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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Jul 28. 2021

당신의 눈치에 건배

여섯 번째 시간

정태후, 동생의 보석


황홀한 순간의 연속이다. 고풍스러운 헤링본 재킷과 포켓치프가 잘 어울리는, 콜린 퍼스 분위기의 노신사가 보낸 심쿵 눈인사를 품에 안고, 꿈에 그리던 도시에서의 유람을 시작한다. 중세시대 귀족이 드나들었을 법한 커다란 문을 지나니, 호텔 컨시어지가 웰컴 드링크를 건넨다. 화려한 거품이 올라오는 칠링된 샴페인이다. 여독이 거품과 함께 사라지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샴페인 거품으로 참 많은 사람의 마음을 녹였다. 그때를 생각하며, 허공에 “치얼스”를 외쳐본다. 주변에 보는 눈이 없으니 가능한 일이다. 몇 발자국 옆에 고전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여닫이 식 승강기가 있지만, 나무 계단을 이용하려고 한다. 가벼운 발걸음에서 기인한 파열음을 듣는 것이 빈티지 호텔을 방문한 여행자의 미덕이라는 게 나의 지론이다. 어느새 506호에 다다랐다. 열쇠를 몇 바퀴 돌려 문을 연다. 눈 부신 햇살을 살짝 가려주는 차르르 커튼이 바람에 휘날린다. 이런 풍경이라면 응당 낮잠을 즐겨줘야 한다. 침대 위에 가벼운 짐을 던져놓고, 암체어에 등과 머리를 기댄다. 얼마나 흐른 것일까. 무언가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잠결인지 꿈결인지 분간이 안 된다. 살짝 눈을 떠 본다. 역광이라 실루엣만 보인다. 이번 여행의 벗은 헤르메스인가. 옅은 미소를 머금어본다.


최요한, <물고기 비늘>


두들기는 소리가 재차 들려온다. 귀에 익은 목소리도 이어진다. 박자에 맞춰 몸이 파르르 떨린다. 아무래도 이건 현실이다. 이내 3옥타브의 목소리가 가슴에 날카롭게 박힌다. “회사에서 잠이 오냐?” 낯익은 실루엣…, 이제 고난의 연속이로구나. 일장춘몽, 시쳇말로는 ‘아, 시X 꿈’이다. 누구나 여행을 꿈꾸지만, 아무나 꿈을 이룰 수 있는 건 아니다. 가령, 조직에 속해있다면, 게다가 근속연수마저 부족하다면, 엄청난 눈치 싸움을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여행의 꿈이 실현되는 건 꿈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찰나다. 다만, 자유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식곤증이 몰려오는 한낮, 하지만 애석하게도 시에스타가 허락되지 않는 일터에서 자주 상모를 돌리게 된다면, 책상 빠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잠시, 오해는 마시라. 조직 생활만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펀치라인을 생성하려 예로 든 것일 뿐이다. 어찌 됐든, 생업에 얽매인 사람이 덜컥 여행을 떠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각설하고, 보편적인 생활 밀착형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전염병이 창궐하기 전까지 ‘여행’은 흔하디흔한 소재였다. 지금은 어떠한가. 2년 가까이 여행으로 향하는 관문에 빗장이 굳게 걸려있다.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이란 일과 생존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라고 했는데,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도통 그의 말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거리, 사무실, 온라인을 막론하고 파놉티콘(Panopticon)과 바놉티콘(Banopticon)이 교묘하게 작동하는 오늘날, 그래서 일도 휴식도 편히 할 수 없는 오늘날, 잠시나마 해방의 감격을 누릴 방법 어디 없을까.


