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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Oct 31. 2021

조금 어색한 만남

이하늘

Stranger #180529-7


이하늘의 <Stranger>와 처음 마주했을 때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잘못된 만남’이었다. MZ 세대라 불리는, 사진과 SNS에 익숙한 작가와 인물이 만난 것 같은데, 사진 속 주인공들 몸짓 주변을 감싸고 있는 건 불안감이다. 어딘지 모르게 경계하는 눈빛, 움츠러든 목과 어깨…. 그들의 만남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알 수 없는 예감에 조금씩 빠져드는 느낌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Stranger>는 작가와 카메라 그리고 일면식 없는 대상 사이에서 오고 가는 시선 속에서 감지되는 미묘함을 표현한 작업이다. 일차적으로는 대상의 감정을 포착한 듯하나, 자세히 보면 낯선 사람을 설득해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작가의 어색함이 대상에 투영된 것 같기도 하다. 마치 작가의 페르소나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왼쪽) Stranger #190525-6 / (오른쪽) Stranger #190626-7
(왼쪽) Stranger #180919-5 / (오른쪽) Stranger #1806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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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nger>의 모티브가 궁금하다. 추측건대, 인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독특한 시선이 반영됐을 것 같다. 인물을 바라보는 작가만의 관점이 있을까.

어렸을 때부터 인물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개성 강한 사람들을 보면,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었다. 이러한 인물을 향한 관심이 자연스레 작업으로 이어졌다. 현재 자신과 타자 사이에서 오는 다양한 관계들을 지속해서 탐구하고 있다. <Stranger> 시작 과정에서 인물과 관련된 객관적 정보를 배제하려 했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혹은 나이 등과 같은 정보에 의해, 작업 속 인물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주기보다, 인물을 그저 하나의 이미지로 바라보고자 했다. 그중 아무런 정보가 없는 낯선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미묘하고 불안한 심리에 관심을 두며 <Stranger>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클래식한 관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건을 있는 그대로’라는 신화를 신봉하는 장르다. 자신의 ‘스테레오타입’적인 시선을 넘어서기 위해, 다시 말해 주관적 측면을 해체하기 위해 (어쩌면 이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형식을 활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Stranger>는 인물의 이미지, 다시 말해 그들 표면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한 작업이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방식의 인물 사진은 ‘그들이 거기에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인물 사진을 볼 때 우리는 특히 더 친밀한 접촉의 감각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특정 대상의 유형을 아카이브하기 위해 동일 조건에서 주관적 관점을 최대한 배제하고,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유형학적 접근법을 이용함과 동시에 이를 비틀고자 했다. 작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큐멘터리 사진 형식을 기반으로 객관적이며 중립적으로, 정면적이며 무표정의 반복을 통해 강조된다. 이렇게 아카이브된 이미지들의 분류 방식에 따라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고자 했다.


무작위로 만난 사람들을 촬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사전에 리서치 혹은 주제 상정 등을 진행하나.

주변 사람들을 촬영한 적도 있다. 그런데 서로의 캐릭터를 잘 알다 보니, 알게 모르게 ‘잘 나온 사진’에 집중하게 되더라. 그래서 길거리로 나서게 됐다. 작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대상이 가진 이미지와 분위기’다. 작업 초반에는 렘브란트 그림을 보면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그의 초상화에서 보이는 인물의 표정과 포즈를 섭외한 인물에게 요구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인위적인 연출로는 대상의 고유한 진정성을 느낄 수 없더라. 그 이후부터는 포즈에 되도록 개입하지 않고 있다. 거리에서 무작위로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 그때마다 감각적으로 끌리는 사람들, 뭔가 특별함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려고 한다. 사실 이를 둘러싼 느낌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 같다.


