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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Aug 06. 2020

처음처럼 그때처럼

고정남, 김수강, 이정록, 한홍일

꿈꾸던 일에 한 발자국 가까워진 듯한 ‘설렘’과 미완성에서 오는 ‘서투름’의 감정이 동시에 느껴지는 단어 ‘처음’. 사진가들의 ‘처음’은 어땠을까.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그때 그 마음을 간직하고 있을까.


<집, 동경 이야기>(2002.1.16~1.22) 팸플릿
집, 동경이야기 #07, Tokyo, Nakank-ku, Gelatin Silver Print, 20X24inch, 2001
고정남의 첫 개인전이 열렸던 ‘갤러리 룩스’

나의 첫 개인전 (2002) _ 고정남


도쿄종합사진전문학교 재학 시절, 고정남은 학교를 졸업하면 첫 개인전을 가지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말하는 대로 이뤄진다고 했던가. 2002년 1월, 정말로 그의 첫 개인전이 ‘갤러리 룩스’에서 열렸다. <집, 동경 이야기>는 다다미 쇼트(Shot)의 촬영 미학을 구사한 일본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 이야기>(1953)를 차용한 작업이다. 정지한 듯한 화면, 절제된 카메라의 움직임, 회화적 구성을 통해 성찰적 시선을 반영한 그의 영화처럼, 고정남 역시 ‘4x5 뷰 카메라’로 정갈한 프레임을 선보였다. 당시 고정남은 3학년 때 지도 교수이자 사진가인 시바타 토시오(柴田敏雄)에게 서문을 받았으며, 그의 작업은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상건축>에 게재된 바 있다. 한편, 시바타 토시오는 고정남 작업에 대해 “지금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감과 스릴, 특히 가지각색의 상상력을 그려세울 수 있는 공간이 그의 사진 속에 있다.”라고 평했다.




‘갤러리 2000’에서 열린 김수강 개인전(1998.5.6~5.13) 도록
과제로 처음 제작했던 검프린트
Salt-Shaker(1997)
Umbrellas(1997)

나의 첫 번째 검프린트 (1996) _ 김수강


대학원 3학기 때 검프린트를 접한 김수강은 첫 번째 과제를 제출하고 난 뒤 검프린트가 자신의 운명임을 직감했다. 그러고 보니, 사물을 조용히 응시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사물의 ‘숭고한 순간’을 따뜻한 회화적 감성으로 표현하는 게 김수강의 차분한 성격과 참 많이 닮았다. 그날 이후 김수강은 졸업할 때까지 1년 6개월 동안 학교의 비은염 작업실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유학 시절 탄생한 검프린트로 그는 1998년 5월 인사동 ‘갤러리 2000’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지금까지 작업을 이어오는 데 정신적인 밑거름이 되어준 은사는 대학원 지도 교수였던 필립 퍼키스다. 그는 김수강의 작업을 예리한 눈으로 보고, 김수강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간결하고 정확한 조언을 해주었다. 그때를 회상하며 김수강은 “필립 퍼키스 말에는 내가 진심으로 즐기면서 힘을 빼고 작업할 수 있도록 이끄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라고 말한다.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업 <남녘땅>

나의 첫 개인전(1998) _ 이정록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이정록은 석사 청구 개인전을 위해 일주일에 3~4일을 김제, 나주, 부안, 정읍 등지에서 보냈다. 그는 홀로 들에 서서 대지에 햇빛이 쏟아지기까지 기다렸다가, 밑에서 꿈틀거리던 음기와 위에서 쏟아지는 양기가 서로 뒤엉켜 격렬하게 요동치는 그 순간을 기록했다. 흑백 필름에 박제된 ‘자연의 정기’를 표현하기 위해 (코닥 엘리트 파인아트 인화지를 구하고 싶으면 이정록에게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인화지로 테스트를 했고, 암실 한구석에 쓰러져 잠들 정도로 인화에 온 힘을 다했다. 이렇게 탄생한 작업이 바로 <남녘땅>이다. 그러나 전시 기획은 녹록지 않았다. 이정록이 전시하길 원했던 인사동 갤러리의 큐레이터가 “우리는 사진 전시 안 합니다.”라고 말했기 때문. 어쩔 수 없이 예전에 그룹전을 했던 갤러리를 찾아가 대관 신청을 했다. 비록 사진이 인사동에서 그런 대접을 받았던 시기였지만, 전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이는 1998년 그가 28세이던 해, 첫 개인전 때의 일이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함께 했던 에디토리얼 작업 (2001)
폴라로이드(모델 이혜상)와 8mm 비디오카메라를 이용해 제작한 작업(1996)을 포트폴리오 첫 장에 배치했다 .

나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2001) _ 한홍일


왼쪽 사진은 2001년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함께 했던 에디토리얼 작업이다. 한 폭의 수묵화 같은 한홍일 ‘꽃 사진’의 ‘프로토타입’으로 보면 된다. 현장 반응은 좋았지만, 며칠 후 난리가 났던 사진이기도 하다. 브랜드 이름이 명확하게 안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 클라이언트들은 프로젝트에 한홍일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부담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옷과 모델을 그대로 찍기보다, 이를 통해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것이 패션 사진가의 역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한편, 위의 작업(1996)은 독립 후 제작한 포트폴리오 첫 장에 있는 사진이다. 상업 사진가의 포트폴리오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는 실험적인 시도다. 모델 이혜상을 찍은 폴라로이드와 앤티크한 소품을 8mm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한 다음, 이를 다시 제니스 텔레비전에 띄워 필름 카메라로 담아냈다. 주사선과 불분명한 이미지가 아련한 느낌을 주는데, 이 역시 ‘꽃 사진’에서 느낄 수 있는 애틋함의 프로토타입이라고 볼 수 있겠다. [2020.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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