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연 산문 14
갈피
내가 인생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맬 때 보랏빛 자수 책갈피가 꽂힌 서적이 나를 불러요. 유일한 나의 도피처가 되어버린 그 아이가 부를 때면 이상을 꿈꾸기 위해 어김없이 다가갑니다. 엉망진창인 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으면,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기분이 한결 나아지거든요.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면 그만큼 더 나은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미운 사람 앞에서는 여실히 무너져 내려요. 맑고 투명한 마음을 갖고 사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드네요. 얄궂게 행동하는 것도 보이고, 나를 골탕 먹이려는 것도 보이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갈 수 있는 건지. 애매하게 나를 싫어하고 있는 것도 아는데 모른 척 따스히 다가갈 수 있는지.
상대의 매정한 태도에도 토라지지 않고 또다시 손을 내밀고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배려심 없는 사람의 태도에 하해와 같은 마음을 품어 볼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저는 대가를 바라고 행동하는 사람인가 봐요. 그러지 말자 다짐하고 결심해도 맞닥뜨리면 그동안의 다짐들이 무색하게 다정함이 꺾여나가요.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내가 설명하지 않고도 내 행동을 나의 말을 곧이곧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요? 담아두면 앓아누워 버릴 것만 같은데 그냥 넘기는 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 책갈피 너머로 도망치는 건 언제 그만둘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