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정 & 민경문
‘프론트도어’가 디자인한 포토북 <IN THE SPOTLIGHT: 아리랑 예술단>이 지난 1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됐다. 심사위원회는 책에 관해 “북한과 관련된 이미지의 키치적 요소를 적절하게 제한하여 세련된 형태로 재해석하고, 교차 편집과 디자인이라는 명확한 콘셉트를 통해 탈북민이라는 소재를 적확하게 다뤘다.”라고 설명했다.
포토북을 디자인하게 된 계기
<이안 매거진>과 작업하던 헤적프레스 박연주 실장님 덕분이다. 매거진 10주년을 맞아 리뉴얼 작업을 기획할 때 박연주 실장님이 우리를 ‘이안’에 소개해주면서 사진과 인연을 맺게 됐다. 작업하면서 사진의 매력에 푹 빠졌다. 사실 처음에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지난 휘발성에 거부감이 컸다. 그런데 곁에 두고 오래 보다 보니, 개념과 기술이 만나 탄생한 사진이 새롭게 다가오더라. 이미지를 해석하는 일이 흥미롭게 다가왔고, 이미지 제작을 둘러싼 사진가의 노력, 현장 상황 등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사진을 향한 환기된 시선이 다른 디자인에 영감을 주는 긍정적인 일도 경험했다.
전시에서 사진을 감상하는 것? 책장을 넘기면서 사진을 연속적으로 보는 것?
화이트큐브만의 힘이 있다. 바로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다. 흰 공간 안에 오브제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자연스레 시선이 집중되지 않는가. 최근 카페와 편집숍 등이 화이트큐브 형태를 따라가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나’를 그리고 ‘상품’을 부각할 수 있으니까. 비슷한 맥락으로, 책 한 권이 흰색 공간 안에 있다면, 주목도가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책의 스펙터클을 보여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책의 물성을 보여주기에는 공간이 내뿜는 힘이 강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포토북을 감상할 때 작가 관점이 책 안에 어떻게 녹아있느냐를 꼼꼼히 살펴본다. 회화 도록의 경우, 이미지의 강렬함으로 인해 책장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사진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포토북에는 무언가를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음악을 예로 들면, 노래를 통해 어떤 내러티브를 도출할 수 있는 서태지의 5집 앨범(Take 시리즈) 같은.
제작 관련 에피소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충돌과 반동>이다. 이때부터 포토북 디자인을 일이 아닌, 사진에 관한 흥미로 접근하게 됐다. 더 나아가서는, 포토북을 보다 깊게 탐구하고 연구하게 된 모멘텀이 됐다. 샤머니즘적 시선에 집중하는 대신, 사진의 기능적 특징에 초점을 맞춘 것이 <충돌과 반동> 작업의 핵심이다. 특히, 심도 조절을 통한 이갑철 특유의 피사체 접근 방식을 포토북에 녹아내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작가의 작업과 프론트도어의 주제의식을 동기화하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고나 할까. 먼저, 표지에선 피사체와 배경을 가로지르는 가로획과 세로획의 구도로 글자를 정렬했고, 서로 대비되는 선명한 붉은색과 흐리게 나타나는 흰색을 교차 배치하여 타이틀을 디자인했다. 한편, 내지에서는 ‘충돌과 반동’을 표현하기 위해 한글은 세로쓰기를, 영문은 가로쓰기를 선택했다.
이동근의 <IN THE SPOTLIGHT: 아리랑 예술단>에선 북한을 둘러싼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사실, 직접 사진을 보기 전에는 막막함이 앞섰다. 여느 다큐멘터리 사진이 그렇듯, 사진 접근이 어렵고 부담스럽게 느껴졌으니까. 또한, 출판사에서 작가 작업을 ‘애정’, ‘희망’의 관점에서 바라봐달라고 했지만, 실제 마주하니 애정으로 보기엔 작업이 너무나 슬펐다. 북한에선 추지도 않았던 춤을 우리나라에선 생계를 위해 해야만 한다는 게 또 다른 감옥에 갇힌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당사자라면 그렇게 웃을 수 있을지 감정이입을 해보다가, ‘기억’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공연) 기록은 기록으로 남겨두고, (북한의) 기억을 극대화해보고 싶었다. 중간중간 스프레드 이미지를 넣어 기억을 환기했고, ‘기억은 파편화된다.’라는 말에 착안, 여러 개의 텍스트를 분리·배치했다. 한 마디로 ‘교차 편집’인 셈이다. 출판 북디자인 전문가들이 이러한 장치들을 잘 알아봐 준 덕분에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박형렬의 <UNSEEN LAND>는 대지 미술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스케일에 주안점을 뒀던 작업이다. 스케일을 부각하기 위해 사진 크기를 다양하게 변주했고, 흑과 모래를 연상케하는 색을 사용했으며, ‘땅이 사진이 되고, 사진이 작품으로 환원되는 과정’을 보여주려 아트지 위에 바니쉬 처리를 했다.
