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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Jul 09. 2019

방랑자의 노래

임나리


임나리 개인전 'Your Layover'는 '정주하지만 언젠가 이주해야 하는,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불안이 내재한 상태에서 자신의 고유 생활 방식을 드러내고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낸 전시다. 다시 말해, 익숙함과 이질감 사이를 오가는 동안 품게 되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끌어내는 데 목적을 둔 여정이라는 뜻이다. 전시는 문화적 차이에서 기인한 애로사항을 털어놓는 이방인의 모습을 포착한 「In Between」과 모국어로 비밀 이야기를 하는 이방인을 기록한 「Your Secret is Safe with Me」, 우리나라에 단기 체류하는 외국인들의 사적인 공간을 담아낸 「Transient」로 구성된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는 최신작인 「Transient」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Transient」는 일견 공통된 무언가를 기록하는 '유형학적 사진'을 표방하는 듯하나, 세심하게 살펴보면 어딘지 모르게 낯선 부분이 있다. 비슷한 대상을 모아놓음으로써 사회·문화적 의미를 도출한다는 거시적인 틀은 유지하되, 칼 같은 수평·수직과 일정한 헤드룸 (Head-room) 등의 요소들은 작업에 적용하지 않은 모양새다. 더불어, 무표정으로 일관한 채 정면을 응시하는 인물들에게서는 왠지 모를 어색함도 묻어난다. 그러나 '서투른 유형학적 사진'으로 인해 낯설게 다가왔던 작업의 첫인상은 이내 '친숙함'으로 전환된다. 흔히 삶이라 불리는, 인간이 무언가를 찾아가는 과정은 결코 완벽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의도처럼 보이는 사진 속 서투른 외적 요소들(구성, 형식 등)이 친숙한 우리의 '미완성 인생'을 암시하는 것만 같다.



또한, 「Transient」 근간을 이루고 있는 '흔들리는 정체성'은 굳이 '이주와 정주'라는 커다란 차원이 아니더라도 우리네 일상에서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친근한 개념이다. 며칠 여행을 다녀왔을 뿐인데 불현듯 생활 반경이 생경하게 다가오는 것, 새로운 애인이 생겼는데 전 애인이 좋아했던 말과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 등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겠다. 이처럼 '정체성 혼란'은 특별한 상황에서만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서투름과 어설픔으로 점철된 평범한 삶 속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덕분에 임나리의 작업과 마주한 사람들의 호기심은 개인적인 것에서 시작해 자연스레 사회적인 것으로 옮겨갈 수 있다. 이는 '서툴다'라는 것이 지금보다 더 나은 것을 알아내고 밝혀내기 위한 밑거름인 것과 진배없음을 의미할 것이다. 

개인적·사회적 이슈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Transient」의 모티브는 '어린 시절 경험한 필리핀으로의 이민'이다. 같은 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문 지역 한가운데 혼자 덩그러니 놓인다는 것은 겪어본 사람만 공감할 수 있는 고통일 것이다. 문제는 어린 나이에 느낀, 이민자로서 겪었던 소외감과 정체성의 혼란이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어졌다는 것. 임나리에게 자신의 뿌리가 있는 한국은 어색함 그 자체였다. 무엇인가를 표현하고자 할 때 머리와 입에서 몇 개의 언어가 엉키는 것은 다반사였고, 몸에 배어있는 필리핀에서의 습관은 한국 생활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다. "어디에서 왔니?"라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TCK(Third Culture Kid,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느라 어느 문화권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가 겪는 전형적인 문제들이었다.





아무리 '혼종'을 시대적 가치로 여기는 세상이라지만, 그 무게감을 견디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을 터. 작업은 그 무게감을 덜어내는 데서 출발한다. 임나리는 비슷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얻는다. 사진 속 인물들은 어린 시절 임나리와 마찬가지로 익숙한 공간을 '잠시' 떠나있는 한국 거주 이방인들이다. 공통적인 속성을 보여주기 위해 '유형학적 방식'을 차용했다는 것과 손 앞에 놓인 오브제가 인물의 고유문화를 상징한다는 것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인물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을 차지한 오브제들이다. 공간에는 곧 떠날 것이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은 한국적인 실내장식과 모국에서 가져온 물건들이 혼재되어 있다. 다양한 요소들이 뒤섞여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표현하기에 제격인 장치들이다. 익숙함과 이질감이, 안정적인 것과 일시적인 것이 교차하는 지점과 과정을 살펴보겠다는 의도도 파악된다. 당연히 '나는 누구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내리지 않는다. 사진 너머의 것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인 듯하다.  

이 나라 저 나라를 방랑하는 자들의 설움과 혼란스러움을 말하는 「Transient」에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우리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속뜻이 숨겨져 있다. 한국은 경제적 차별로 둔갑한 인종차별이 만연한 나라다. 외국인 대상 예능 프로그램만 봐도 알 수 있다. 출연자 대다수가 예쁘고 잘생긴, 부유한 사람들이다. 미디어는 그들의 즐겁고 행복한 모습만 부각한다. 버스와 지하철, 동네 시장에서 마주치는 외국인의 생활은 잘 언급하지 않는다. 이러한 편향된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개개인이 가진 세계관을 바탕으로 서로 마음을 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유연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는 작업이 존재감을 드러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임나리 작업이 존재감 표출을 넘어 사회에 자극을 줄 방법은 무엇일까. 사진이라는 일시적인 매체를 매개로, 일시적으로 만난 작가와 인물이 탄생시킨 이야기를 지속해서 보여주는 것 아닐까 싶다. 다만, 여기에서 사진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분히 제한적이다. 기껏해야 '더 많은 방랑자를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담는 것', 그리고 '직관적인 미디어와 달리 레이어의 간극을 보여줌으로써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 정도일 것이다. 어쩌면 사회에 균열을 내겠다는 지난한 작업의 마지막 퍼즐은 이미 정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귀결되는 결론은 한결같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관심. 작업이 작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다른 사회적 사안에도 연결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든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하지만 미약한 관심조차 없다면 이런 유형의 작업은 언제나 '허공의 메아리'로 머무를 것이다. 당장 눈앞에 있는 것에만 집중하려고 하는 우리의 서투른 현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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