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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효니 Jun 18. 2022

담아라, 한 번도 마주하지 않은 것처럼

김명중

폴 매카트니의 마음에 명중한 김명중의 사진은 로큰롤 그 자체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장면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김명중 사진가 ⓒ 안지섭


김명중(MJ Kim)은 비틀스 팬이 가장 부러워하는 사진가다. 폴 매카트니의 전속 사진가로 활동하며,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기 때문이다. 김명중의 사진에는 폴 매카트니의 희로애락이 생동감 넘치게 담겨 있다. 그런 사진을 본 매카트니는 “백악관도 못 가진 사진이잖아!”라며 극찬했다고 한다. 하지만 동시에 매카트니는 꽤나 까다로운 사람인지라, 사진에 늘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고. 김명중에게 온탕과 냉탕을 오가게 만든 사진 이면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물었다.


영화를 공부했는데 사진기자로 활동했고, 폴 매카트니 전속 사진가가 되었어요. 그야말로 ‘로큰롤’스러운 이력인데요?

처음부터 뭘 하겠다고 다짐한 적은 없어요. 하는 일이 막힐 때마다 새로운 일을 찾았던 게 지금의 이력서를 채운 것 같습니다. 영국 런던 LCC(London College of Communication)로 유학 갔을 때 영어가 안 되니까 수업을 못 따라갔어요. 몇 날 며칠을 괴로움에 시달리다 어느 날 부전공에 사진이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인연이라는 느낌이 와서 즐겁게 공부했어요. 그런데 얼마 못 가 또 다른 시련이 찾아오더군요. 바로 IMF였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학비를 지원받는 게 어려워져 할 수 없이 학업을 중단하고 생업에 뛰어들었습니다. 1998년 ‘포토 뉴스 서비스(Photo News Service)’라는 작은 통신사에 수습사원으로 들어갔는데, 지금까지 하고 있는 사진 일의 서막이라는 걸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요.


폴 매카트니는 어떻게 만난 건가요?

이후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 통신사 ‘PA(Press Association)’, ‘게티 이미지(Getty Images)’를 거치며 10년 가까이 사진기자 일을 하다 2007년 프리랜서로 독립했어요. 그런데 전 세계 클라이언트에게 포트폴리오를 보냈건만, 4개월 넘게 일이 들어오지 않는 거예요. 마지막 남은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질 무렵, 고맙게도 ‘스파이스 걸스’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재결합 기념 투어에 동행할 사진가를 찾고 있는데, 저와 미팅을 하고 싶다고요. 그렇게 스파이스 걸스 공연 사진을 찍었고, 2008년부터 폴 매카트니의 전속 사진가가 되었습니다.


2020년에는 단편영화까지 연출했네요.

영화와 다시 인연을 맺은 건 정말 기적이에요. 영화 학교에서 인연을 맺은 일본인 친구가 있는데, 만날 때마다 “MJ, 넌 언젠가 영화감독이 될 거야!”라고 말하는 거예요. 처음엔 10년이 넘는 친구의 의리와 정성에 감동해 의무감(?)으로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나는 게 아니더라고요. 1992년 동두천 기지촌에서 발생한 술집 여종업원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시나리오는 결국 그의 말처럼 <쥬시걸(Juicy Girl)>이라는 단편영화로 제작됐고, ‘2020 오션 코스트 필름 페스티벌(Ocean Coast Film Festival)’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어요. 여기에서 힘을 얻은 덕분에 현재 장편영화를 준비 중입니다.


‘Paul McCartney Out There tour’, 2015.


15년째 폴 매카트니 전속 사진가로 활동 중인데, 오랜 시간 인연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합니다.

영어가 서투른 동양 남자가 스파이스 걸스를 웃게 했다는 소문이 돌았나 봅니다. 사진으로 스파이스 걸스 멤버 모두를 만족시키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업계 정설이었거든요. 이를 계기로 스파이스 걸스 투어 홍보 담당자를 통해 폴 매카트니와 인연을 맺었어요. 돌아보면, 폴 매카트니와 공유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15년째 일하는 것 같습니다. 비틀스를 찍은 그 어떤 사진가보다 제가 오래 일하고 있는 거래요. 가족과 크루, 팬을 사랑하는 매카트니의 마음은 정말 따뜻합니다. 저도 그의 마음을 알기에 매카트니 주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부분을 잘 본 게 아닌가 싶어요.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점이요.


매카트니의 어떤 모습을 담으려 했나요? 공연장 분위기는 시시각각 변하지만, 무대는 한번 구성하면 달라지지 않아 새로운 장면을 포착하기 어렵잖아요.

가수는 저마다 루틴이 있어요. 음악마다 하는 행동과 농담 같은. 그런데 축적된 데이터에서 벗어날 때가 있어요. 팬들의 반응이 평소와 다를 때, 특별한 손님이 왔을 때 매카트니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이때가 새로운 사진을 찍을 기회입니다. 특히 요즘은 콘서트에서 스마트폰 라이트로 응원을 많이 하잖아요. 매카트니가 이 퍼포먼스를 굉장히 좋아해요. 공연 중 저를 보면서 윙크를 한다니까요. 어서 찍으라고. 그가 팔을 벌리고 있는 사진도 루틴에서 벗어난 장면입니다.