포토북을 제작할 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고유성. 다시 말해, 작가와 프론트도어가 만났을 때 발현되는 독특한 질감. 어느 디자인이나 기시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우리 작업을 보고 ‘이를 기시감이라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연결된다면, 이는 아마 고유성 때문일 것이다. 작업할 때 포토북을 어떤 형태로 만들지, 여기에 어떤 기능적·내용적 부분을 반영할지 등을 치열하게 고민한다.
대표적인 예로, 임응식의 <부산에서 서울로>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전달받은 수백 장의 사진을 보다가, ‘부산’과 ‘서울’ 순서로 공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그 시대를 둘러볼 수 있게 구성하면 좋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는 책의 제목으로까지 이어졌다. 더불어, 부산과 서울을 구분하려 빈티지 프린트를 책 가운데 배치했고, 임응식이 살았던 시대의 분위기를 표현하려 일반형에는 초특태 고딕을, 스페셜 에디션에는 궁서체를 사용했다. 궁서체로 본문 조판을 할 때는 자간을 일일이 조절했는데, 혹자는 마이너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장치들이 책을 책답게 만드는, 책이라는 매체에 다각도로 접근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형태가 화려하지 않더라도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것. 이것이 작가와 우리가 만나 발현된 고유성이 아닐까 싶다.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
콘텐츠 자체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가령, 작가의 세계관 같은. 동시대 감수성을 공유하다 보니, 디자인이 비슷한 지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유성’을 찾는 건 디자이너의 몫이다. 다만, 형태에 집착하진 않는 것 같다. 이미 형태 실험은 끝났다고 생각하니까. 다른 디자이너의 작업보다 사물에 더 영향을 받는다. 의자, 조명의 곡선 등을 유심히 살펴본다. 책도 하나의 오브제로 보려고 노력한다. 일상적인 것에서 디자인이 발현돼야 우리도, 보는 이도 모두 공감할 수 있다. 이유가 없는, 아름다운 형태를 맹목적으로 쫓을 필요는 없다.
포토북 전문 디자이너가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인 수요가 없으니까. 물론, 공급도 마찬가지다. 작가 지원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은 것도 한몫할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이미지를 온라인으로 소비하지, 누가 책으로 보려하나. 더욱이 책의 본질적인 기능이 많이 상실됐다. 정보 전달 역할은 인터넷으로 대체된 지 오래다. 책에 깊이 있는 정보가 있다지만, 오랜 시간 책을 읽을 수 있는 인내력을 가진 독자도 줄어든 상태고. 그래서 사람들이 낱장 이미지에 집중하는 것 같다. 이미지 표면을 향한 관심이 책 내부로 이어진다면, 포토북 시장이 지금보다는 나아지지 않을까. 그렇기 위해서는 이미지를 통해 사색할 수 있는 환경, 이미지를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 등이 활성화돼야 할 것이다.
현실적인 질문. 온라인에서는 포토북 인기가 많은 것 같지만, 실상은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장에서 느낀 혹은 발견한 부분이 있나?
일본만 하더라도 포토북의 권위와 위상이 높다. 서점에 가면, 포토북이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구석에 자리 잡고 있거나, 매대 자체가 없거나 둘 중 하나다. 이미지는 소비하는 매체지, 감상하는 매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어찌 됐든, 텍스트가 있어야 책이 판매되니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어릴 때부터 이미지를 직접 접할 기회와 이를 어떻게 읽어낼지 고민하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이미지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디지털 매체의 발전이 빠르게 진행된다. 굳이 이미지를 책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 우리는 책이 가진 상징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상징성을 수요로 이어지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책이 멋진 인테리어 오브제로, 나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소품 등으로 기능할 경우, 책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으로 믿는다. 이를 통해 판매 원동력을 얻는다면, 사람들이 자연스레 책 내부에도 관심을 두게 되지 않을까. [2021.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