초 펜디 서울’. 이곳을 정의하는 한마디는 ‘로마의 재해석’이다. 파사드를 오래전 로마의 패턴으로 미니멀하게 표현했기 때문. 특히 눈길을 끄는 건 기하학적 대각선과 건물 모서리로 수렴하는 듯한 유리창의 조화다. 그 연장선에 인테리어도 있다. 로마 교회가 떠오르는 아라베스카토 발리, 파타고니아 블랙 & 화이트, 블루 로마, 크리스털 블루 대리석을 각 층에 배치한 효과일 터. 이로 인해 부티크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로마의 하루가 시작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소설가 조예은과 사진작가 김도영에게 이러한 팔라초 펜디 서울을 재해석해달라고 부탁했다. 본디 펜디는 가죽 제품으로 유명한 브랜드지만, 이들이 주목한 건 부티크를 수놓은 ‘대리석’이다. 조예은은 ‘시대를 아우르는 펜디 고유의 감각과 장인정신’에 영감을 받아 소설을 작성했고, 김도영은 대리석 프린트를 오브제로 활용해 한 장의 사진 안에 부티크 각 층의 공간성을 응축했다.
시대를 아우르는 펜디 고유의 감각과 장인정신에 영감을 받은 조예은의 소설 ‘무늬 너머에’
왜 하필 돌이었냐고 물으면, 그저 무늬가 좋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돌은 사람 얼굴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지나온 세월을 담고 있으며, 그것을 저마다의 무늬로 나타낸다. 해변에 널린 자갈이라 할지라도 보통의 인간 수명을 훌쩍 뛰어넘는 시간을 거친 암석에서 떨어져 나왔을지 모르는 일이고, 지금 당신이 밟고 선 대리석 역시 이런 혈관과 같은 무늬를 만들어내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과 압력을 찾아내야 했을 것이다. 이탈리아 카라라 지역 석산에서 채굴한 대리석이 비행기로 20시간 넘게 걸리는 서울의 건물 바닥을 장식하는 과정 또한 어쩌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여정이겠지.
나는 지문이 닿은 손가락으로 돌의 무늬를 훑을 때마다 낯선 이의 이목구비를 더듬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어떤 굴곡은 눈썹 같고, 어떤 파임은 귓바퀴 같다. 돌을 수집하고 조각한다는 건 나에겐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덮은 베일을 걷어내는 일. 한평생을 이렇게 살아온 내가 15년 전 해변에서 발견한 발광석에 홀리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일 테다. 하지만 문득 내가 그 돌을 발견한 게 아니라 그 돌이 나를 찾아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지금 당신이 만지작거리고 있는 그 목걸이. 얇은 은줄에 매달린 원석의 무늬를 응시할 때마다 당신도 느끼지 않는지.
발광석을 주웠을 때 나는 깊게 절망한 상태였다. 기계가 못 하는 게 없는 세상이다. 사포질이나 톱질조차 사람의 손길보다 기계가 정확하다. 인간의 사포질은 균일할 수 없다. 애초에 우리의 손바닥이 마냥 매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손바닥은 다 다른 둔덕을 가지고 있고, 다 다른 계곡을 이루며, 그 안쪽에 자리한 뼈 역시 저마다 모양이 있다. 모양과 높낮이가 이토록 다르니 아무리 같은 힘으로 사포를 문지른다 한들 평평해질 리가 없다. 수공예품이란 만드는 자의 미숙함이 조화롭게 배어들었을 때 더욱 가치 있는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운치는 오늘날의 미의식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여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던 늦은 5월 어느 날, 나는 작업실 앞 해안가를 거닐며 이 짓도 이제 끝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늘은 아직 붉었지만 해는 이미 수평선을 넘어 사라진 후였다. 빛이 사라져 바다와 하늘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어둠이 내렸을 때 나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한 발 내디뎠다. 돌아서려던 찰나, 막 파도에 밀려온 손바닥만 한 돌 하나가 어둠을 뚫고서 기이하게 빛을 발했다. 나는 그 앞으로 다가갔다. 가까이서 바라본 돌의 표면은 지금껏 본 적 없는 기묘한 무늬를 띠고 있었는데, 검푸른 암석 전체를 아지랑이 같은 흰 무늬가 감싸고 있었다. 소용돌이와 물결을 넘나드는 모양들은 긴밀히 연결된 것처럼 보였다. 가장 신기한 점은 방금까지 물가에 버려져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따스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돌을 작업실로 가져왔다. 그리고 그 어떤 가공도 하지 않은 채 오래도록 관찰했다. 돌의 무늬는 볼 때마다 새로웠고, 나는 매번 다른 얼굴을 마주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무늬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그뿐 아니라 점점 나를 닮아가고 있었다. 느리지만 분명하게. 대기권의 구름처럼 서서히 이동하며 새로운 무늬를 만들어냈다. 내가 수십, 수백 번을 관찰했음에도 매번 이전의 얼굴을 발견할 수 없었던 이유다.