Stranger #190525-9


조숙현 기획자가 말했던, “전문 모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포즈와 시선이 어색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외모와 차림새는 가지각색이지만, 당당한 포즈와 자유로운 차림이 인상적이다.”와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되레 매우 어색한 분위기를 체감했기 때문이다. SNS에 올라오는 사진은 본인/친한 친구가 찍어주기에 자연스럽지만, <Stranger> 속 인물은 제3자(작가)의 개입으로 인해 어색함이 극대화됐다고나 할까.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작업량이 점점 늘어나면서 어떤 하나의 세대에 대한 분류로 이어졌다. 아무래도 비슷한 세대에게 접근하는 일에 큰 두려움이 없었고,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위치에서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있었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작업 속 인물들은 디지털 이미지에 굉장히 익숙한 세대다. 이미지를 보고, 소비하는 일에 익숙한, 이미 이미지에 학습된 세대라고 느껴졌다. 분명 SNS에 자신의 셀카를 올리거나 사진을 찍는 것, 찍히는 것이 일상적인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앞에 서면 달라지는 그들의 태도가 굉장히 흥미로웠다. 작가와 카메라 그리고 대상 사이에서 오고 가는 시선 속에는 미묘한 긴장감과 불편함이 공존한다. 이러한 감정은 명료하게 시각화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에 인물의 표정과 몸짓으로 포착해내려 했다.


머그샷을 연상케 하는 프레이밍이 눈에 띈다. 인물을 일률적으로 프레임 안에 박제한 것에 의의/의도가 있을까.

인물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나에게 대상이 가진 분위기와 특별함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다. 그 이후 카메라 앞의 대상을 바라볼 때는 립스틱 색깔이나 손톱 매니큐어가 벗겨진 정도, 점의 위치처럼 아주 미세한 디테일을 눈여겨보려 했다. 인물 이미지 그 자체에서 여러 가지 단서들을 유추할 수 있도록 상반신을 집중해서 촬영했다. 정방형 포맷을 일률적으로 사용한 이유는, 유사한 유형의 개별 사진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며 유사점과 차이점을 보여주는, 일종의 도감 형식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각각의 인물들이 주는 개성과 다양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나열된 사진 앞에선 이들의 이미지를 비교하며 유사점을 얻게 된다. 이미지를 배열하고 나열하는 과정에서 개별 이미지가 강조되고, 아카이브를 통해 개별 이미지들이 다른 이미지들과 관계되어 새로운 의미와 효과를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Stranger #190626-5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한 이미지들이 새로운 현실을 만든다.’라는 관점에서, <Stranger>는 시대를 대변하는 작업일까, 아니면 특정 내러티브를 만드는 데 의의가 있을까.

사회 구조 속에서 작용하는 시대의 집단을 찍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인물 개개인에 집중하여 작업했지만, 이를 수집하다 보니 하나의 이야기가 보이더라. 이 시간대에 이 사람들을 찍는 것 자체가 시대를 담을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이는 인물사진에서 특히 잘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아카이빙된 인물의 이미지가 시대상을 완벽하게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2020년 여성들의 이미지 유형을 일정 부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대목에서, 관객은 혼란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Stranger>의 의의는 2020년 여성의 유형을 보여주는 것일까. 아니면 낯섦의 감정을 보여주는 것일까.

‘2020년 여성’을 언급한 건 ‘이미지 자체’만 보면 유형을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가 관점에서는 낯섦의 감정이 더 크다. 전시장에서 관객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분류, 유형 등의 주제로 이야기가 흘러가더라. 촬영 당시에는 개성 있는 사람을 섭외했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물에서 꽃무늬 원피스 같은 공통된 요소가 보이니 그럴 수밖에. ‘다른 듯하지만, 비슷한 면을 갖는 세대’라고나 할까. 현시점에서는 분명 낯선 감정에 관한 작업이지만, 훗날에는 ‘개성의 일반화’를 논하는 유형학적 작업으로 읽힐 것 같다는 생각이다.


전시와 출판, 어떤 방식이 작업을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나.

전시와 출판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각각의 맥락은 분명히 다르다. 아카이빙이 이루어지면서 <Stranger>가 일정 부분 시 대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됐지만, 작업을 보여주는 작가로서는 이미지에 등장하는 인물 개개인에게 집중하길 바란다. 그렇기에 한 장 한 장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가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2021. 06]




이하늘 사진을 통해 작가 자신과 타자 사이의 다양한 관계를 탐구하고 있다. 더불어 디지털 시대 이후 변모하는 사진에 주목, 이미지와 세상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있다. haneullee.myportfol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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