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가 없어 쉬는 것조차 두려울 때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by 그래좋다고치자

불면증이 찾아왔다. 도통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이른 새벽부터 눈이 떠진다. 입으로만 실천했던 미라클 모닝을 강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기뻐해야 하는 건가. 한때는 그토록 원했던 변화가 반갑지 않다. 점점 탁해지는 눈동자는 생기를 잃었다. 공기마저 무거운 무게로 나를 짓누르고 있는 듯하다. 며칠째 이어지는 두통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급하다. 멈추는 방법을 잊은 것만 같다.




10대의 나에게도 비슷한 형태의 조급함이 찾아왔었다. 시간을 거슬러 18살의 나를 돌아본다. 모교에서는 한창 2013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고 있었다. 당시 기숙사는 본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오후 4시가 지났을 무렵 마지막 종소리와 함께 환호성이 들렸다. 아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환희에 가득 찬 소리였다. 기숙사에 남아있던 나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연필을 쥐었다. 이제 내 차례가 다가온 것이다. 손에 쥔 연필이 다음 주자에게 건네주는 바통처럼 느껴졌다. 기숙사에 남아있던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서로 말없이 책상만 응시할 뿐 그 어떤 말도 머물지 못했다. 정적만이 무겁게 흐를 뿐이었다.




수험 생활은 치열함의 끝을 달렸다. 잠시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누군가에게 쫓기듯 마음이 조급했다. 숨은 어떻게 쉬고 살았나 싶다. 고삼은 사람이 아니다 생각하고 공부만 하라고들 말했다. 정말 그렇게 했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것들 이외에는 전혀 하지 않았다. 밥 먹고 공부하고 밥 먹고 공부하고. 힘들고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고삼이니 힘든 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버텼다. 잠이 쏟아져 눈이 감겨도, 머리가 금방 터져버릴 것 같아도 연필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하루에 4시간이라도 자면 많이 잔 축에 속할 정도로 밤잠도 줄여가며 공부를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10대의 치열함 덕분에 20대의 나는 안정적인 직장과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10대의 치열함에 감사하다. 하지만 마음 끝에 맴도는 아쉬움을 지우기 어렵다. 그렇게까지 치열하게 살 필요가 있었나 싶다. 고삼이니 힘든 건 당연하다고? 전혀 그렇지 않다. 고삼도 사람이다. 또 얼마나 좋을 나이인가!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음 지을 나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수업 중 들려주는 선생님들의 첫사랑 이야기에, 쉬는 시간에 보는 짧은 엑소 무대 영상에, 그리고 수능 기도를 끝으로 나누어주는 초코파이 하나에도 열광하던 학창 시절의 모습을 떠올린다. 별거 아닌 것에도 웃음 지을 수 있었던 그때를 말이다.




죽어도 돌아가고 싶지 않을 거라 단언했던 수험 생활이지만 그 특유의 분위기가 그리울 때가 있다. 특히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자습을 하던 시간이 유독 그렇다.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는 친구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MP4를 보며 등을 들썩이는 친구들, 자습 시작부터 시계만 내리 쳐다보는 친구들, 그리고 공부에 심취해있는 친구들까지 각기 다양한 모습들로 고요한 교실을 채우고 있었다.




산 중턱에 위치한 학교의 특성상 나방이나 벌 등 곤충의 습격을 받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고요했던 교실에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감독 선생님께서 빗자루를 들고 와 꽤나 우스운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셨다. 그 모습에도 까르르 웃던 나의 10대를 떠올리며 생각한다. 더 많이 웃고 추억할걸,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지낼걸, 주변을 둘러보며 지낼걸. 너무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지냈던 건 아닌지. 아쉬움이 또 아쉬움을 낳고 있었다.




10년 뒤의 나는 어떨까. 20대의 나를 돌아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그때가 가장 좋을 때였는데 왜 그렇게 조급하게만 달렸는지 모르겠다며 글을 적고 있을 것만 같다. 여유를 가지고 청춘을 즐길 걸 그랬다면서 한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10대의 나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달래주려 한다. 충분히 행복해하고 사랑하고 추억하며 살라고, 조급하고 불안해하면서까지 남들보다 앞서갈 필요는 없다고, 남들보다 조금 뒤처지더라도 여유롭게 사는 편이 낫다고 말이다. 누구보다 성공한 사람보다는 추억할 거리가 많은 30대가 되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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