나는 결국 다른 직업을 찾았지만, 돌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암석은 늘 은은히 빛을 발하며 돌을 다듬는 내 모습을 비췄다. 내가 슬플 땐 무늬도 일그러졌고, 내가 기쁠 땐 무늬 역시 시원한 곡선을 그렸다. 행성을 닮은 그 돌은 어떨 때는 내 곁을 맴도는 위성 같았고, 또 언젠가는 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태양 같았다. 그리고 내가 하루하루 바래가듯이 암석 역시 온기와 빛을 잃어갔다.
태풍 예보가 있던 어느 날이었다. 작업실에 있던 발광석을 집으로 옮기는데 유난히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갑작스레 내리기 시작한 폭우에 발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발광석은 품에서 벗어나 저 앞으로 날아갔고, 나는 빗물을 뒤집어쓴 채 완만한 내리막길을 굴렀다.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서 더는 빛나지 않는 돌을 향해 나아갔다. 타원형의 돌은 얇은 도자기처럼 산산이 조각난 채였다.
처참히 조각난 나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허리를 숙여 파편을 하나하나 줍기 시작했다. 셔츠에 파편을 모두 모은 나는 경이로운 장면을 마주했다. 부서져 작아진 조각들이 하나하나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늬는 이전보다 생동감 있게 움직였고, 차가운 빗물을 뚫고 파편의 열기가 손바닥 전체에 퍼져나갔다. 따스하다 못해 뜨겁기까지 한 열기. 나는 흥분한 채로 작업실로 돌아가 돌 파편을 다듬었다. 내 얼굴만을 담던 돌은 부서졌지만, 그로 인해 새로 태어난 작은 조각들은 더 많은 이의 얼굴을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왁스를 깎아 만든 고정 발에 파편을 세팅하고, 오래도록 사포질을 했다. 수십 년간 다진 손 기술로 정교함을 더하고 인내심으로 광택을 쌓아 올렸다. 균일하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나의 분신들. 작품이 된 파편은 이제 작업실을 벗어나 내가 가보지 않은 먼 곳까지 간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들의 일부가 되어 그들을 무늬로 담는다.
그러므로 당신의 얇은 은줄에 매달린 그 돌은 지금껏 내가 더듬은 얼굴 중 가장 기이하고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누구든 될 수 있고 누구든 담을 수 있는, 하지만 유일무이한 무늬. 바로 당신.
[2023.05]
"펜디 매장의 대리석은 각 층별 분위기를 형성하는 중요한 인테리어 포인트예요. 대리석을 프린트해 만든 오브제는 단단한 바닥을 연약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매장 각 층의 성격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_ 사진작가 김도영
사진작가 김도영(@do.young_22 , www.doyoungkim.org) & 소설가 조예은 (@yyyeae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