부인인 린다 매카트니가 사진가라서 부담스럽진 않았나요?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그녀만큼 그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이 또 있을까요. 그런데 가끔은 폴 매카트니도 부담돼요. 그는 매번 공연할 때 촬영한 사진을 다음 날 보고 싶어 하거든요. 사진 속에서 얼굴 주름이 드러나거나 표정이 우스꽝스러우면 “난 멋있게 보이고 싶어!”라고 말해요. 사실, 그들이 주는 부담감보다는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이 더 큽니다. 어제보다 나은 사진을 찍어야 하는 게 제 숙명이니까요. 2008년 리버풀 안필드 구장에서 처음 폴 매카트니의 공연 모습을 찍었어요. 리허설 중간에 그동안 찍은 사진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예스터데이’가 흘러나오더군요. ‘내가 이런 사람과 같은 무대에서 사진을 찍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전율을 느꼈습니다. 아마 이런 부담감은 사진을 그만둘 때까지 이어지겠지요. 그래서 같은 인물일지라도 베스트 컷을 위해 촬영 전에는 매번 인물과 앵글, 촬영 장비 등을 연구합니다.


2010년 ‘거슈인(Gershwin)상’ 시상식에서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폴 매카트니.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찍힌 사진을 본 매카트니가 “백악관도 못 가진 사진이잖아. 로큰롤!” 하며 극찬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백악관 전속 사진가였던 피트 수자(Pete Souza)도 담지 못한 장면이죠. 당시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나요?

폴 매카트니가 오바마 대통령을 좋아해요. 대중음악에 헌신한 사람에게 주는 ‘거슈윈(Gershwin)상’을 부시 때는 거절하고 오바마 때 받을 정도로. 시상식 리허설 날, 큐시트를 보니 대통령 경호 때문에 제가 무대 위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드럼 세트 사이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정해진 자리에서 리모트컨트롤로 셔터를 누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피트 수자도 제 옆에 있었거든요. 결국 다른 방법을 생각해낸 건 저뿐이었죠.


오랜 시간 동일한 인물을 찍으면, 필연적으로 매너리즘과 마주할 것 같아요.

3년 차에 매너리즘에 빠졌어요. 매번 비슷한 공연을 찍고, 비슷한 음식을 먹으니 간절함과 감사함이 사라지더라고요. 사진에도 그게 나타났나 봐요. 어느 날 매카트니가 저를 부르더니 “더는 네 사진이 날 흥분시키지 않네”라고 말하더군요. 가슴이 철렁했어요. 당연하게 누리던 것이 눈앞에서 사라질 위기였으니까요. 바로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때부터 매번 마지막 공연이라 생각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었어요. 그랬더니 몇 달 후 매카트니가 다시 저를 붙잡고 묻더라고요. “MJ, 너 필름 바꿨니?”


2007년 스파이스 걸스 재결합 기념 투어 백스테이지.


다른 사진 이야기로 넘어가볼게요. 공연 사진과 달리 할리우드 배우, 을지로 장인 등을 촬영한 프로젝트는 단순한 배경과 타이트한 프레이밍이 눈에 띕니다. 리처드 애버던(Richard Avedon)이 연상돼요.

화려한 사진을 보면 인물보다 사진가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는 제가 리처드 애버던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분명 단순한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그가 담아낸 인물과 마주하면 특유의 분위기에 압도되거든요. 그래서 저도 애버던 같은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합니다. 촬영할 때마다 기교보다는, 어떻게 하면 인물 표정에 삶의 궤적이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을지 고민해요. 이를 위해 셔터를 누르기 전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손톱·양말 등 작은 디테일까지 칭찬해서 모델을 편하게 만듭니다. 칭찬을 받으면 잘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거든요.


사진은 ‘어중이떠중이명중이’가 하는 거라고 했잖아요. 사진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인물 사진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디지털카메라든 스마트폰 카메라든 제대로 못 찍으면 바로 핀잔을 듣게 돼요. 짧은 시간 안에 셔터 타이밍을 잡는 비결이 있을까요?

‘금사빠(금세 사랑에 빠지는)’ 자세로 모델에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열어서, 무장해제되도록 만들어야 하니까요. 하나, 둘, 셋 하면 누구나 긴장할 수밖에 없어요. 프로 모델이 아닌 이상 짧은 시간에 베스트 컷을 얻는 건 어렵습니다.


사랑으로 사람을 대한다는 말이 맞네요. 사진가로서 갖는 긍지는 무엇인가요? 앞으로 계획도 궁금해요.

사실 예전엔 긍지를 느껴본 적이 없어요. 사진은 그저 먹고살기 위한 도구였거든요. 그런데 을지로 장인 같은 평범한 인물을 찍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사진가라는 직업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사람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선물해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더라고요. 사진 속 자신의 얼굴을 본 분들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 사진 찍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거창하지만, 잠깐일지라도 저는 그 사람의 인생을 찍어주는 거잖아요. 사진을 통해 여러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참! 그동안 코로나19로 멈춰 있던 투어가 곧 다시 시작돼요. 당연히 폴 매카트니 사진을 열렬히 찍을 거고요. 장편영화도 멋지게 선보일 겁니다. [2022.05]


조니 뎁(Johnny Depp), ‘Paul McCartney at Early Days music video shoot, LA’,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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