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새로고침1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효니 May 08. 2021

누구를 위한 디아스포라인가

니키 리

<The Hispanic Project>


노래 ‘타타타’를 기억하는가? ‘타타타 (Tathatā)’는 ‘여여(如如)’라는 불교에서 유래한 말로 ‘있는 그대로의 진실된 모습’을 의미한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라는 노래 가사는 마치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성찰이 우선시 돼야 한다.’라는 심오한 메시지를 던지는 듯하다.


작가 니키 리(한국명 이승희)의 작업은 여느 정체성 관련 작업과 다를 바 없이 ‘나를 찾기 위해 스스로 소수집단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니, 그렇게 규정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와의 만남 이후 미술 평단이 말하고 있는 그녀의 작품세계 - 디아스포라와 정체성 - 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졸업을 위해서는 작업을 해야만 했어요.”

1993년 중앙대학교에서 사진 전공을 마치고, 1998년 NYU에서 사진 전공 석사과정을 졸업한 니키 리에게 작업을 하게 된 계기를 물어보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굉장히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예술을 전공한다는 많은 학생의 작업 계기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정답 같은 번지르르한 대답보다는 더 현실적이다. 니키 리의 작업을 이야기할 때 정체성(Identity) 개념을 벗어나기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어떻게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어떤 작업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보니 저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많은 작가가 했던 ‘나는 누구인가’를 밝혀내는 작업과는 달라요. 저는 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어요. 내 안에 다양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The Hip Hop Project>


이 모든 것들 또한 나의 모습

니키 리는 뉴욕현대미술관과 구겐하임 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될 정도로 해외에서 먼저 주목받은 작가다. 특히 니키 리의 대표작 <The Project> 시리즈는 조그마한 체구의 동양 여성인 그녀가 분장과 변장을 통해 다양한 집단에 동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진 속 집단은 소위 말하는 디아스포라(소수자 집단 - 히스패닉, 레즈비언 등)가 주를 이룬다. 그녀는 왜 디아스포라에 들어갔던 것일까.


“저는 다양한 모습의 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히스패닉의 특징도, 레즈비언의 특징도 모두 저의 모습이에요. 이런 저의 모습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물론, 철저히 작업 계획을 세우고 의도적으로 그들과 생활한 것은 맞지만, 사회에 대한 계급, 소수자에 대한 생각으로 작업한 것은 아니에요. 제 자체가 선입견이 별로 없어서 특별히 그들을 소수자 집단이라 생각한 적이 없어요. 저도 미국에서 자란 교포가 아닌 토종 한국인 유학생이라 그런지 동양인들에 대한 차별을 크게 느낀 적도 없고요. 그리고 동양에서 온 여성은 인기가 많잖아요.”


<Parts(23)>


고유한 정체성을 찾는다?

니키 리가 활동하던 시기, 1990년대에는 ‘정체성’이 세계 미술에서 큰 화두였다. 당시 작가들은 ‘정체성이란 자연적으로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닌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란 생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데 열정적이었다. 동시대의 촉망받는 작가였던 니키 리에게 ‘고유의 정체성을 찾는 예술작업’에 관해 물어보았다.


“고유의 정체성을 왜 찾으려 할까요? 고유한 것은 고유한 것 그대로 있잖아요. 저는 저의 모습을 잘 알았는데, ‘왜 사람들은 나를 잘 몰라주지?’라는 고민이 있었어요. 저를 보여주는 방법을 고민했는데 그것이 <The Project> 시리즈에요. 당시 이슈에 맞춰 다양한 해석들과 담론 - 정체성의 다양성이라든지 허구성이라든지 - 을 만들어내기 위해 어떤 의도를 갖고 작업한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 보면 제 작업으로 인해 정체성과 관련된 논의가 일어났다는 것은 제 작업이 좋은 작업이라는 뜻 아닐까요.”


<Layers, Bangkok 1,2,3>


고착화된 정체성

니키 리의 말처럼 그녀의 작업은 정체성과 관련된 논의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좋은 작업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권위를 가진 일종의 주류 집단이 사람들의 다양하고 열린 해석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라는 사실이다. 스튜어트 홀 (1973)은 ‘수용자들은 매체의 의미를 매체 속 텍스트나 작가의 의도에 따라 수동적으로만 수용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작품의 의미는 작품 속 텍스트, 작가의 의도, 관객들 사이의 복합적인 관계에 따라 보다 다양하게 생산될 수 있음을 말했다.


하지만 니키 리 인터뷰를 위해 했던 사전조사에서 ‘그녀의 작업은 정체성을 찾기 위한 작업이다’ 이외의 의견은 찾기 어려웠다. 평단에 의해 범주화되었기 때문이다. 니키 리의 의도와는 달리 그녀의 작품은 이미 정해져 버린 의미만 가질 수 있는, 작품의 다양한 해석이라는 측면에서, 쉽게 침범할 수 없는 하나의 디아스포라가 되었고, 하릴없이 니키 리는 ‘정체성과 디아스포라’를 작업하는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즉, 니키 리의 작업이 – 기대와는 달리 – 타인의 타인에 의한 타인을 위한, 누군가의 디아스포라 안에서 다시 태어난 셈이다. 한 치 앞까지 모두 다 알아버린 타타타(他他他)로. [2014. 02]



<The Tourist Project>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의 흔적, 조각모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