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식
김규식은 사진가인가 공예가인가. 작업 관련된 모든 것을 직접 제작하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완성된 그의 사진은 ‘사진 속 추상’과 ‘사진을 바라보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전 속 사진(寫眞)의 정의를 살펴보자. ‘물체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찍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든 영상’, 그리고 ‘물체를 있는 모양 그대로 그려 냄. 또는 그렇게 그려낸 형상’이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전자는 필름과 카메라라는 조건이 있어야 성립되는 전통적 범주의 사진을, 후자는 최근 매체 실험적인 작업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사진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포괄적 의미의 사진을 지칭한다.
김규식은 사진이라는 매체를 메타적으로 탐구한다. 이 말인즉슨, 전통적 의미의 사진을 지양한다는 뜻이다. 한때 그는 ‘젤라틴 실버 프린트’에 몰입했지만, 지금은 ‘매체 실험’에 집중하고 있다. 작업은 사진이 가진 관성적이고 본능적인 재현의 욕망에서 탈피하고, 미학적·철학적 관점에서 사진을 해석하는 행위로부터 벗어나 데 의의가 있다. 이를 위해 김규식은 사진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통제하고 창조한다. 여러 장의 종이를 잘라 정교하게 겹친 다음 노광을 줌으로써 실제 오브제처럼 보이게 했고, 고감도의 투명 필름과 유리판 및 아크릴 스프레이를 이용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진 필름처럼 표현했다. 심지어 작업에 필요한 기구(예전 작업을 예로 들면, 진자운동 장치 같은)도 직접 제작했다. 작업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독창성을 확보한 셈이다. 이에 대해 김규식은 “나의 작업에서 수반된 이론은 기술에 속해있다.”라고 말한다.
논픽처는 아주 오래된 기술인 조합 인화의 방식을 일부 사용하고 있다. 조합 인화와 다른 점은 이미지가 없는 필름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모든 이미지는 드로잉 한 조각들을 오려내고 다시 합쳐서 하나의 형태로 만든다. 인화의 현상 과정은 기존의 암실 작업과 같은 방식이다. 그러나 가공된 입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사진의 사실성에 혼란을 야기한다. 실제 사진이 아닌데도 굳이 입자를 만들려는 것은 이전 작업처럼 사진의 재현에 대한 연속성도 있겠지만, 사진을 물리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 점이 더 큰 이유이다. - <작업노트>
‘사진은 반드시 원본(피사체)을 바탕으로 구축돼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김규식의 작업은 생소하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사진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기계적 속성과 거리를 뒀을 뿐, 작업에 녹아든 개념은 다분히 ‘사진적’이다. 대표적으로 빛에 따른 입자의 연속과 집합, 원근법, 유제 등을 실험했고, 결과물을 얻기 위한 현상과 인화는 암실에서 진행했다. 신작 <논픽처(Non Picture)>는 사진의 투영(projection)과 물질적 관계를 실험하는 ‘실험 연작’ 중 하나다. 재현 대상도 없고 촬영한 필름도 없지만, 작업은 빛과 입자가 만들어낸 이미지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다. 추상적이면서 실제 오브제를 촬영한 것 같기도, 목탄으로 흑백의 명암을 묘사한 그림 같기도 하다. 사진과 그림 중간쯤에 있다고나 할까.
<논픽처>는 추상에 관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점·선·면’의 칸딘스키부터 회화에 반기를 든 도널드 저드까지, 추상에서 그림은 재현과 드로잉을 포기하는 과정을 보여줬는데, 추상 사진이라고 하면 왜 여전히 흔들리게 촬영하거나 피사체 일부분을 날카롭게 절단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사진을 추상적으로 표현했다고 하지만, 재현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추상적’이라는 포토그램도 대상이 존재해야만 완성되지 않던가. 기실 김규식 작업의 첫인상은 다소 난해하다. 여기서 파생되는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그는 낯익은 이미지를 차용했다. 익숙함에 끌려 작업을 들여다보게 되지만, 이내 입자와 형태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어 이것이 그림인지 사진인지, 구상인지 추상인지, 평면인지 입체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유쾌한 도발’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고 싶다. 그림과 사진, 설치의 경계를 허물었기 때문이다. 단지, 결과물이 사진이라는 ‘틀’ 안에 있을 뿐이다. 게다가 흥미롭게도 ‘시간성’마저 감지된다. 그림에서 사진으로, 구상에서 추상으로, 평면에서 입체로의 변천이 한 장의 결과물에 응축된 모양새다. 마치 과거에서 출발한 빛을 우리가 인식하듯, 미술사를 구성하는 레이어들을 보는 것 같다. 아는 것이 여기까지라 이만큼만 보이는 것이 애석하기만 하다.
마무리에 앞서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싶다. 김규식의 작업이 어떻게 다가왔는가. 매체적 기술 특성 혹은 기계적인 규칙이 보여 어떤 희열을 느꼈는가. 아니면 사진에 부여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해 체념하였는가. 단언컨대 그의 작업은 ‘스투디움’과 ‘푼크툼’이라는 사진 수호 정령의 항마력 안에선 읽힐 수 없다. 기술과 이론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사진을 바라보는 방식을 확장하지 못한다면, 다양한 작품을 즐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작업과 친해져 보길 바란다. ‘의미가 곧 내러티브’라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을 것이다. [2020. 03]
김규식 이미지를 분석하고 매체를 탐구하는 작업을 한다. 사진을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미디어를 이용하고 다양한 실험을 기반으로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SKOPF 올해의 작가(2019)에 선정되었으며,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