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걱정하고 더 감사하는 삶
상대방의 작은 표정 변화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 이유 때문인지 누군가를 만나기 전까지는 완벽할 것만 같았던 하루도 상대방의 기분 변화에 따라 한 없이 불행해지기도, 한없이 행복해지기도 한다. 물론 후자의 경우엔 나의 기분과 상대방의 기분이 모두 좋아야 한다는 전제 하에 펼쳐지는 일이긴 하다. 아, 아니다. 나의 행복한 하루를 위한 충분조건은 그저 상대방의 기분에 달려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나의 행복한 하루는 상대방의 미소 한 번에 결정되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교실에서의 상황도 다를 바가 없다. 들뜬 마음으로 수업을 준비해도 그 날 학생들의 분위기가 받쳐주지 않으면 시작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반대로 애들이 할 수 있겠나 싶은 일들도 척척 해낼 만큼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나 또한 힘이 번쩍번쩍 돋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운이 좋게도 나와 학생들의 기분이 모두 좋은 날에는 청춘 드라마에 나오는 교사와 학생들처럼 모든 역경과 어려움을 다 이겨낼 수 있는 멋진 팀이 된 기분마저 든다. 저 태양을 향해 나아가보자 얘들아! 하는 그런 청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행복을 선택하는 일이 두려워졌다. 내가 행복하다고 한들 상대방의 기분이 나쁘면 곧 실망하고 말 테니 내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나름의 징크스라고 하면 징크스인데, 유독 기분 좋게 눈을 뜬 아침이면 행복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유독 기분 좋은 일들이 펼쳐질 것 같으면 우선 기쁨을 느끼기를 멈추려고 한다. 실망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나름의 징크스라면 징크스인데, 글을 적으면서 나에게 이런 징크스가 있다고 인정해버리는 것 같아 찝찝하다. (퉤퉤퉤! 침 세 번 뱉으면 무효다.)
그러다 문득 나의 행복이 남으로부터 결정되는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아침 골라 입는 옷처럼 나의 행복도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리고 나의 그 행복이 상대방을 물들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행복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선택하는, 덜 걱정하고 더 감사하는 그런 하루가 되기를 바란다. 아니 내가 그런 하루를 보내도록 선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