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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Jul 10. 2020

보존과학자 C의 하루

냉정과 열정 사이

미술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전시’가 아닌, 미술 감상을 위해 꼭 필요한 ‘보존과학’을 둘러싼 이야기가 청주에서 펼쳐진다. 변색되고 퇴색된 예술품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이 필요하다.


보존과학 이야기를 풀어낸 <보존과학자 C의 하루>


서랍 혹은 지갑을 정리하다가 한동안 꺼내지 않았던, 그래서 빛바랜 사진을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날은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주인공 준세이가 되는 느낌이다. 구겨지고 생채기가 난 사진 속 입자와 입자 사이를 나만의 색으로 채워가며 ‘시간의 켜’를 곱씹다 보면, 미술품 복원가인 그에게 감정 이입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애석하게도 시간 여행의 결말은 영화처럼 늘 해피엔딩만은 아니다. 틈새를 채웠던 색이 얼마 못 가 신기루처럼 사라지기에.


보존과학자는 차가운 머리(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냉정한 판단)와 뜨거운 가슴(미술품에 대한 열정)을 모두 갖춰야 하는 인물이다. 굳이 영화와의 차이점을 꼽자면, 사랑의 대상이 아오이가 아닌 미술품이라는 것. 각설하고,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선 ‘미술품 보존·복원’을 주제로 하는 <보존과학자 C의 하루>가 진행 중이다. 작품을 향한 끊임없는 질문과 고민으로 가득 찬, Conservator(보존과학자), Cheongju(청주)를 지칭하는 C로 명명된 보존과학자(가상 인물)의 일상을 통해 그동안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던 보존과학 이야기를 풀어낸 전시다.


안료는 작품 분석연구의 기초자료가 된다.
과학 장비를 새로운 시각으로 촬영한 정정호의 <보존도구(시리즈)>


<보존과학자 C의 하루>는 다섯 개의 키워드(상처-도구-시간-고민-서재)로 진행된다. 작품의 물리적 상처를 마주하는 보존과학자의 감정을 드러내고, 보존과학실의 풍경과 미술관 소장품 실물 및 복원 기록을 선보이며, 보존과학자의 고민과 지식의 근간이 되는 서재 등을 시각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보존과학자 C의 하루>를 기획한 김유진 학예연구사는 전시에 관해 “작품과 보존과학 도구, 분석 데이터, 기록자료와 더불어 보존과학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참여 작가들의 신작으로 구성했다. 각각의 전시 대상과 공간은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고, 서로 연결되거나 섞여 현실과 이상 사이의 보존과학자를 보여준다.”라고 말한다.


전시의 서막은 보는 이에게 긴장감을 선사하며 올라간다. 아무것도 없는 전시장 입구에선 기계음과 파열음만이 들리는데(류한길 작업), 마치 훼손된 작품을 마주했을 때 경험하게 되는,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은 경험을 청각화한 듯하다. 어두운 공간을 지나면,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C의 공간이 이어진다. 보존과학자가 사용하는 광학기기와 분석자료, 안료 등은 물론이요, 이를 재해석한 김지수(보존 과학실 냄새를 회화, 텍스트로 표현)와 정정호(과학 장비를 새로운 시각으로 촬영), 주재범(보존과학자 업무를 애니메이션화)의 작업을 만나볼 수 있다. 이곳에서 특히 시선을 끄는 건 자외선과 적외선, X선 등을 활용해 알아낸 작품 뒤에 숨겨진 정보들이다. 구본웅의 <여인>에선 집과 담장으로 추측되는 이미지가, 오지호의 <풍경>에선 나무 뒤에 가려진 여인의 전신상이 발견된 것이 흥미롭다.


이갑경, 〈격자무늬의 옷을 입은 여인〉(1937) 보존·복원 과정


실제 보존·복원 과정을 기록한 결과물도 눈길을 끈다. 야외전시로 인해 변색이 심해진 니키 드 생팔의 조각상과 높은 습도 탓에 표면이 갈라진 신미경의 비누 조각, 캔버스 천이 찢기고 물감이 상당수 떨어져 회생 불가능해 보였던 이갑경의 회화 등을 심폐소생술에 견줄만한 고도의 집중력으로 복원에 성공한 것을 보고 있노라면, 보존과학자의 위대함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이외에도 전시는 백남준의 <다다익선> 복원 문제와 관련된 세 가지 의견 – CRT 모니터 유지, 신기술 적용한 모니터로 교체, 서서히 소멸해가도록 두거나 해체하여 보관 –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보존과학자의 고민을 토로하며, 그들의 감수성과 인문학적 지식을 채운 도서와 자료, 전 보존과학자의 인터뷰 영상 등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보는 이는 보존과학자의 일과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또는 유추)해 볼 수 있다.