정태후, 호텔(왼쪽) & 요란한 자장가(오른쪽)
정태후, 아르고스의 눈
정태후, 7시 43분 48초의 과녁 위로 흐르는 모래들


《여섯 번째 시간》에 몸과 마음을 맡겨보길 바란다. 우리를 억누르는 시선이 허락하는 유일한 자유의 시간이 될 것이다. 정태후와 최요한이 참여하는 《여섯 번째 시간》은 한낮의 휴식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전시다. 회화와 사진이라는 다소 생경한 만남에서 두 작업을 잇는 연결고리는 ‘시선(눈)’이다. 부연하자면, 인간의 감정과 내면을 재현하는 정태후 작업 속 ‘눈’은 소재적이요, 거리를 돌아다니며 이미지를 채집하는 최요한의 ‘시선’은 형식적이다. 먼저, 호텔을 배경으로 하는 정태후의 여러 작업 중 특히 눈길이 가는 그림이 있으니, 침대 위에서 잠을 자는 청년을 묘사한 <아르고스의 눈>이다. ‘호텔’과 ‘파자마 무늬’에서 현대인의 워라밸, 호캉스 문화가 읽히기 때문이리라. 어떤 작가는 말했다. “우리가 오래 살아온 공간에는 상처가 있다. 그러나 깔끔하고 잘 정돈된 호텔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건넨다.”라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정태후의 <아르고스의 눈>에선 현실과 거리를 두지 못하는 애달픔이 감지된다. 이를 대변하는 건 아르고스의 눈을 모티브로 한 파자마 무늬다. 100개의 눈으로 암소가 된 이오를 감시한 행위가 자연스레 시선 감옥으로 이어진다. 자유를 찾아왔건만, 일과 삶의 균형이 여전히 비대칭인, 그야말로 떠나도 떠나지 않은 휴가다.


최요한, <Nonlinear>
최요한, <Nonlinear>
최요한, <Nonlinear>


한편, 최요한은 여유를 만끽하고자 떠난 순례길에서 만난 벗들을 담아낸 <Nonlinear>와 사라질 연약한 것들을 찍어낸 <물고기 비늘>을 선보이고 있다. <Nonlinear>가 여행의 기술이라면, <물고기 비늘>은 꿈의 파편이라 할 수 있겠다. 그중 한쪽 벽면을 수놓은 <물고기 비늘>에선 ‘페이드인’과 ‘페이드아웃’이 연상되는데, 마치 달콤한 낮잠의 처음과 끝을 보는 것 같다. 점점 잠에 빠져들어 꿈속 광경이 선명하게 다가오다가, 차츰 실제 상황으로 귀환하는. 비몽사몽일 때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지지만, 정신 차리고 나면 일상이라는 쳇바퀴를 다시 돌고 있는 것처럼. 물고기나 사람이나 자신만의 비늘(방어 기제)을 갖고 있으나, ‘어린’이 벗겨질 때는 정신적·육체적으로 미약한 존재가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일까.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거친 3차원의 질감과 무딘 2차원의 비트맵을 오가는 듯한 사진 표면에선 꿈에 저당 잡힌 지친 하루가 떠오른다. 개인적으로, 정태후와 최요한 작업이 빚어낸 《여섯 번째 시간》을 꿈(여행)과 현실을 오가는 타임슬립으로 정의하고 싶다. 비록, 물리적 여행이 아닌, 정신적 여행이긴 하지만 말이다. 두 작가의 작업과 호흡하며 마주하는 꿈(여행)은 과거일 수도, 미래일 수도 있다. 이는 전적으로 보는 이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아무렴 어쩌랴. 그리움을 쌓아도 좋고, 바람을 엮어도 좋다. 《여섯 번째 시간》은 잃어버린 휴식을 찾아가는 데 방점이 찍힌 전시 아니던가. 더욱이 소파에 앉아서 낮잠을 자도, 셀카를 찍어도 괜찮다. 이곳에는 우리를 옥죄는 그 어떤 시선도 없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라. 잠시나마 해방의 감격을 누리기만 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 시간》을 통해 부디 우리의 수고가 거품같이 사라지길 염원하며, 당신의 눈치에 건배를 제의하는 바다. [2021. 07]


최요한, <Nonlinear>



정태후 www.taehoojung.com & 최요한 www.choiyohan.com



여섯 번째 시간(hora sexta)

2021. 7. 14(수) - 8.21(토)

아트스페이스 언주라운드

오전 11시-오후 7시(매주 월요일 휴관)

기획 : 천수림, 박이현

포스터 디자인 : 그레이스 윤

공간디자인 : ㈜데이즈아트

주최 : 아트스페이스 언주라운드

협찬: 모노세

문의: 0707868257 / eonjuround@gmai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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