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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Feb 25. 2021

문제적 남자: 앓음다움

로버트 메이플소프

문제적 남자: 앓음다움

사진 역사책과 전시 소개 웹페이지에서만 볼 수 있었던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작업이 현재 국제갤러리(서울, 부산)를 수놓고 있다. 포트레이트, 꽃과 정물, 풍경 사진 등을 총망라한 그의 국내 첫 개인전은 3월 28일까지 계속된다.


(왼쪽) <Bust and Skull>, 1987 / (오른쪽) <Two Men Dancing>, 1984


“ 사진가로서 그는 항상 빛을 활용해 일했지만, 마약, 사도마조히즘, 섹스에 대한 어두운 면을 불러내곤 했다. 그는 위대한 예술가일까, 야심에 찬 사기꾼일까. 천사일까, 악마일까. 종잡을 수 없었다. ”

- 영화감독 펜튼 베일리 & 랜디 바바토


동성애와 에로티시즘이라는 다소 민감한 소재를 이용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지만, ‘예술적 완성도만큼은 누구와도 견줄 수 없다.’라는 평가를 받는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개인전 <Robert Mapplethorpe: More Life>가 국제갤러리 서울점과 부산점에서 동시 개최된다. 서울점에서는 ‘인물과 사물의 가장 완벽한 순간, 피사체의 본질을 꿰뚫으며 정교한 질서와 서정적 서사성을 펼쳐 보인 흑백사진’을, 부산점에서는 ‘폴라로이드, 젤라틴 흑백사진, 다이-트랜스퍼 컬러사진 등 다양한 실험’의 결과물을 만나볼 수 있다.


(왼쪽) <Two Tulips>, 1984 / (오른쪽) <Milton Moore>, 1981


1989년 42세 젊은 나이에 에이즈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예술가 메이플소프. 과격하고 노골적인 사진과는 어울리지 않게, 그는 전형적인 미국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추측건대, 메이플소프 내면에선 천사와 악마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의 작업 전반에서 느껴지는, 흑과 백의 대비에서 오는 종교적 색채(마치 선악관 같은)를 곱씹어보라.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흔들리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가. 연장선에서 메이플소프의 사진은 ‘퇴폐적 낭만주의’의 정수로 여겨지는데, 그렇다면 이는 내면적 ‘앓음’의 과정에서 인간의 어두운 본성이 예술로 승화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흥미롭게도 ‘앓음’은 메이플소프의 내면뿐만 아니라, 무언가가 표출된 사진의 외면에서도 감지된다. 다만, 사진의 ‘앓음’은 형식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의 생몰년이 1946년과 1989년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메이플소프 사진에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혼재되어 있다. 절제된 조형 언어(모더니즘) 안에 기존에는 쉬이 드러내지 못했던 탈이념적인 주제(포스트모더니즘)를 녹여내는 방식이다. 흑인 남성 누드, S&M(가학적 & 피학성 성욕) 성향, 성 소수자, 하위문화 등의 소재가 굉장히 정제된 흑백사진 형식으로 표현되다니. 그의 작업을 경계에 선 ‘모순의 미학’이라 해도 별 무리가 없을 테다.


(왼쪽) <Lisa Lyon>, 1981 / (오른쪽) <Frank Diaz>, 1980


이러한 메이플소프의 예술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 있었으니, 바로 패티 스미스(Patti Smith)와 샘 웨그스태프(Sam Wagstaff)다. 주지하다시피, 로커이자 펑크 시인인 패티 스미스는 메이플소프의 소울메이트였다. 가진 거라곤 야심뿐이었던 20대 초반, 메이플소프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패티 스미스를 필름 안에 담으며 예술혼을 불태웠다. 패티 스미스는 자서전 <Just Kids>에서 메이플소프에 관해 “건장한 남성미도 있었지만, 이면에는 누구보다 섬세하고 여성적인 면을 지녔다. … 그 안의 다른 세계는 무척이나 외롭고, 끊임없이 자유와 일탈과 엑스터시를 갈구하는 불온한 모습이었다.”라고 회상한 바 있다.


이렇게 시작된 메이플소프의 예술 세계에 날개를 달아준 건 샘 웨그스태프다. 큐레이터이자 컬렉터, 그리고 동성 연인이었던 그는 메이플소프를 물심양면 지원했다. 1972년 웨그스태프와 인연을 맺은 뒤로 메이플소프의 작업은 파격적으로 변신한다(패티 스미스와 만났던 시절에는 포르노 사진을 이용한 콜라주가 주를 이뤘다). ‘오브제화 된 남성 성기’, ‘채찍을 항문에 꽂고 대담하게 화면을 응시하는 셀프 포트레이트’ 같은 도발적인 이미지는 당시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지만, 이내 20세기 중반 뉴욕의 성적 욕망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고, 후대에 와서는 “사진의 범주를 초월하여 일상성 안에서 마술적 환상성과 영화적 서사를 구현했다.”라고 평가받았다.


(왼쪽) <Watermelon with Knife>, 1985 / (오른쪽) <Self Portrait>, 1980


기실, 지금까지 한 메이플소프 이야기는 빙산의 일각이다. 정확히는, 그를 단순하게 정의 내리는 건 불가능하다. 형식은 모더니즘이나 ‘예술의 진정성’에는 관심이 없었고, 대상을 오래 깊이 볼 것 같으나 성향은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더는 호기심이 느껴지지 않는 대상은 가차 없이 버려졌다고 할 정도다. 또한, 사진으로 사회에 저항하는 듯하나 메이플소프는 세속적 욕망을 채우는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그의 꽃 사진은 ‘에로티시즘의 은유’로 대변되지만, 여기에는 잘 팔렸기에 찍었다는 후문이 존재한다. 더욱이 비평가들조차 그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것을 보면, 메이플소프가 종잡을 수 없는 인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단 하나 확실한 건, ‘앓음’에서 기인한 예술이 시대정신을 고찰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아름다움처럼 섹스나 죽음도 보는 이의 눈에 달렸다.”라고 메이플소프는 말하지 않았던가. 그의 작업을 보고 있으니, 아노미에 가까운 작금의 상황이 오버랩된다. 우리는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에 타협하고 있는 것일까. 비록 시간은 1970~80년대에 멈춰져 있지만, 지금 우리의 촉을 유연하고도 날카롭게 다듬게 하는, 메이플소프의 상처가 피워낸 꽃을 마주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3월 28일까지 계속된다. 

[2021. 03]


* ‘앓음다움’은 소설가 박상륭의 문구에서 인용했다.


<Ken Moody and Robert Sherman>, 1984

© The Robert Mapplethorpe Foundation. Used by permission.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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