흔히 어떤 존재의 생애를 설명할 때 ‘생로병사’라는 말을 사용한다. 세상에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우리의 숙명이다. 그러나 미술품은 약간 다르다. ‘탄생과 소멸’이라는 보편적인 굴레에서 벗어나 생로병생(生老病生), 즉 ‘윤회’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태어나 늙고 병드는 건 매한가지지만, 다시 새로운 삶을 얻는다는 뜻이다. 이는 미술품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과 냉철한 판단력으로 점철된 보존과학자의 ‘금손’ 덕분 아닐까. 미술품의 가치를 지키는 보존과학의 오늘을 엿볼 수 있는 <보존과학자 C의 하루>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10월 4일까지 진행된다.

[2020. 07]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내 보존과학실




40년 전 사진, 어떻게 보존 처리할까

육명심 작품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특징은 사진 표현력이나 대상과의 거리감 또는 감각적 섬세함과는 달리, 사진의 기술적 처리 방법이 거칠게 나타난다는 것. 사진의 톤, 콘트라스트, 필름 상태의 보존적 측면의 문제점들이 작품 표면의 스크래치와 검고 하얀 점들로 나타났다. 특히, <문인시리즈-서정주>(1973/2007) 사진의 상태는 이러한 손상 부분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원작을 보면 얼굴이 점으로 가득한 사람으로 착각될 정도다. 보존과학자는 이 부분을 중심으로 클리닝을 실시하고, 점을 찍어 보완하는 스포팅 방법을 병행하여 보존처리를 시행했다.



1. 원작 사진 : 작품 표면에 스크래치와 검고 하얀 점들이 보인다.

2. 액자 클리닝 및 해체 : 액자 뒷면 물 테이프는 탈이온수와 미세면봉을 사용해 제거

3. 사진 클리닝 : 건식 클리닝에는 부드러운 양모 붓을, 유리 표면의 이물질은 세정제를 사용

4. 스포팅 : ‘베이직 블랙’과 ‘브라운’ 색 잉크 사용. 스포팅 얼룩은 아세톤과 면봉으로 제거

5. 드라이 마운트 : 평탄화를 위해 드라이 마운트(95℃에서 약 1분)

6. pH 측정 : 고정코너 작업은 중성 코너를, 작품 산성도 측정은 pH meter를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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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설치로 변색된 작품, 어떻게 보존 처리할까

1967년 제작된 니키 드 생팔의 <검은 나나(라라)>. 장기간 야외에 전시된 탓에 페인트의 변색과 박락 등이 발생, 보존처리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손상 부위가 넓고, 변색이 심해 전체 재도장 보존처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보존처리의 원본성과 진정성 확보를 위해 미술관 내외부 전문가 회의 및 니키 드 생팔 재단과의 지속적인 협의를 거쳤다. 구 도장층을 제거하고 색상별로 재도장을 하였으며, 기존 작품에 남아있던 질감 및 색상, 광택 등을 고려하여 보존처리하였다. 이 과정에서 여러 관계자의 권리 범위와 현대미술품 보존을 위한 새로운 보존윤리·철학적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1. 단면 관찰 : 폴리우레탄 계열 페인트 사용, 3~4개 층의 프라이머, 서페이서, 탑 코트, 클리어 코트로 구성되었음을 확인

2. 소도구를 이용한 세밀한 제거 : 구 도장층 제거

3. 흑색 도장 1차 제거 : 구 도장층 제거

4. 프라이머 도포 : 표면을 부식이나 물리적인 충격으로부터 보호

5. 사포 이용한 샌딩 : 표면을 매끄럽게 하여, 페인트 점착성 높임

6. 가슴 부분 붓칠 : 이후 클리어 코트 도포. 페인트의 변색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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